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권수빈 기자] 사찰의 주 전각에 들어서면 불상 뒤편으로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불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를 '후불도'라 부른다. 보통 세로 길이가 5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고 무거우며 종이나 비단 같은 유기물 바탕에 안료를 입힌 구조라 온도와 습도 등 외부 환경의 미세한 변화에 취약하다. 보존 환경에 예민하고 물리적인 관리가 까다로운 탓에 세월의 흐름에 따른 훼손을 막기 위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훼손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뜻깊은 결과물이 공개됐다. 국가유산청이 성보문화유산연구원과 손잡고 복권기금의 지원을 받아 추진 중인 ‘대형불화(후불도) 정밀조사’ 사업의 첫 번째 성과 자료집이 발간된 것이다. 프로젝트가 지난해 막을 올렸고, 오는 2029년까지 총 5개년에 걸쳐 전국의 주요 대형 불화들을 전수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방치되거나 훼손될 우려가 있는 불교문화 자산을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관리 기반을 다지려는 목적이다.
첫 보고서에는 사업 원년인 2025년에 진행된 4건 6점의 유물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가 수록됐다. 대상으로 여수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을 비롯해 울진 불영사 영산회상도, 안동 봉황사 삼세불화, 가평 현등사 아미타회상도 등이 포함됐다.
연구진은 각 작품의 정확한 규격과 중량 등 기초적인 물리량을 측정하는 것은 물론 채색에 쓰인 물감의 성분 파악, 복원 처리에 필수적인 과학적 진단, 나아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훼손을 예방하기 위한 상세한 손상 지도와 디지털 도면까지 제작하는 등 입체적인 분석을 수행했다.
철저한 검증 과정은 숨겨져 있던 문화재의 가치를 발굴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현등사의 아미타회상도는 18세기 무렵 경기도 일대에서 유행했던 불화 양식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수작업으로 재평가받았다. 그 결과, 기존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의 지위에서 한 단계 상승해 국가지정문화유산인 보물 '가평 현등사 아미타설법도'로 승격 지정됐다.
정교한 아카이빙을 거친 조사 결과물은 향후 보수 현장을 넘어 다방면으로 활용도가 확장될 전망이다. 본 보고서와 함께 출간된 부록 '무늬'는 불화 속에 스며든 전통 문양만을 별도로 추출해 분석함으로써 현대의 대중문화나 디자인 산업에서 차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콘텐츠 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었다.
국가유산청과 성보문화유산연구원은 대구 달성군의 용연사와 유가사 영산회상도 등 5건의 대형 불화를 대상으로 심도 있는 진단을 이어가고 있다. 과학적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해 불교 미술의 생명력을 연장시킨다.
뉴스컬처 권수빈 ppbn0101@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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