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 | 플레이어 리포트> 는 정치라는 무대에 뛰어든 청년들의 실제 경험을 기록하는 인터뷰 시리즈다. 기성 정치의 견고한 구조 속에서 ‘불가능한 게임’에 도전한 이들의 선택과 궤적을 따라간다. 청년>
출마를 결심한 이유부터 현장에서 마주한 구조적 장벽, 그리고 포기와 지속 사이의 선택까지를 당사자의 시선으로 담는다. 다만 취재원의 요청에 따라 실명 대신 가명을 사용했다.
이 연재는 한국 정치의 진입 구조와 작동 방식을 청년의 경험을 통해 해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청년 정치가 ‘가능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는가’를 묻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강지혜 기자】국회 의원실에서 수년간 보좌진으로 일하며 입법과 정책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익혀온 30대 중반 유정훈(가명)씨는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정치를 해보고자 6.3지방선거 출마를 고민했다. 이른바 ‘정치 창업’이었다. 내부에서 시스템을 경험해 온 만큼 비교적 준비된 도전처럼 보였지만 그는 결국 출마를 앞두고 멈춰 섰다.
그를 가로막은 것은 자금이나 경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넘기 어려운 구조적 장벽이었다. 특히 당내 경선의 핵심 기준으로 작동하는 ‘당원 모집’ 중심 구조는 정책이나 역량보다 조직 동원력을 요구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사실상 ‘얼마나 많은 당원을 확보했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구조였다.
문제는 이 과정이 철저히 오프라인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지역 정치의 핵심 네트워크는 기존 인맥 중심으로 형성돼 있어 청년이 진입하기 쉽지 않았다. 온라인 중심의 네트워크에 익숙한 청년 세대에게 ‘오프라인 당원 확보’는 출발선에 서기조차 어려운 조건으로 작용했다.
결국 그가 마주한 것은 개인의 역량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정치의 구조였다. 당원 중심 경선과 지역 인맥에 기반한 정치 생태계는 청년에게 공정한 경쟁의 장이라기보다, 애초에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구조에 가까웠다. 내부자에서 플레이어로 나서려 했던 한 청년의 경험을 통해 ‘정치 창업’이 마주한 현실을 들어봤다.
Q. 오랫동안 국회에서 일하다 직접 출마를 결심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의원실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입법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제가 만든 법안들이 사회에 반영되는 걸 보며 보람도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일기장에 이런 비유를 썼더라. ‘대기업 하청업체 같다’고. 아무리 좋은 제품(입법)을 만들어도 네임텍에는 제 이름이 아닌 ‘브랜드명(의원)’이 붙는다. 중소기업이라 할지언정 이제는 제 라벨을 달고 ‘정치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보좌진도 정치인이긴 하지만 권한의 주체가 되고 싶어 벤처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필드에 나왔다.
Q. 본인도 그렇고 많은 청년이 그 ‘결심’ 단계에서 멈춘다. 직업으로서 정치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일까.
“정치는 ‘4년 계약직’이다. 그런데 그 계약 한 번을 따내기 위해 최소 4년의 무급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직업은 시험을 통과하면 계속 활동할 수 있지만 정치인은 당선되지 않으면 직업 자체가 사라진다. 이미 자산을 쌓은 장년층에게 낙선은 ‘리스크’가 아니겠지만 청년에게는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다. 주변에서 정치를 한다고 하면 아직도 ‘사기꾼’ 아니냐는 선입견 섞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큰 진입장벽이다.
Q. 실제 출마를 준비하며 가장 막막했던 점은 무엇인가.
단연 공천이다. 특히 지방선거는 유권자의 관심도가 낮아 당내 경선이 곧 본선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경선 룰이 청년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거대 정당의 경우 권리당원 투표 비중이 높은데 이건 ‘누가 더 정치를 잘하나’가 아니라 ‘누가 더 당원을 많이 영업해 왔나’의 싸움이다. 보험 영업과 비슷하다.
Q. 청년들만의 방식으로 당원을 모으면 되지 않나.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가 있다. 지역 정당은 철저히 오프라인 중심이다. 지역 유지들이 장악한 자율방범대, 사회보장협의체 같은 로컬 커뮤니티에 청년이 끼어들 틈은 좁다. 설령 들어가더라도 ‘정치하려고 왔네’라는 경계의 눈초리를 받는다. 반면, 기성 정치인들은 이미 형성된 오프라인 인맥을 통해 당원을 확보한다. 온라인 중심의 네트워크를 가진 청년 세대에게 ‘오프라인 당원 500명 모집’ 같은 미션은 사실상 수행 불가능한 퀘스트다.
Q. 당 차원에서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겠다는 약속은 늘 나오지 않나.
지역위원회 입장에선 청년 정치인을 키워낼 메리트가 전혀 없다. 중앙당에서 청년 육성 실적을 지역위원장 평가 지표에 강하게 반영하지 않는 한, 위원장 입장에선 굳이 기존 지방의원들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청년 인재를 키워낼 이유가 없다. 새로운 청년의 등장을 자신의 입지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는 기존 의원들이 뻔히 버티고 있는데, 위원장이 왜 앞장서서 내부 갈등을 감수하며 젊은 피를 가르치겠나. 지금의 경선 시스템은 당이 책임을 유권자와 당원에게 떠넘기는 ‘면피용’에 가깝다.
Q. 낙선하거나 정치를 포기한 청년들, 그 이후의 삶은 어떻던가.
여의도 주변을 맴돌며 딱히 직업 없이 명함만 가진 속된 말로 ‘정치 날날이’가 되거나, 생계를 위해 갑자기 자영업에 뛰어드는 경우를 봤다. 정치를 하나의 ‘커리어’로 인정해 주는 사회적 풍토가 없다 보니 낙선 후의 삶은 말 그대로 벼랑 끝이다.
Q. 출마는 포기했지만, 앞으로의 계획은.
금배지를 다는 것만이 정치는 아니라고 믿는다. 사실 지금의 사회에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걸 직접 해결하고 싶어 정치인을 꿈꿨다. 비록 여기서 멈췄지만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모으는 수평적인 정치를 시작하려 한다. 지역에서 우리만의, 청년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 저의 새로운 정치 언어다. 스타트업이 실패 자금을 토대로 다음 도약을 준비하듯 저 역시 일상의 정치를 통해 다음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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