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한스경제 신희재 기자 | 올 시즌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시리즈는 풍성한 서사로 주목받고 있다. 정규리그 5위 고양 소노의 후반기부터 이어진 돌풍, 역대 최초 6위 팀 우승을 노리는 ‘슈퍼팀’ 부산 KCC가 묘한 대조를 이루며 흥미를 자아냈다. 고양과 부산에서 열린 1~4차전이 모두 만원 관중 앞에서 열린 가운데 13일 고양에서 열리는 5차전도 조기에 매진이 확정돼 흥행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많은 관심과 달리 3차전까지는 예상보다 다소 싱거운 결과가 나왔다. KCC가 '언더독' 소노 상대로 고양에서 열린 1차전을 75-67, 2차전을 96-78로 크게 이기며 주도권을 가져왔다. KCC는 9일 부산에서 열린 3차전도 혈투 끝에 88-87로 이기면서 시리즈 스윕을 눈앞에 뒀다. 주전 5명 전원이 최우수선수(MVP) 출신으로 구성된 KCC의 개개인 역량이 소노를 압도하는 흐름이었다.
벼랑 끝에 몰린 소노는 4차전에서 귀중한 첫 승을 챙겼다. 3, 4쿼터에만 4차례 역전, 7차례 동점이 나올 만큼 명승부 끝에 81-80으로 1점 차 승리를 거뒀다. 경기 종료 0.9초 전 소노 에이스 이정현이 KCC 주장 최준용의 5반칙을 유도한 후 자유투 1개를 성공해 팀에 승리를 안겼다. 시리즈를 5차전까지 끌고 간 소노는 이제 1997년 출범한 프로농구에서 한 차례도 없었던 챔피언결정전 리버스 스윕에 도전한다.
▲결승 자유투 만든 이정현의 재치
평균 35분 28초 동안 20.3득점, 3점슛 성공률 44.7%. 소노 이정현이 챔피언결정전 4경기에서 남긴 성적표다. 국내 최고 가드인 허훈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고 만든 성과여서 더욱 감탄을 자아낸다.
이정현은 4차전에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3점슛 10개 중 6개를 성공하며 팀 내 최다인 22득점을 올렸는데, 특히 승부처였던 4쿼터에서 무려 10득점을 올리며 팀 득점의 절반을 책임졌다. 결승 자유투도 이정현의 손끝에서 나왔다.
경기 후 만난 이정현은 4차전 승리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3, 4차전이 백투백 경기라 힘들었다. 3차전까지 3패를 당해 부담도 많이 됐다. 3차전 1점 차 패배로 경기 전에는 다들 기가 많이 죽어 있었다"면서도 "코트에서는 기 죽을 것 없이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경기 중반에 10점 넘게 앞서다가 역전당했는데, 선수들이 잘 이겨냈다. 다시 뒤집고 승리를 지킨 만큼 5차전은 더 좋은 결과 낼 수 있게 잘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이정현은 경기 종료 3.6초 전 80-80으로 팽팽한 상황에서 작전 타임 후 상대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으로 자유투를 얻어내는 재치를 발휘했다. 손창환 소노 감독은 "마지막 작전은 이정현이 즉석에서 낸 아이디어였다. 나이트가 잡으면 이정현이 뒤로 들어가는 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면 시도하지 않았겠지만, 너무 타당해서 좀 더 보완해 그렇게 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정현은 "시간이 적어서 준비한 패턴이 많지 않았다. 간결한 패턴을 급조해서 감독님께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하자고 하셨다. 결과가 좋았고, 패턴대로 움직임이 나왔던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2021년 고양 오리온에서 데뷔한 이정현은 팀이 캐롯을 거쳐 소노로 바뀐 상황에서도 여전히 중심을 잡고 있다. 그는 "소노가 하위권부터 챔피언결정전에 올라오기까지 준비하면서 발전한 내용이 경기할수록 나온다. 4차전 승리로 '(노력한 게) 헛되지 않았구나' 싶다"며 "너무 힘들지만, 양 팀 다 체력은 바닥났다. 이제는 정신력 싸움"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무명' 손창환의 부드러운 리더십
코트 안에 이정현이 있다면, 팀 전체를 통솔하는 건 손창환 감독이다. 프로 통산 4시즌 동안 29경기 20득점에 그친 그는 현역 은퇴 후 홍보팀 직원, 전력분석원, 코치를 거쳐 지난해 처음 프로팀 지휘봉을 잡았다. '무명' 지도자를 향해 처음엔 의구심이 뒤따랐지만, 첫 시즌부터 하위권에 머무르던 팀을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으며 자격을 증명했다.
손창환 감독의 리더십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 4차전 막바지 이정현의 자유투 획득에서 나타나듯 선수단의 의견을 경청하며 팀을 통솔한다. 동시에 비디오 미팅을 통한 현미경 분석으로 상대 약점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이정현은 "감독님은 정규리그나 플레이오프나 늘 버스 타면서 비디오를 보신다. 선수들은 피곤한 상황에서도 쉬면서 감독님이 보는 비디오를 보게 된다. 그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감독님의 능력이 선수들과 조화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손창환 감독은 1차전 KCC의 대승을 지켜본 후 "능력치가 현저히 부족한 걸 느꼈다. 재능이라는 게 무섭다"고 한숨 쉬기도 했다. 그러나 4차전 직후에는 "노력과 열정이 재능을 이긴 날이라 표현하고 싶다"고 한줄평을 남기며 선수단을 고취했다.
소노는 남은 시리즈도 뒤가 없다는 생각으로 전력을 다할 계획이다. 손창환 감독은 "이제부터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계속 이렇게 진흙탕 싸움을 해야 한다. 1, 2차전에서는 가용 인원이나 팀의 에이스가 적어서 체력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 했는데, 3차전부터는 물러설 데가 없어졌다"며 "4차전에서 KCC의 (체력적인) 구멍이 보인 것 같다. 지더라도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강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정현은 "4차전 승리로 시리즈가 끝나지 않아 다행이다. 일단 목표는 다음 경기 승리다. 리버스 스윕보다는 눈앞에 있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며 "KCC는 6위로 올라왔지만, 6위 전력이 아니다. 선수들이 오늘 경기를 잊지 말고, 에너지와 집중력을 갖고 5차전도 다 같이 준비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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