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야쿠르트 한 병이 복지망 됐다, 국회 잠든 사이 골목 누빈 1만1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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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야쿠르트 한 병이 복지망 됐다, 국회 잠든 사이 골목 누빈 1만1000명

폴리뉴스 2026-05-12 18:24:28 신고

정치의 날갯짓은 산업을 흔들고, 산업의 떨림은 다시 정치를 움직인다. 대통령의 한 마디, 국회의 법안 한 줄, 정상외교의 선물 꾸러미 하나가 기업과 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나비효과를 만들어낸다. 정치와 경제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생태계다. 폴리뉴스 '나비효과'는 그 떨림의 진원지를 찾아간다. (편집자주)

 

2014년 도입된 코코는 프레시매니저가 더 넓은 구역을 더 빠르게 누빌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됐으며,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최전선 장비로 자리잡았다. [사진=연합뉴스]
2014년 도입된 코코는 프레시매니저가 더 넓은 구역을 더 빠르게 누빌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됐으며,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최전선 장비로 자리잡았다. [사진=연합뉴스]

"정기적으로 전달되는 야쿠르트 한 병이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소중한 안부이자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12일 대전 대덕구 오정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협약식에서 송순미 오정동장이 한 말이다. 이날 hy (옛 한국야쿠르트) 대덕점 소속 프레시매니저 7명이 '명예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공식 위촉됐다. 야쿠르트를 파는 민간 판매원이 국가 복지 행정의 공식 인력으로 편입된 장면이었다. 국회가 법으로 만들려는 복지 안전망을 산업 현장이 먼저 실현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국회에서 잠자는 법안, 골목에서 먼저 움직인 현장

국회에는 지금 고독사 예방법 개정안 8건이 계류 중이다. 의사 출신 차지호 의원(외통위 · 더불어민주당 · 경기 오산)이 지난 1월 발의한 개정안은 고독사 위험자에 대해 월 1회 이상 정기적인 안부 확인 서비스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소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광주갑) 도 같은 달 개정안을 발의했다. 소병훈 의원은 "고독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라며 "특히 고독사 위험이 높은 장년층을 포함해 생애주기별 특성을 반영한 예방적 ·선제적 대응을 강화하고, 변화하는 사회 현실에 맞게 정책의 속도와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8건 모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고독사 사망자는 3924명으로 전년 대비 7.2% 증가했다. 전국 지자체 243개 중 고독사 예방 지원 조례를 제정한 곳은 절반인 124곳에 그쳤다. 나머지 119개 지역은 사실상 고독사 사각지대다. 법안이 잠든 사이 현장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수치가 변화를 증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독사를 최초 발견한 사람 중 보건복지서비스 종사자 비중이 2020년 1.7%에서 2024년 7.7%로 약 4.5배 증가했다. 국가 복지 인력이 아닌 민간 방문 서비스 종사자들이 고독사 발견의 최전선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 중심에 hy 프레시매니저가 있다.

'건강사회건설'의 꿈, 1971년 47명에서 1만1000명의 복지 인프라로

hy의 프레시매니저 역사는 1969년 창업 정신과 맞닿아 있다. hy가 내건 경영 이념은 '건강사회건설'이었다.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을 포함해 활력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야쿠르트 한 병을 팔면서 동시에 사회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이 철학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복지 사각지대 돌봄 활동으로 구체화된 셈이다.

출발은 소박했다. 1971년 서울 종로 지역을 중심으로 가정주부 47명을 모집했다. 냉장고가 흔치 않던 시절, 이들은 유산균 효능을 설명하는 교육자이자 판매원이었다. 47명으로 시작한 조직은 1998년 1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 전국 1만1000여 명으로 확대됐다.

2014년 보급된 탑승형 냉장 전동카트 '코코(COCO)'는 프레시매니저가 더 넓은 구역을 더 빠르게 방문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됐다. 매일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는 1만1000명의 바퀴가 결국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최전선 장비가 된 것이다.

hy가 '홀몸노인돌봄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4년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의도하지 않은 설계에 있다. 별도의 복지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방문판매 구조 위에 안부 확인 기능을 얹은 모델이다.

