인공지능(AI), 플랫폼, 모빌리티 등 신산업 확산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기업들이 규제특례보다 “사업을 해도 되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ICT 규제샌드박스 신청 건수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신속처리’에 몰린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13일 윈트 행정사사무소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ICT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도입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접수된 전체 신청 건수는 777건으로 집계됐다.
유형별로는 ‘신속처리’가 377건으로 전체의 48.5%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실증특례 297건(38.2%), 임시허가 76건(9.8%), 적극해석 27건(3.5%) 순으로 나타났다.
ICT 규제샌드박스는 신기술·신서비스가 기존 법체계와 충돌할 경우 일정 조건 아래 실증이나 시장 출시를 허용하는 제도다. 그중 신속처리는 사업자가 추진하려는 서비스가 현행 법령상 허용되는지, 별도 인허가가 필요한지 등을 빠르게 확인하는 절차다.
실증특례나 임시허가처럼 규제를 한시적으로 유예해 사업화를 지원하는 방식과 달리, 신속처리는 사업 가능 여부 자체를 판단받는 성격이 강하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규제 회피보다 규제 불확실성 해소 수요가 더 크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AI 서비스, 데이터 플랫폼, SaaS, 디지털 헬스케어 등 신산업 분야에서는 법령 적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사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기존 산업 분류 체계에 없는 융합형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기업들이 사업 초기 단계부터 규제 리스크를 점검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분위기다.
연도별 신청 추이를 보면 제도 초기에는 증가세가 뚜렷했다. 전체 신청 건수는 2019년 125건에서 2020년 140건, 2021년 147건으로 늘었다. 이후 2022년 76건으로 급감했지만, 2023년 103건, 2024년 116건으로 다시 회복세를 보였다. 다만 지난해에는 다시 70건으로 감소했다.
최근에는 실증특례 비중 확대도 눈에 띈다. 2024년 실증특례 신청은 60건으로 전체 신청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지난해 역시 41건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반면 임시허가는 2020년 25건 이후 감소세를 이어가며 2024년 2건, 지난해 1건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시장 환경 변화와 함께 기업들의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초기에는 사업 허용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실제 서비스 검증과 시장 적용까지 추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접수기관별로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535건으로 전체의 68.9%를 담당했고, 대한상공회의소가 242건(31.1%)을 접수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규제샌드박스가 사실상 “사전 법률 검토 창구”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법·제도 개편이 더디다 보니 기업들이 사업 추진 전부터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류경재 윈트 행정사사무소 대표행정사는 “신기술·서비스 등장 속도에 비해 법·제도 정비가 뒤따르지 못하면서 기업들이 사업 가능 여부 자체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며 “ICT 규제샌드박스가 규제특례 지원뿐 아니라 현행 법령상 사업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창구 역할까지 맡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I·플랫폼 산업이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정부 규제 체계 역시 보다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후 규제 중심 체계와 신산업 맞춤형 가이드라인 정비가 병행되지 않을 경우 국내 스타트업과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 진입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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