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신발장에 단 하나의 슈즈만 구비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로퍼를 선택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만큼 성별과 나이,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 만능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로퍼는 클래식한 이미지와 달리 ‘게으름뱅이(Loafer)’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과거에는 신발 끈을 묶는 형태의 슈즈가 주를 이뤘으나, 로퍼는 끈이 없는 슬립온 스타일로 신고 벗기 편리한 특성에서 그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로퍼가 처음 탄생한 시점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며, 영국과 노르웨이에서 그 기원을 추측할 수 있다. 먼저 영국 국왕 조지 6세가 1926년 런던에서 핸드메이드 슈즈로 명성이 자자했던 ‘와일드스미스 슈즈(Wildsmith Shoes)’에 편안한 실내용 슈즈를 주문한 하우스 슬리퍼가 그 시초 중 하나로 알려졌다. 1920년대 초 노르웨이의 슈즈 장인 닐스 트베랑에르가 북미 인디언의 모카신과 노르웨이 어부들의 슈즈를 결합한 디자인으로 출시한 ‘아우를란 모카신(Aurland Moccasin)’이 시작이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유럽을 방문한 여행객들이 이 아우를란 모카신을 미국에 전파하며 대중화되었다는 것. 이후 미국에서는 ‘지에이치 바스(G.H. Bass)’가 1936년 로퍼 디자인의 정석으로 불리는 ‘위전스(Weejuns)’ 로퍼를 출시한다. 위전스라는 이름이 노르위전(Norwegian)과 비슷한 발음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로퍼는 끈이 없어도 안정감 있게 신을 수 있도록 착용자의 발에 딱 맞게 재단한다. 또 가죽을 잇는 스티치가 겉으로 보이도록 꿰매는 것이 특징이다. 로퍼는 시간이 흐르면서 디자인을 변주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페니 로퍼는 어퍼 부분의 스트랩 장식에 슬릿을 넣은 디자인으로, 영국에서 학생들이 위급한 통화에 대비해 전화 요금 2페니를 양발에 나눠 끼우고 다닌 것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전통은 미국 대학생들에게도 전해져 위전스 로퍼에 1센트를 끼우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유행하기도 했다. 로퍼가 아이비리그 룩과 프레피 스타일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도 실용적이면서 세련된 디자인 덕분에 학생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2개의 태슬이 달린 태슬 로퍼도 우아하고 포멀한 무드를 연출 가능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오늘날에는 가죽 소재뿐 아니라 코튼 캔버스, 스웨이드 등 더욱 다양한 소재와 청키한 솔, 스퀘어 토, 하이브리드 실루엣처럼 개성 있는 스타일로 변주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셀러브리티의 스타일에서도 로퍼는 빠지지 않는다. 팝 스타 마이클 잭슨은 ‘빌리 진(Billie Jean)’을 공개한 첫 무대에서 플로샤임의 로퍼를 신고 문워크를 선보이며 희대의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이후 흰 양말과 블랙 로퍼는 무대를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그의 상징적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또한 로퍼를 사랑하는 스타였으며, 배우 제임스 딘은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흰 티셔츠와 데님 팬츠에 로퍼를 매치해 단숨에 청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영국의 다이애나 스펜서 역시 로퍼를 즐겨 신으며 지금도 회자되는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를 남겼다. 북미 인디언의 에스닉한 모카신에서 영감받아 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을 거쳐 셀러브리티의 패션 슈즈로 자리 잡기까지. 편안함과 실용성,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을 완성하는 디자인을 갖춘 로퍼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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