정해진 시간에 방문했는데 인기척이 없거나 이전에 배달한 제품이 그대로 놓여 있으면 이상 징후로 감지해 즉각 관계 기관에 연락한다. 야쿠르트가 쌓인 문 앞이 고독사 조기 경보 시스템이 된 것이다.

민간이 국회보다 먼저 실행한 나비효과

현장의 목소리가 이를 증명한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29년째 프레시매니저로 활동 중인 탁정숙 매니저는 지난해 12월 독거노인에게 제품을 전달하던 중 고독사를 발견하고 관계 기관에 즉각 연락해 필요한 조치를 지원했다. 암 수술로 거동이 어려운 고인의 잔심부름을 돕고 말벗이 되어주는 등 정서적 지원을 이어온 29년 인연이었다.

이 공로로 광진구청장 표창을 받은 탁 매니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을 받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독거 어르신들의 안부를 더 꼼꼼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현재 그가 돌보는 독거노인만 14명이다.

지난해 8월에는 전북에서 활동 중인 이현숙 프레시매니저가 홀몸노인 가정을 방문하던 중 고독사를 발견하고 즉시 관계 기관에 알렸다. 고인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킨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한 이 매니저는 "작은 관심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앞으로도 어르신들 곁을 지키며 안전하고 따뜻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hy(옛 한국야쿠르트)의 사명 'hy'는 'how are you'의 줄임말이다. 1969년 창업 이래 '건강사회건설'을 경영 이념으로 삼아온 기업 철학이 사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사진=hy CI]
hy(옛 한국야쿠르트)의 사명 'hy'는 'how are you'의 줄임말이다. 1969년 창업 이래 '건강사회건설'을 경영 이념으로 삼아온 기업 철학이 사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사진=hy CI]

지자체와의 협력도 구체적 수치로 확대되고 있다. hy는 지난해 12월 양천구 · 양천사랑복지재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고독사 위험군 500명에게 주 3회 건강음료를 제공하며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상 징후 발견 시 즉시 주민센터와 공유해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도록 돕는 구조다. 서울시와는 '외로움 없는 서울을 위한 민관 협력체계 구축 업무 협약'을 체결해 고립은둔가구 안부 확인과 관계기관 연계를 이어가고 있다. 공공기관과 복지재단 등 42개 기관이 참여하는 'how are you 안부+' 사업을 통한 누적 수혜 인원은 약 8300명에 이른다.

차지호 의원안이 의무화하려는 월 1회 안부 확인 기준을 hy는 이미 주 2회에서 주 3회 방문으로 훌쩍 넘어서고 있다. 소병훈 의원이 강조한 "정책의 속도와 체계를 정비할 필요"는 역설적으로 이미 현장에서 민간이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시사적이다. 국회가 법으로 만들려는 것을 민간 기업이 자발적 사업 모델로 먼저 실행하고 있는 구조다.

hy의 2024년 매출액은 1조6826억원으로 전년 대비 10.8% 증가했다. 사회적 신뢰 자산이 실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경훈 hy 강서지점장은 "고독사 위험군을 향한 세심한 돌봄은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의 출발점"이라며 "앞으로도 취약계층 안부확인 서비스 등 실효성 높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사실 hy라는 사명 자체가 이미 이 모든 활동의 본질을 담고 있다. 'how are you', 즉 '안녕하세요, 잘 지내세요'라는 일상의 안부 인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야쿠르트 한 병을 전달하며 건네는 그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유일한 안부가 된다는 사실을, 이 기업은 사명 속에 새겨두고 있는 셈이다.

정치의 날갯짓이 미처 닿지 못한 곳에서 산업의 떨림이 먼저 시작되고 있다. 국회에서 잠자는 고독사 예방법 8건이 현실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이, 야쿠르트 한 병을 들고 골목을 누비는 1만1000명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1969년 '건강사회건설'을 꿈꾼 창업 정신이 반세기를 돌아 복지 사각지대에서 나비효과로 피어나고 있는 장면이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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