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잿빛 같은 현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았던 화가, 마리 로랑생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한국을 다시 찾아왔다.
20세기 프랑스 대표 여성 화가인 마리 로랑생을 조명하는 <마리 로랑생 회고전 : 무지개 위의 춤> 은 지난 4월 10일부터 오는 8월 23일까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번 전시는 2019년 폐관한 일본 나가노현의 ‘마리 로랑생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마리>
유화·드로잉·판화 등 약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지난 2017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 이후 약 9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주요 시기별 대표작을 폭넓게 아우르며 마리 로랑생의 초기작부터 말년작까지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다.
마리 로랑생(1883~1956)은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 아방가르드 중심에서 활동한 대표 여성 화가다.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이 활동했던 몽마르트르 ‘세탁선(Bateau-Lavoir)’ 공동체에서 함께하며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예쁜 색감’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다. 한 여성 예술가가 시대의 한계를 딛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마리 로랑생은 사생아로 태어나 사회적 편견 속에서 성장했으며 젊은 시절에는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여겼고 그 우울과 불안을 자화상에 담아냈다.
이후 ‘세탁선’에서 만난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사랑과 이별,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인 남편과 함께 떠난 스페인 망명 그리고 이혼과 전쟁의 상흔은 그의 삶에 깊은 고립과 상실을 남겼다. 그러나 로랑생은 이러한 굴곡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를 작품 안으로 끌어안으며 부드럽고 몽환적인 색채의 세계로 나아갔다.
이러한 삶의 굴곡은 로랑생만의 감성과 미학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연분홍과 회색, 옅은 푸른빛으로 대표되는 그의 색채는 부드럽지만 그 이면에는 시대의 편견과 전쟁, 상실을 지나온 한 예술가의 감정이 짙게 배어 있다. 로랑생은 자신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섬세한 인물과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녹여내며 독자적인 회화 언어로 발전시켰다.
전시는 로랑생의 예술 세계를 시대별 흐름에 따라 총 4부로 구성했다. ‘세탁선의 여인’, ‘잊혀진 여인’, ‘무지개 위의 춤’, ‘장미와 여인’ 등으로 이어지는 섹션은 그의 초기 작품부터 말년의 대표작까지 아우르며 한 예술가의 감정과 삶의 궤적을 따라가게 한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뿐 아니라 무대·의상 디자인과 삽화 작업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던 로랑생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달과 6펜스』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이 소유했던 대표작 <키스> (1927)를 포함해 <무희들> (1932), <푸른 옷을 입은 수잔 모로> (1940), <세 명의 젊은 여인들> (1953)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그중 말년작인 <세 명의 젊은 여인들> 은 약 10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으로 로랑생 예술 세계의 정수를 담아낸 마스터피스로 평가받는다. 세> 세> 푸른> 무희들> 키스>
로랑생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색채다. 그는 당시 여성 화가들이 잘 사용하지 않았던 핑크색과 회색, 파스텔톤을 적극 활용하며 자신만의 미감을 구축했다. 특히 당시에는 핑크색이 남성성을 상징하던 시대라는 점에서 여성 인물을 핑크빛으로 표현한 것은 파격적인 시도로 평가됐다.
전시를 둘러보다 보면 작품에서 여성과 소녀, 사슴과 말 같은 동물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생명과 존재에 대한 애정을 담은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섬세한 감정 표현은 로랑생이 ‘형태의 혁명’을 이끈 큐비즘과 달리 독특한 화풍으로 감정과 정서의 영역을 확장한 화가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 <마리 로랑생 회고전> 은 사생아, 전쟁, 망명, 이별과 고독 등 잿빛으로 시작된 삶이었지만 예술을 통해 핑크빛으로 마무리된 여성 예술가 마리 로랑생의 인생 전반을 따라간다. 화려한 성공보다 고난과 상처를 통과하며 자신만의 색채와 미학을 구축하고 삶을 예술로 승화한 마리 로랑생의 이야기가 더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리>
이번 전시는 연분홍과 회색, 옅은 푸른빛으로 기억되는 로랑생의 작품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부드러운 화면 너머에 남겨진 삶의 상처와 흔들림 그리고 끝내 자신만의 빛을 잃지 않았던 한 예술가의 여정을 마주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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