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 멈춘 사람에게 다산이 건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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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피아] 멈춘 사람에게 다산이 건네는 말

뉴스컬처 2026-05-11 10:19: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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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사진=모티브
책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사진=모티브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마흔의 나이에 찾아온 유배는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흔들 수 있는 사건이었다. 벼슬길에 올랐던 다산 정약용은 종교 문제와 정치적 이유에 휘말려 전남 강진으로 향했다. 억울함을 삼켜야 했다. 세상과 멀어진 자리에서 18년을 견뎌야 했다. 57세가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은 한탄만으로 채우기엔 너무 길었다.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는 다산의 생애와 문장을 지금의 고민 옆에 놓는 책이다. 유배라는 불운을 삶의 정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한 인물의 태도에서 출발한다. 정약용은 강진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을 남겼다. 정치·경제·행정·법률을 아우른 저술은 좌절의 시간이 사유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이 붙잡는 다산은 위인전 속 먼 인물로만 머물지 않는다. 큰 업적을 남긴 학자이기 전에, 막힌 길 앞에서 스스로를 다시 세운 사람이다. “백성을 하늘처럼 여겨라”는 말에는 권력의 자리가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기준이 담긴다. “학문은 실용에 쓰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문장은 지식이 생활과 사회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태도를 드러낸다. “모든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 옳고, 남에게 기대면 일이 흐트러진다”는 조언은 책임을 미루지 않는 삶의 자세로 읽힌다.

다산의 말은 때때로 엄한 훈계처럼 다가온다. 다만 오래된 충고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을 앞에 두는 마음, 말 대신 행동을 중시하는 태도, 뜻을 세운 뒤 끝까지 밀고 가는 끈기가 문장마다 흐른다. 그래서 책은 과거 인물의 발자취를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의 독자에게 묻는다. 마음속에 품은 뜻을 왜 아직 같은 자리에 세워 두었는가.

흥미로운 점은 책의 시선이 성공담의 광채가 아닌 버티는 시간의 밀도에 닿아 있다는 점이다. 정약용은 조건 덕에 글을 남긴 인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활동 무대는 좁아졌고, 정치적 기회는 멀어졌다. 그래서 붓과 먹, 한지를 붙잡았다. 2,400여 권 분량에 달하는 기록은 재능의 산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 자기 역할을 다시 찾으려는 의지가 만든 흔적에 가깝다.

삶이 막히는 순간마다 사람은 쉽게 이유를 찾는다. 환경이 좋지 않아서, 운이 따르지 않아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서 멈췄다고 말한다. 책은 익숙한 변명 앞에 다산의 시간을 세운다. 유배지는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진 공간이었지만, 정약용에게는 사유를 단련하는 공간이 됐다. 억울한 시간을 헛되게 흘려보내지 않는 태도가 결국 한 인간의 깊이를 만들었다.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는 다산의 문장을 빌려 자기 삶의 방향을 점검하게 하는 책이다. 거창한 자기계발 구호와 다른 힘은 한 인물의 실제 시간이 주는 설득력에서 나온다. 뜻을 세웠지만 자주 미루는 사람, 시작은 했지만 쉽게 흔들리는 사람, 성실하게 살았는데도 삶이 막힌 듯한 사람에게 다산의 유배 18년은 조용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책장을 덮고 나면 남는 질문은 제목과 같다. 큰 뜻을 품었다면 왜 아직 같은 자리에 머무는가. 다산은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지 않았다. 주어진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았고, 막힌 시간 속에서도 쓸 수 있는 문장을 남겼다. 오래된 실학자의 목소리가 낡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뜻은 말로 커지지 않는다. 매일의 행동 속에서 겨우 자란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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