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기후부 평가 통과 못 한 제작사 전기차엔 보조금 지급 안 해
평가 기준 논란 한 달만 '졸속' 수정…"매년 갱신할 것"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정부가 하반기부터 평가를 통과한 자동차 제작사의 전기차를 구매할 때만 보조금을 주기로 하면서 만든 세부 기준이 논란이 되자 불과 한 달 만에 대폭 수정한 기준을 내놨다.
제작사가 차만 팔고 사후관리는 등한시하는 일을 막고 '지속가능한 전기차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이바지하게 만든다는 것이 평가를 도입한 명분인데, 정부가 오락가락하면서 취지는 퇴색되고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전기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 평가 기준'을 확정하고, 6월 말 평가를 실시해 7월 1일부터는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제작사의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지난 3월 기후부가 최초 평가 기준을 공개하자 논란이 일었다.
국내 제작사만 통과할 수 있을 수준으로 기준이 만들어져 외국 제작사를 불합리하게 차별한다는 비판이 업계와 자동차 전문 유튜버를 중심으로 나왔다.
제작사 사업 능력을 평가할 때 신용평가등급을 반영하면서 외국 제작사는 국내 지사의 신용평가등급을 사용하도록 한 점, 기술개발 부분 평가에서 특허 현황 반영 시 국내 특허로 한정한 점, 사후관리 부문 평가 시 정비망 구축 현황 항목에서 만점을 받으려면 직영 서비스센터가 15곳 이상(승용차 기준)이어야 하는 점 등이 외국 제작사에 '장벽'이 되는 요소로 꼽혔다.
지난달 국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의 과정에서도 문제가 제기됐고 김성환 기부후 장관은 기준 수정을 약속했다. 당시 김 장관은 "일리 있는 문제 제기"라면서 기후부가 이미 공지한 기준에 대해 "세부 항목까지 다 들여다보지는 않았다"고 해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기후부는 일단 100점 만점에 20점의 가·감점이 가능해 최고 120점까지 받을 수 있는 체계에서 가점을 없애 최고 100점까지 받을 수 있는 체계로 바꿨다.
그러면서 통과 점수를 80점에서 60점으로 대폭 낮췄다.
평가 항목과 배점도 기준을 새로 만든 수준으로 조정했는데, 대표적으로 신용평가등급 평가는 사라졌고 정비망 구축 현황 항목은 협력업체를 통해 운영하는 서비스센터가 30곳 이상이어도 최고점(6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기준이 조정되면서 국내 전기차 생태계에 기여하게 만든다는 의미는 퇴색했다.
예컨대 최근 3년간 연구개발비를 평가하는 항목의 경우 애초 '국내에서 수행한 연구개발에 투입한 비용'이 기준이었다가 '국내에서 생산·판매된 전기차와 관련된 연구개발에 투입한 비용'을 기준으로 삼도록 바뀌었다. 특히 외국 제작사의 경우 자회사나 한국지사가 아닌 본사의 실적을 반영하게 했다.
연구개발비 평가 항목 최고점(5점) 기준은 '최근 3년간 연구개발비 500억원 이상(승용차 기준)'으로 대부분 제작사가 만점을 받을 수준이라 변별력이 없어졌다.
국내 특허 평가 항목은 아예 삭제됐다.
'국내 생산설비 현황' 항목의 경우 배점이 5점에서 10점으로 높아졌지만, 정성 평가 항목에서 정량 평가 항목으로 바뀌면서 국내에 생산설비가 없어도 3점은 받도록 했다.
국내 부품업체와의 공동 연구개발과 기술지원 협력을 평가하는 항목은 배점을 10점으로 유지하며 정성 평가 항목에서 정량 평가 항목으로 변경,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3점을 부여해 사실상 배점을 줄였다.
그나마 강화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은 '고용 창출'이다.
정성 평가로 배점 5점인 항목에서 정량 평가로 배점 10점인 항목으로 바뀌었는데, 최고점을 받으려면 '최근 3개월 이상 4대 보험 가입자 기준 국내 사업장 고용 인원이 300인 이상'이어야 한다.
정성 평가 항목이 대거 정량 평가 항목으로 전환되면서 배점 비율이 '40대 60'에서 '5대 95'로 역전됐다. 사실상 정량 평가로 '시비'를 차단하겠단 것이다.
스스로 만든 기준을 논란이 일자 한 달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꾼 기후부는 '수정의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통과 점수가 60점인 이유에 대해 기후부 관계자는 "제도가 처음 도입되는 것이기에 문턱을 너무 높일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기술력과 사업 능력을 갖춘 업체들이 통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정했다"면서도 이 수준이 '60점'인 이유를 밝히지는 못했다.
그나마 제시한 이유가 최고 120점을 받을 수 있었을 때 통과 점수가 80점이었던 점을 고려, 최고점이 100점으로 바뀐 데 비례해 통과 점수도 낮췄다는 것인데 평가 항목이 대폭 수정된 상황에서 적합하지 않은 설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보조금을 못 받는 경우가 없게 임의로 기준을 설정했다는 추정이 나온다.
기후부 관계자는 "통과 점수를 80점 이상으로 해 만약 보급 사업을 수행하는 제작사가 절반 이하로 줄면 국내 전기차 생태계에 도움이 안 된다"고 털어놨다. '평가를 통과할 수 있는 제작사 수'를 기준을 설정할 때 고려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후부는 "소비자 권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강화해나갈 것"이라면서 "평가 기준을 매년 갱신하겠다"고 했다. 매년 기준을 수정하면 불확실성이 커져 외국 제작사가 국내시장에서 철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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