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내 주택 거래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던 '즉시 실거주 의무'가 대폭 완화된다. 정부가 다주택자뿐만 아니라 세입자가 있는 비거주 1주택자의 매물에 대해서도 매수자가 무주택자라면 임대차 계약 종료 시까지 실거주를 유예해주기로 했다. 거래 절벽이 심화하는 가운데 잠겨있던 매물을 시장으로 끌어내고 무주택 실수요자의 진입 문턱을 낮추겠다는 포석이다.
국토교통부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토지거래허가구역 실거주 유예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토허구역 내 주택 매수 시 적용되던 4개월 이내 입주 및 2년간 실거주 의무를 임대차 계약이 남아있는 모든 주택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이다.
그동안 토허구역에서 주택을 사려면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 후 4개월 안에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직접 들어가 살아야 했다. 이 때문에 전세를 끼고 집을 파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큰 불편을 겪어왔다.
정부는 당초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5월 9일)에 맞춰 다주택자 보유 매물에 대해서만 한시적으로 실거주를 유예해왔다. 그러나 토허구역 내 비거주 1주택자들 사이에서 "실거주하지 않는 1주택자는 왜 매도 기회를 주지 않느냐"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자, 정부가 이를 전격 수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12일 기준 임대차 계약이 체결되어 있는 주택이라면 다주택, 1주택 여부와 관계없이 실거주 유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유예 기간은 해당 임대차 계약 종료일까지이며, 계약 갱신 등을 고려하면 최장 2028년 5월 11일까지 입주를 미룰 수 있게 된다.
다만 정부는 투기 수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매수자 요건을 엄격히 제한했다. 이번 유예 조치를 적용받아 주택을 매수하려는 자는 발표일인 5월 12일부터 허가 신청일까지 계속해서 무주택자여야 한다.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토허구역 내 주택을 사려는 이른바 '갈아타기' 수요는 이번 혜택에서 제외된다. 12일 이후에 집을 팔아 무주택자가 된 경우도 인정되지 않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철저하게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돕고, 기존 집주인들의 매도난을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신청 기한도 정해져 있다. 올해 12월 31일까지 관할 지자체에 토지거래허가를 신청해야 하며, 허가 결정 후 4개월 이내에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쳐야 유예가 확정된다. 아울러 실거주가 유예되는 만큼, 주택담보대출 실행 시 부과되던 전입신고 의무도 해당 기간만큼 면제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토허구역의 근간인 '실거주 원칙'을 흔들고 사실상 '갭투자'를 허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전세를 낀 채 주택을 매수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조치는 오늘(12일) 기준으로 이미 임대차 계약이 존재하는 주택에 한정해 실거주 시점만 뒤로 미루는 것"이라며 "새로 세입자를 들여 갭투자를 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며, 유예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2년간 실거주해야 하는 의무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이번 조치가 서울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 등 주요 토허구역 내 매물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양도세 중과가 재개된 다주택자보다는, 비거주 1주택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대거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토허구역 내 가장 큰 규제였던 거주 의무가 완화되면서 매도하고 싶어도 못 팔던 집주인들이 매물을 내놓기 시작할 것"이라며 "무주택자 입장에서도 당장 입주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 없이 전세금을 활용해 상급지로 진입할 기회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수요가 몰리는 강남권 토허구역에서 전세를 끼고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며 "실수요자로 한정하긴 했지만, 자산가 무주택자들이 선취매에 나설 경우 지역 가격을 밀어 올리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관건은 실제 매물 소화 속도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10일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재개된 상황이라 다주택자들은 세금 부담 때문에 매도를 주저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조치의 실질적인 효과는 비거주 1주택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매물을 내놓느냐, 그리고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높은 금리와 가격대를 감당하며 매수에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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