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박정현 기자 |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극장가에 오랜만의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국내 1위 멀티플렉스 기업인 CJ CGV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흥행작 등장에도 국내 극장 사업 부문은 적자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왕사남’ 효과 역시 2분기에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커 기업은 ‘군체’, ‘호프’ 등 다음 개봉 기대작의 흥행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8일 CJ CGV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5734억원, 영업이익 87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98억원 늘었고 영업이익도 55억원 개선됐다. ‘왕과 사는 남자’ 흥행 효과로 국내 사업 매출은 1754억원으로 36.7% 증가했지만 영업손실은 66억원으로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CJ CGV 관계자는 “CJ 4DPLEX와 CJ올리브네트웍스의 성장 및 사업 확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에 따른 국내 영화시장 회복에 힘입어 수익성 개선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 ‘왕사남’보다 효자는 해외 사업
실제 실적을 떠받친 건 국내 극장보다 해외 사업과 비극장 사업이었다. 베트남 법인은 118억원 영업이익으로 안정적인 흑자를 유지했고 튀르키예 법인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24년 인수한 인공지능(AI) 전환 기업 CJ올리브네트웍스도 영업이익 113억원을 기록하며 수익성 확대에 힘을 보탰다.
이에 CJ CGV는 최근 수년간 영화관 사업의 무게중심을 국내 상영 시장보다 해외와 체험형 콘텐츠로 옮겨가고 있다. SCREENX·4DX 같은 특별관 확대와 콘서트·스포츠·뮤지컬 실황 콘텐츠 상영 강화가 대표적이다. 자회사 CJ 4DPLEX는 글로벌 특별관 확대에 힘입어 1분기 매출 28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은 8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만 203개(직영 116개·위탁 87개) 지점을 운영 중인 CJ CGV는 흥행작이 나와도 재무 부담이 여전히 무겁다. 무인점포 확대를 통해 인건비 부담은 줄이고 있지만 임대료 부담은 여전하다. 극장 사업은 대규모 장치 산업인 데다 영화관 대부분이 복합쇼핑몰이나 대형 상업시설에 입점해 있어 고정비 비중이 높다.
작년 말 연결 기준 CJ CGV의 총차입금은 약 2조5012억원 수준이다.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자본 확충과 채무의 자본 전환 등을 통해 398% 수준으로 낮아졌으나 리스부채 영향으로 차입금 의존도는 64%를 기록하며 여전히 60%를 웃돌고 있다. 작년 연간 금융비용은 2953억원에 달했고 이 중 이자비용만 1970억원 수준이었다. 실적 개선에도 1131억원 규모 당기순손실이 이어지는 이유다.
▲ 썰렁한 홍대·연남 CGV…무인 운영, 빈 공간은 팝업스토어로
현장 분위기도 냉랭하다. 이날 기자가 찾은 홍대·연남 일대 CGV는 평일 낮 시간대 관객이 1~2명 수준에 그칠 정도로 한산했다. 일부 공간은 굿즈 팝업스토어와 체험형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무인 운영 시스템이 확대되면서 직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극장 산업의 딜레마는 뚜렷하다. 영화 흥행이 있어야 극장이 살아나지만 관객들은 이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 소비 패턴에 익숙해졌다. 비싼 영화 티켓 가격 역시 극장을 ‘큰맘 먹고 가는 공간’으로 바꿨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왕과 사는 남자’ 흥행만으로 산업 전반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CJ CGV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중박급 영화 부재와 개봉작 감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이유다.
여기에 아시아 사업 지주사 CGI홀딩스를 둘러싼 재무적 투자자(FI)들의 드래그얼롱 가능성까지 불거지면서 시장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CJ그룹이 장기적으로 영화관 사업 비중을 줄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다만 변수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 271억원을 활용한 영화 할인 정책을 다시 꺼내 들면서 단기 관객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AI 영화 등 새로운 콘텐츠 등장도 극장 시장의 실험 요소로 주목하고 있다. 실제 최근 CJ ENM은 제작비 약 5억원 규모의 60분짜리 AI 영화 ‘아파트’를 공개했다. 현재는 티빙에서 공개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향후 극장 개봉 가능성도 거론된다.
▲ 극장 산업, ‘상영’에서 ‘체험 플랫폼’으로
CJ CGV는 향후 사업 무게중심을 국내 상영 시장보다 해외와 콘텐츠 체험 사업에 두고 있다.
2분기 이후에는 해외 사업과 특별관 중심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자회사 CJ 4DPLEX는 ‘슈퍼 마리오 갤럭시’, ‘마이클’ 등 할리우드 콘텐츠 라인업 확대와 글로벌 특별관 인프라 확장을 통해 실적 개선을 노리고 있다.
국가별 전략도 뚜렷하다. 베트남에서는 콘텐츠 제작·투자·배급·광고 사업을 확대해 수익성을 높이고 인도네시아에서는 SCREENX PLF 등 기술 특별관과 독점 콘텐츠 확보에 집중할 계획이다. 중국은 여름 성수기 로컬 대작 개봉에 맞춰 시장 회복을 기대하고 있으며 튀르키예는 로컬 콘텐츠 투자와 고정비 효율화를 통해 수익성 개선 흐름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뷰티·팝업스토어·체험형 공간 사업 확대에도 눈을 돌렸다. 단순 영화 상영만으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극장을 ‘복합 체험 플랫폼’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정종민 대표는 “앞으로도 SCREENX와 4DX를 중심으로 한 차별화된 K-Theater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입지를 강화하고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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