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MIA 작가] 모 지역의 진로직업센터로부터 학생 대상으로 ‘작가 진로’에 관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약 2년 전에도 어느 복지관에서 비슷한 제안을 받은 적 있는데, 그때 나는 거절했다. 진로를 탐색하는 방법을 안내하기 위해서는 작가라는 ‘직업’ 혹은 정체성에 대해 최소한의 긍정적인 전망을 전제해야 할 텐데 내게 그런 전제를 세우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작가님을 추천해 드렸다.
이번에는 모종의 이유로 강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 ‘작가’와 ‘진로’라는 단어가 병렬적으로 붙을 수 있는 관계인지에 대한 의문부터 해소하고 싶었다. 그래서 강의안을 만들기 전에 ‘직업’의 정의를 인터넷에 검색했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왔다.
직업이란 생계유지, 자아실현, 사회 기여를 목적으로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일시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경제적 보상(수입)을 얻으며 지속성과 윤리성을 갖춘 활동이어야 합니다. - 커리어넷
읽으며 어떤 해방감이 느껴졌다. 내가 그저 냉소적일 뿐인지 스스로도 의심하던 차에 작가가 왜 직업이 될 수 없는지 뒷받침하는 근거가 더러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생계유지’와 ‘지속성’이라는 두 단어에서 나는 작가라는 정체성이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결함을 다시 확인했다.
먼저 ‘생계유지’의 측면을 보자. 직업이란 노동의 대가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창작의 세계에서 노동(쓰고 그리는 행위)과 보상(수익)은 좀처럼 정비례하지 않는다. 일정한 주기로 들어오는 월급 대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간헐적 보상에 기대어 사는 삶을 ‘직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속성’은 더 확실한 기준이다. 직업은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해야 한다. 하지만 작가의 생명력은 아무리 작가 자신이 근면 성실하더라도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정의를 기준 삼는다면 작가는 직업적 조건을 갖추는 데 실격인 셈이다. 경제적 보상이 담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창작을 수십 년간 이어가는 행위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고독한 수행에 가까울 것이라는 선언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마지막으로 ‘자아실현’이라니. 이것은 창작의 주요 동기인 동시에 딜레마다. 돈으로 치환되지 않는 자아실현은 취미에 불과할 뿐인데, 실상 작가들의 활동은 생계를 위한 노동에 가까울 정도로 육체와 정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갈시키는 강도의 노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강의를 준비하며 나는 끝내 작가를 직업이라 명명하는 데 실패했다. AI와 대화를 나누며 바늘구멍 같은 돌파구를 찾기는 했는데, 작가는 직업이라기보다 어떤 ‘상태’라고 소개하길 추천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게 아닐까? 작가를 단지 직업이라는 틀 안에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창작의 본질을 왜곡한다면 말이다. 작가는 대개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어서’ 작가로 살아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끊임없이 세상을 기록하고, 경제적 논리 바깥에서 자기만의 색과 밀도, 언어를 만들어가는 사람.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설명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