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땅 강제할양·독일인 대거 추방 과거사 얽혀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도 전에 나치 독일에 영토를 빼앗긴 체코에서 종전 80여년 만에 독일인 동포 행사가 열린다. 체코 우파가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독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하기로 하면서 양국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체코 매체 라디오프라하 등에 따르면 주데텐 독일인 향우회(이하 향우회)는 오순절 기간인 이달 22∼25일 체코 브르노에서 제76회 '주데텐 독일인의 날' 행사를 연다.
주데텐 독일인은 옛 체코슬로바키아에 살던 독일계 주민을 말한다. 향우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체코에서 추방된 약 300만명 독일인과 그 후손들 모임이다.
향우회는 당시 독일인들이 많이 이주한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와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해마다 문화축제 형식의 동포 행사를 열어 왔다. 체코 땅에서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행사는 체코 민간단체가 향우회를 초청해 성사됐다. 바이에른주 총리이자 이 지역 정당 기독사회당(CSU) 대표인 마르쿠스 죄더, 연방 내무장관 알렉산더 도브린트(CSU) 등 독일 유력 정치인들도 잇따라 브루노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과거 독일인 거주지역에 얽힌 역사적 감정이 아직도 봉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치 독일과 영국·프랑스·이탈리아는 1938년 9월 뮌헨협정에서 독일인이 많이 사는 일명 주데텐란트 지역을 독일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나치는 무력 사용 없이 체코 땅을 손에 넣은 뒤 이듬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주데텐란트 할양은 열강들이 맘대로 약소국 주권을 짓밟은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행사 소식이 알려지자 체코에서는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바츨라프 클라우스 전 대통령은 "체코에서 주데텐 독일인의 날 행사를 여는 건 무의하고 도발적"이라고 말했다. 페트르 마친카 외무장관은 "브르노가 (분노로) 불타고 사람들이 격하게 항의하고 있다"며 "죄더와 도브린트는 브르노에서 결코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체코 여권은 행사 취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의회에 올렸다.
반면 독일에서는 작년 연말 출범한 체코 우파 포퓰리즘 정부가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행사에 30만유로(약 5억2천500만원)를 지원한 CSU는 "브르노에서 열리는 행사는 기억과 화해가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독일인) 추방 80년 만에 열리는 이 행사는 화해로의 초대장"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에서 열린 이전 향우회 행사에는 체코 정부 대표가 참석해 화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2016년에는 다니엘 헤르만 당시 체코 문화장관이 독일어로 연설하며 전후 독일인 추방에 유감을 표명했다.
브르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5월 말 독일인들이 비인간적 환경에서 국경 바깥으로 쫓겨난 이른바 '죽음의 행진'이 시작된 곳이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브르노가 독일인 추방 과정에 벌어진 만행의 상징인 건 사실"이라고 "나치 만행의 의미가 축소되고 추방된 독일인들이 재산 반환을 요구할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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