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일희일비하지 마세요"…건강검진, 제대로 활용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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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일희일비하지 마세요"…건강검진, 제대로 활용하는 법

투어코리아 2026-05-12 10:17: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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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과 오범조 교수
가정의학과 오범조 교수

[투어코리아=최인철 기자] 직장인 A씨(48)는 올해도 어김없이 건강검진을 받았다. 결과지에는 '정상' 도장이 찍혀 있었지만, 하단 소견란에 적힌 몇 가지 수치가 눈에 걸렸다. 지난해보다 혈압이 조금 올랐고, 공복혈당도 경계선에 걸쳐 있었다. "정상이면 괜찮은 건가요, 아닌 건가요?" 그는 결국 병원을 다시 찾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혼란이 건강검진의 목적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오범조 교수는 "검진은 이상 유무를 판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내 몸의 흐름을 추적하는 장기 프로젝트"라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일종의 시험처럼 인식한다. 정상이면 합격, 이상이 나오면 불합격. 하지만 이 접근법은 검진의 본질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오범조 교수는 "단 한 번의 수치로 건강을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같은 혈압 수치라도 평소에도 그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최근 들어 갑자기 올라간 것인지에 따라 임상적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혈압은 수면 부족이나 긴장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오를 수 있고, 혈당은 전날 식사 내용이나 스트레스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단백뇨 역시 탈수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결국 검진 결과지는 그날 하루의 스냅샷이 아니라, 매년 쌓아가는 건강 기록의 한 페이지로 봐야 한다. "이전 검사 대비 어떤 수치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가검진 항목이 너무 적고 단순한 것 아니냐"는 불만도 자주 나온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국가건강검진에 포함되는 항목들은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한 것들이다. 첫째, 조기 발견했을 때 치료 효과가 명확한 질환인가. 둘째, 발견하지 못하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는가. 셋째, 주기적인 반복 검사가 의미 있는가.

이 기준에 따라 고혈압, 당뇨, 빈혈, 간질환 등이 포함된다. 반면 췌장암처럼 초기 발견이 극히 어렵고 조기 치료 효과도 제한적인 질환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검진에 넣기 어렵다.

오 교수는 "국가검진은 부족한 검사가 아니라,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가장 실질적인 항목만 걸러낸 구조"라며 "기본 항목을 충실히 챙기는 것만으로도 주요 만성질환 대부분을 조기에 잡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건강검진 항목 중 특히 중요도가 높은 것이 위내시경이다.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2년마다 위내시경을 지원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 덕분에 국내 위암 조기 발견율은 꾸준히 높아졌고, 조기 위암의 5년 생존율은 90%를 웃돈다. 내시경 검사 하나가 생사를 가를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검사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미루는 습관'이다. 전날 약속, 바쁜 일정, 검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해를 넘기는 경우가 반복된다. 오 교수는 "검진은 시간이 날 때 하는 선택적 이벤트가 아니라, 정해진 시기에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의료 행위"라고 강조했다.

검진 상담 중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가 가족력 개념이다. "남편이 대장암 진단을 받았는데 저도 검사를 더 자주 받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배우자의 질환은 가족력에 해당하지 않는다.

가족력은 부모, 형제자매, 조부모 등 혈연관계를 기준으로 한다. 특히 △직계 혈족 2명 이상에서 같은 암이 발생했거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암이 발생한 경우 △동일 질환이 세대를 걸쳐 반복되는 경우라면 추가 검진이나 검진 주기 단축을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 중 한 명이 대장암을 앓았고 본인에게도 용종이 여러 개 발견됐다면, 일반적인 권고 주기보다 더 짧은 간격으로 대장내시경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은 검진실 안이 아니라 검진실 밖에서 결정된다.

1970년대 역학 연구에서 제시된 7가지 생활습관(충분한 수면·아침 식사·간식 제한·적정 체중·규칙적 운동·절주·금연) 중 6가지 이상을 실천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율이 뚜렷하게 높았다. 이후 유럽에서 진행된 장수 관련 연구들도 식이·운동·금연·절주라는 단순한 원칙이 수명과 건강수명 모두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검진은 이런 일상의 결과를 확인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도구일 뿐이다. 근본은 매일의 선택이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80세를 훌쩍 넘는다. 그러나 질병 없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은 평균 수명보다 10년 이상 짧다. 더 오래 살지만 그만큼 더 오래 아프게 사는 구조인 셈이다.

오범조 교수는 "건강검진의 진짜 목적은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검진 결과를 받은 뒤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생활 속 작은 변화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검진 결과지에는 BMI 30 이상이면 고도비만, 혈압 120/80mmHg 이상이면 주의, 공복혈당 126mg/dL 이상이면 당뇨 의심 등 일정한 기준이 적혀 있다. LDL 콜레스테롤은 130 이하, 혈색소 수치는 빈혈 기준, 간 기능은 AST·ALT·GGT 수치로 확인한다.

그러나 이 수치들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같은 수치라도 개인의 병력, 나이, 생활 방식, 이전 검사 결과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혈압이 한 번 높게 나왔다고 즉시 고혈압으로 진단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 교수는 "수치 하나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수치가 나의 건강 흐름 속에서 어떤 신호인지를 읽는 것"이라며 "판단이 어렵거나 불안하다면 혼자 결론 내리기보다 의료진과 함께 맥락을 짚어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건강검진은 병을 찾는 이벤트가 아니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꾸준히 기록하고, 방향이 틀어지기 전에 바로잡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성실하게 이어갈 때, 암을 포함한 대부분의 중증 질환은 손쓸 수 없는 단계가 되기 전에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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