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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인도 뉴델리 외곽 공장지대에서 일하던 쿤타 데비와 아들 라자 바부(24)는 최근 숙소를 비우고 고향 마을로 떠났다. 모자(母子)가 함께 벌어 월 2만루피(약 31만원)를 손에 쥐었지만, 가정용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이 하룻밤 새 4배로 뛰면서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라자 바부는 “가스 가격이 오른 탓에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우리 삶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한 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인도의 LPG 수입에 차질이 빚어졌다. 인도 LPG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오는 탓에 인도 내 가스 가격은 단기간에 폭등했다. 모디 총리는 최근 며칠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 달라”며 국민들에게 호소했으나, 산업 현장의 충격은 이미 지표를 앞질러 확산하는 분위기다.
뉴델리 외곽 공업도시 노이다는 대표적인 ‘위기의 진앙’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이 곳에선 노동자들의 집단 이탈과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노동권 활동가 시레야 고시는 “LPG 가격 상승으로 생활이 견딜 수 없게 됐다”며 “월 최저임금 1만 1000루피(약 17만원) 수준의 임금으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향으로 떠난 노동자 수가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로 뉴델리 중앙역 광장은 고향행 열차를 기다리는 이주노동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FT는 전했다. 짐꾼 비젠더는 인파를 가리키며 “가스 가격 상승의 충격이 정말 컸다. 저 사람들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노이다 빈민가에 사는 사니야 쿠레시(17)의 어머니는 의류공장에서 12시간 교대 근무로 월 1만 1000루피를 벌어왔지만, 이제는 가스 대신 장작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쿠레시는 “모든 게 너무 비싸다. 어떻게 먹고 살란 말인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 소속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정부는 최저임금을 최대 21% 인상하는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이번엔 산업계가 반발했다. 인도산업연맹(CII)은 주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업종 전반의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며 “기업들이 비용 경쟁력 있는 다른 주로 이전·확장을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이다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하는 비크람(가명)은 노동자 이탈로 공장 가동률이 30%까지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임금 인상 이후 “노이다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비용이 더 낮은 인접 마디아프라데시주로 옮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재·연료비까지 동반 상승하며 중국·베트남·방글라데시와 가격 경쟁을 벌여온 인도 제조업체들의 부담은 한층 무거워졌다. CII 우타르프라데시 지부 위원인 비노드 샤르마는 “이곳 기업의 90%가 마진 10% 이하에서 버틴다”며 “중국이 우리 제품 가격을 결정한다. 그들은 과잉생산 능력과 국가 보조금, 노동자 기숙사까지 갖췄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사태가 ‘메이크 인 인디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와할랄네루대(JNU)의 노동경제학자 히만슈 교수는 “노동자가 생계를 유지할 만큼 벌지 못하는 곳에서 선진경제는 만들어질 수 없다”며 “2011~2012년 이후 임금 상승률이 물가를 따라잡지 못해 실질임금이 꾸준히 하락해 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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