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리터당 10달러 육박하는 쿠바…차 없는 스산한 거리
20㎞ 택시비가 10만원대…미 봉쇄 후 관광객 7분의1 토막에 '신음'
택시운전사 "손님 줄고 기름값 뛰어 고역"…폐업한 호텔도 눈에 띄어
[※ 편집자 주 = 지난 1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쿠바 봉쇄가 시작된 지 100일을 넘으면서 쿠바의 에너지 위기가 가중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 발언이 반복되면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끊이지 않습니다. 연합뉴스는 전력난과 긴장 속에 고군분투 중인 쿠바인들의 삶과 목소리, 우리 교민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카리브해 섬나라까지 스며든 K컬처의 힘을 조명하는 현지 특파원 기사를 연재합니다.]
(아바나=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956년 12월 초, 혁명 동지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멕시코에서 '그란마호'를 타고 조심스럽게 쿠바의 한 해안에 비밀리에 상륙했다. 그로부터 70년이 흘렀건만, 쿠바는 여전히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특히 지난 1월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압송된 이후 미국이 쿠바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면서 배편도, 항공편도 큰 폭으로 줄었다. 그나마 같은 '좌파' 정부로서 쿠바와 이념을 공유하는 멕시코에서 쿠바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편인데, 멕시코시티의 가장 큰 공항에서도 고작 하루에 한 편 정도만 쿠바행 비행기를 운행할 뿐이다. 그마저도 텅텅 비기 일쑤다. 기자가 11일(현지시간) 오전에 탄 멕시코시티발 아바나행 항공기의 절반가량은 좌석이 비어 있었다.
이 비행기만 텅텅 빈 건 아닌 듯했다. 항공기에서 내려 공항을 나가기 위해 입국심사서를 작성하는 곳으로 가 보니, 마찬가지로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봄비는 사람들로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인 여타 관광지 공항과는 달리, 관광객들은 줄을 거의 서지 않고 입국 심사대로 갔다.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서 그랬던 걸까. 별이 두 개쯤 어깨에 박힌 제복을 입은 여성 입국 관리 심사관이 미국이나 멕시코의 심사관들처럼 까다롭게 굴지 않고, 친절한 미소로 띠며 환영했다.
"웰컴 투 쿠바"(Welcome to Cuba)
쿠바는 한때 라틴아메리카에선 정평이 난 관광지 중 하나였다. '신의 선물'이라는 아름다운 바다가 수도 아바나에 있고, 넓지는 않지만 정갈한 도로를 알록달록한 '클래식카'들이 신나게 달리며, 고풍스러운 거대한 극장들과 골목골목에 재즈바들이 똬리를 틀고 있어 관광객들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장소였다. 영화 '대부'의 말론 브랜도가 피우던 '시가'의 고향, 소설가 헤밍웨이가 마시던 '모히토'가 탄생한 곳은 '시원한 더위'에 목마른 북쪽 캐나다인과 러시아인, 고국의 영웅인 체 게바라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하는 남쪽 아르헨티나인 등 서구인들에게 꿈의 낙원처럼 여겨졌다.
이런 매력 탓에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당시 미국과의 관계가 한창 좋았을 때는 연간 300만~400만명의 관광객이 쿠바를 찾기도 했다.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기 직전인 작년까지만 해도 상황이 완전히 나빠지진 않았다. 쿠바 정부는 작년 260만명의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삼았으나 180만명을 기록하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올해 상황은 더 좋지 않다. 특히 날씨가 좋아 성수기로 손꼽히는 1분기 관광객이 급감했다.
쿠바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쿠바를 찾은 관광객 수는 29만8천57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48% 감소했다. 월별로는 1월 18만4천833명, 2월 7만7천663명, 3월 3만5천561명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급격히 줄었다. 3월 관광객은 1월 대비 80.8%나 감소했다. 이는 2023년과 2024년 1분기 월평균 관광객(25만명)과 비교하면 7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관광객이 줄어드니 관광업에 기대 먹고 사는 아바나 시민들의 삶도 곤궁할 수밖에 없다. 택시 운전사 윌프레도 씨는 공항에서 손님을 대기하다 연합뉴스와 만나 "물가가 너무 올라서 살기 힘들다. 미국의 봉쇄 이후에는 관광객들도 줄어 입에 풀칠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적어도 하루 6~7명을 공항에서 호텔까지 태웠다고 한다. 올해 들어서는 운이 좋아야 하루 2명을 받는다고 한다. 손님이 3분의 1로 뚝 줄어들면서 수입은 큰 폭으로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네수엘라와 멕시코 등에서 오던 '원유 원조'가 미국의 압박 속에 뚝 끊기면서 휘발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쿠바의 휘발유 가격은 현재 리터당 10달러 안팎에 이른다. 한국 돈으로 ℓ당 거의 1만5천원에 달하는 셈이다. 윌프레도 씨는 "손님을 받기 어려운 데다 기름값도 비싸서 택시비가 비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넋두리했다.
실제 기자가 공항에서 해안에 위치한 한 호텔까지 택시를 타고 20㎞ 남짓을 갔는데, 택시비만 70달러가 나왔다. 한국 돈으로 10만원이 넘게 나온 것이다. 현지에서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정호현 교장은 "얼마 전까지 30달러 안팎이었던 것 같은데, 너무 많이 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교장은 "자가용이 있지만, 차를 운행하지 않은 지가 너무 오래됐다. 기름값이 비싸, 내 주변에선 영업용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가용을 운전하진 않는다"고 했다.
비록 비싼 돈을 냈지만, 관광지 특유의 고질적 차량 정체에 시달리는 건 면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다. 마치 설날 전야의 서울 밤길처럼, 뻥 뚫린 도로를 시원하게 달린 건 오랜만이었다. 아바나 도로의 주인은 자동차가 아니었다. 차는 거의 없었다. 대신 자전거들이 조금 다녔고, 오토바이도 간헐적으로 보였다. 대부분 앞뒤로 두 명씩 탄 그런 오토바이들.
도로 사정이 이런데, 호텔 등 숙박업 장사가 잘될 일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관광업자 루돌프 씨는 "불경기도 이런 불경기가 없다. 쿠바는 망하고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이 얼마나 줄었냐고요. 40%? 50%? 수치로는 잘 모르겠어요. 하여튼 엄청나게 줄었어요. 근처에 있는 호텔들도 문을 많이 닫았으니까요."
호텔 프런트에서 일하는 헬렌 씨의 말이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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