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급격히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요양병원·시설 중심 의료체계를 지역사회 돌봄 중심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방문 재활·검사 등 재택의료를 제한하는 1970년대식 의료 규제가 여전히 유지되면서, 제도 변화 속도를 현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건강보험 재정은 사실상 적자 전환이 유력한 분위기다. 건보 재정 흑자 규모는 2023년 4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4996억원 수준까지 급감했고, 지난해 건강보험 급여 지출액은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 안팎에서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의료 이용 증가로 건보 재정 부담이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3%를 기록하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은 고령화 심화로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돌봄 재정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 장기요양 수급자는 지난해 116만명을 넘어섰고, 75세 이상 후기고령자가 전체 수급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가 지난 3월 ‘돌봄통합지원법’을 시행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살던 곳’에서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연계해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장기 입원과 사회적 입소를 줄이고, 재택 중심 의료체계로 전환하겠다는 방향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 통합돌봄 시범사업에서는 요양병원 입원율과 시설 입소율 감소, 건강보험 및 장기요양보험 비용 절감 효과가 확인됐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월 국회 토론회에서 “병원 중심 체계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낮다”며 “퇴원 이후 지역사회 연계가 원활하지 않으면 재입원과 시설 입소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택·지역 중심 돌봄 확대 흐름과 달리, 이를 뒷받침할 의료체계와 법·제도는 여전히 병원 중심 구조에 머무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의료기사법상 물리치료사·임상병리사 등 의료기사는 ‘의사의 지도’ 아래에서만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해당 규정은 의료서비스가 병원 내부 중심으로 이뤄지던 1970년대 의료체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50년 넘게 이어져 왔다.
당시에는 의사와 환자가 의료기관 안에서 대면 진료를 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던 만큼, 재택 재활·방문 돌봄 수요가 급증한 현재 의료 환경과는 차이가 있다는 평가다. 의료기사단체들은 이 규정이 의료기관 내부를 전제로 만들어져 방문 재활·방문 검사 같은 지역 돌봄 현장과 충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국회에는 의료기사 업무 기준을 ‘의사의 지도’에서 ‘처방 또는 의뢰’ 체계로 바꾸는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의사의 처방을 전제로 의료기관 소속 물리치료사·임상병리사 등이 환자 자택을 방문해 재활·검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여야 의원 34명이 공동 발의했지만, 의사단체 반발 등으로 국회 법안소위 상정은 무산됐다.
의료기사단체들은 초고령사회에서 방문 재활과 만성질환 관리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이나 장애인이 병원을 오가다 치료를 중단하거나 장기 입원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지역사회 기반 재활·검사 체계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구조에서는 환자와 가족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며 병원을 오가거나 치료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의사의 처방을 전제로 한 방문 재활은 통합돌봄 체계를 작동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환자 안전과 책임 소재 문제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의협은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가 불명확해질 수 있고, 의료기사 업무 범위 확대가 사실상 단독 의료행위 허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진료지원(PA) 간호사 확대,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논란 등과 맞물려 의사 중심 의료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단순 직역 갈등을 넘어 초고령사회 의료체계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충돌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치료 중심 의료체계가 돌봄 중심 구조로 이동하고 있지만, 재택의료 인프라와 전달체계, 법·재정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 병원 중심 체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역사회 통합돌봄 역시 인프라 부족 문제가 거론된다. 동네의원 참여가 저조한 데다 방문진료·방문재활 기관도 부족하고, 지역 간 의료격차도 크다. 올해 통합돌봄 예산은 전국 229개 시군구 기준 평균 2억7000만원 수준에 불과해 전달체계 구축이 쉽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건보 재정 압박이 커질수록 기존의 입원 중심 의료체계를 지속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이어진다. 건보 전문가들은 초고령사회에서 요양병원과 장기입원 의존 구조가 지속될 경우 재정 부담이 더 빠르게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결국 지역사회 기반 돌봄 확대와 의료 접근성, 환자 안전, 건보 재정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작업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장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기존의 요양병원·장기입원 중심 의료체계만으로는 급증하는 돌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재택의료와 지역사회 기반 돌봄 확대는 피하기 어려운 흐름인 만큼, 환자 안전과 의료 접근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 정비와 함께 재정 지원, 전달체계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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