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시간 - 6] 신세계, 96년 유통 제국…1부 이명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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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시간 - 6] 신세계, 96년 유통 제국…1부 이명희의 시간

폴리뉴스 2026-05-12 16:21:08 신고

[편집자주] '기업의 시간'은 대한민국 산업을 만들어 온 기업들의 역사와 변곡점을 기록하는 연재다. 창업과 성장, 위기와 재편을 거치며 기업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바꿔왔다. 폴리뉴스는 이 연재를 통해 식품·유통·소비재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의 한 축을 형성해 온 기업들의 발자취와 경영의 전환점을 차례로 조명한다.

 

▲ 2025년 4월 9일 개관한 신세계백화점  더 헤리티지(The Heritage) 전경.  사진=신세계/연합뉴스
▲ 2025년 4월 9일 개관한 신세계백화점  더 헤리티지(The Heritage) 전경.  사진=신세계/연합뉴스

2025년 4월 9일, 서울 중구 회현동에 묵직한 화강암 외벽의 하얀 건물이 새 간판을 달았다. 1935년 준공한 옛 제일은행 본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1호다. 신세계백화점이 2015년 매입해 10년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끝에 럭셔리 전문관 '더 헤리티지(The Heritage)'로 열었다. 1·2층에는 샤넬이, 4층에는 역사관과 갤러리, 5층에는 한국문화 체험 · 전시 공간이 자리했다. 이름 그대로 유산이었다.

바로 옆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1930년 미쓰코시 백화점으로 시작한 건물이다. 96년 전 경성에서 한국 최초의 백화점이 문을 열었던 그 자리에, 신세계는 지금도 새로운 공간을 쌓아 올리고 있다. 역사를 현재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신세계가 96년간 유통의 판을 바꿔온 방식이었다.

경성의 백화점, 삼성을 거쳐 신세계로

신세계의 시계는 1930년에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경성 충무로에 들어선 미쓰코시 백화점이 그 출발점이었다. 해방 후 동화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되다 1963년 삼성그룹이 인수하면서 신세계백화점으로 새 간판을 달았다. 삼성의 유통 사업 거점으로 성장하던 신세계는 1967년 국내 최초 바겐세일을 실시하고 1969년 직영백화점으로 전환하며 국내 최초로 신용카드를 발급했다. 

이병철 창업주가 막내딸 이명희에게 경영을 맡긴 것은 1979년이었다. 당시 이명희의 나이 37세, 12년간 전업주부로 살아온 늦깎이 경영인의 출발이었다. 이병철은 경영에 자신 없다는 딸을 설득하며 말했다. "앞으로는 여성도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 삼성가 최초의 여성 경영인이 그렇게 탄생했다.

이명희는 1991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 경영을 선언하고 1997년 공정거래법상 완전 계열 분리를 이뤘다. 당시 신세계가 가진 것은 백화점 두 개와 1983년 인수한 웨스틴 조선호텔이 전부였다. 매출 1조7500억원, 재계 33위. 1998년 이명희가 회장직에 오르며 신세계의 독자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명희의 유통 철학, 공간이 곧 전략이다

이명희의 경영은 유통을 과학으로, 심리학으로 풀어낸 45년의 실험이었다. 소비자가 어디서 발길을 멈추는지,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무엇이 지갑을 열게 하는지를 공간 설계로 답하는 방식이었다. 물건을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이명희가 한국 유통 지형을 바꿔온 핵심 문법이었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사라진다." 신세계로 사명을 바꾼 2001년 이후 이명희가 내부에서 거듭 강조한 말이었다. 이 한마디가 이마트 전국 확장, 스타벅스 도입, 센텀시티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이어지는 신세계 성장의 동력이 됐다.

첫 승부수는 대형마트였다. 1987년 부친 이병철이 별세한 후 미국을 찾은 이명희는 프라이스클럽과 월마트 등 창고형 점포를 보고 한국형 대형마트의 가능성을 직감했다. 귀국 후 전담사업부를 구성했고 1993년 11월 서울 창동에 이마트 1호점을 열었다.

개점 첫날 2만7000여 명이 몰렸다. 전통시장과 동네 슈퍼마켓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에게 1500평 매장에서 공산품과 신선식품을 상시 저가로 살 수 있다는 것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하루 매출 1억원을 넘기며 대형마트 시대의 막이 올랐다.

1997년 외환위기도 이명희는 기회로 읽었다. 이듬해 월마트 지분을 인수하며 전국 확장의 교두보를 마련했고 2006년 월마트코리아를 완전 인수해 이마트를 대형마트 압도적 1위로 굳혔다. 같은 해 이마트 국내 점포는 100호점을 돌파했다.

1997년 스타벅스 인터내셔날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1999년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열었다. 커피 한 잔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들여오는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금 연 매출 3조1000억원, 전국 매장 2000개를 넘는 국내 커피 시장의 압도적 1위가 됐다.

2005년에는 미국 첼시 프로퍼티 그룹과 합작해 신세계첼시를 설립하고 2007년 여주프리미엄아울렛을 열며 국내 프리미엄 아울렛 시장을 개척했다. 2009년 부산 센텀시티에 스파랜드·아이스링크·CGV를 품은 세계 최대 규모 백화점을 개장해 기네스 인증을 받았다.

쇼핑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목적지로 백화점을 재설계한 것이었다. 전문 경영인에게 전권을 맡기되 결과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이명희는 이 모든 확장을 이끌었다. 은둔형 총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지만 신규 점포와 리뉴얼 매장을 직접 찾아 3시간 이상 꼼꼼히 점검하는 현장 경영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별마당에서 스타필드까지, 26년의 완성

이명희의 유통 철학이 가장 세련된 형태로 완성된 것은 2010년대였다. 2006년 부회장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정용진 회장은 어머니의 공간 경영 철학을 물려받아 새로운 실험을 이어갔다. 2016년 경기 하남에 스타필드 하남을 열었다. 쇼핑 · 식사 · 여가 · 엔터테인먼트를 한 지붕 아래 결합한 복합쇼핑몰이었다.

이듬해 2017년에는 코엑스몰 한복판에 높이 13m 서가를 품은 별마당 도서관을 들였다. 책을 팔지 않는 공간이 쇼핑몰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방문객을 끌어모으는 유통 전략이었다. "고객의 소비보다 시간을 빼앗겠다"는 정용진 회장의 말은 이명희의 문법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었다. 소비자가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할수록 소비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공간 경영의 DNA가 모자(母子)를 통해 이어졌다.

2011년 이마트와 신세계를 인적 분할해 각각 독립 법인으로 세우며 정용진 회장에게 이마트 부문을, 딸 정유경 회장에게 백화점 부문을 맡기며 사실상의 남매 경영을 준비했다. 계열 분리 당시 1조7500억원이던 신세계 매출은 이마트 부문만 29조원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재계 순위도 33위에서 11위로 뛰었다.

1979년 신세계 이사로 첫 출근한 이명희는 45년을 유통에 바쳤다. 그 가운데 회장으로 직접 지휘한 시간은 26년이었다. 2024년 3월 정용진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승진시키고 자신은 총괄회장으로 한 발 물러섰지만, 이명희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그해 10월 정유경 회장을 신세계 회장으로 올리며 이마트 부문과 신세계 부문의 계열 분리를 공식 선언했다.

미쓰코시 백화점이 경성에 문을 연 지 94년, 이명희가 영업담당 이사로 첫 출근한 지 45년 만이었다. 이제 남매의 시간이 오른다.

※ 이 기사는 연재 '기업의 시간' 6편 1부다. 다음 편에서는 2부, 남매의 시간을 살펴본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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