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과 장기화된 고물가, 경기 침체로 확산된 사회적 불안이 새로운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업과 플랫폼이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내세운 상품과 콘텐츠를 앞세워 소비를 유도하는 이른바 '불안 마케팅'이 확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SNS에서는 키캡 키링과 말랑이, 워리스톤(Worry Stone), 불안 가방(Anxiety Bag) 등 불안 완화를 강조한 감성 아이템이 빠르게 유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소비자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 뒤 이를 다시 상품 구매로 연결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연예인들 역시 이러한 아이템을 활용해 불안을 해소하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관련 제품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SNS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불안 해소 아이템으로 꼽히는 '#키캡키링' 게시물은 5000개 이상, '#말랑이'는 8만6000개 이상 등록돼 있다.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워리스톤' 관련 게시물은 500여 개 수준이지만 누적 조회 수는 150만 회를 넘기며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일상에서 불안을 느끼는 청년층의 모습이 유행처럼 등장하고 있다. 쿠팡플레이 예능 SNL 코리아 시즌 8 속 코너 '스마일 클리닉'에서는 신입 사원 안주미가 상사에게 혼날 때마다 손에 들고 있던 키링을 반복적으로 두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불안하거나 긴장되는 상황에서 키링을 만지며 심리적 안정을 찾는 모습을 희화화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모양과 스타일로 꾸밀 수 있다는 점에서 길거리 소품샵이나 문구점 등에서는 키캡 키링을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워리스톤 역시 불안이나 걱정이 있을 때 엄지손가락으로 표면을 문지르며 심리적 안정을 찾는 힐링 아이템으로 알려져 있다. 매끄러운 돌 표면을 반복적으로 만지며 불안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해외를 중심으로 유행한 뒤 최근 국내 SNS에서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템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청년층의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기화된 취업난과 고물가, 경기 침체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작은 위안이나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SNS에서도 "작은 물건이라도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불안할 때 만지면 진정된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과 플랫폼이 이러한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내세운 상품을 소비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생 김찬미 씨(25·여)는 "키캡 키링이 요즘 유행이라고 하니 한 번 사보고 싶다"며 "불안을 해소해주는 아이템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하지만 이걸 계속 누르고 있는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잠깐 잊는건데 불안 해소 아이템이라 볼 수 있을지 모르겠고 오히려 그냥 재밌는 장난감, 손이 심심할 때 가지고 놀기 좋은 아이템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박형 씨(26·남) 역시 "키캡 키링이나 말랑이 같은 물건을 산다고 해서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박 씨는 "키링의 타격감이나 소리가 일시적으로 기분 전환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매일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불안이 없는 사람이냐는 의문도 든다"며 "결국 근본적인 해결이라기보다 잠시 주의를 돌리는 수준에 가까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불안을 해소해주는 아이템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해외에서는 'Anxiety Bag(불안 가방)'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불안 가방은 공황 발작이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한 물건들을 담아두는 작은 파우치를 뜻한다. 주로 신맛 사탕이나 껌, 휴대용 아로마 오일, 피젯 토이, 스트레스볼 등이 담기며 촉각과 후각, 미각 자극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얻는 방식이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 아마존에서도 '불안 가방(Anxiety Bag)' 관련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마존에서 'Anxiety Bag'을 검색하면 수백 개의 관련 제품이 검색되며 일부 상품은 수백 건이 넘는 후기와 함께 높은 만족도를 기록하고 있다. 단순한 파우치를 넘어 불안 완화 자체가 하나의 소비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SNS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관련 콘텐츠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유튜브에는 '왓츠 인 마이 엔자이어티 백(What's in my anxiety bag)' 콘텐츠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적게는 수만 회에서 많게는 1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해당 영상에서는 이용자들이 자신만의 불안 가방에 담긴 물건을 소개하며 불안할 때 실제로 도움을 받는 아이템들을 공유하고 있다.
미국 인플루언서 앙게 마리아노(Ange Mariano)는 지난 2월 자신의 불안 가방 속 물건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에는 알코올 스왑과 껌, 노트, 손 마사지기, 립밤, 평소 복용하는 약 등이 담겼다. 그는 불안을 느낄 때 직접 사용하거나 심리적 안정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물건들을 챙겨 다닌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유행이 일시적으로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불안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콘텐츠가 확산하게 되면 사회 전반에 불안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위로나 안정감 같은 감정 자체가 하나의 소비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며 "SNS에서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공감 콘텐츠처럼 소비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관련 상품에 대한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소비가 일시적인 심리 안정에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불안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키고 소비를 통해 해결하도록 만드는 방식은 사회 전반에 불안을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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