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창수 기자 | 미국-이란 전쟁이 두 달 넘게 이어지며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 손익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국제유가 급등이 두드러지지만 더 큰 변수는 원유와 나프타 조달 차질, 해상 운송비 상승, 제품별 공급 불균형 등이다. 유가 상승과 아울러 공급망이 막히며 가격 체계가 흔들리고 이 과정에서 정유와 석유화학 실적 향방도 엇갈리는 모습을 보여 주목된다.
▲ 100달러 선으로 훌쩍 뛴 국제유가…국내 정유-석화업계, 셈법 ‘복잡’
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전쟁 발발 직후 급등한 뒤 협상 기대감에 일부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5월 1일 기준 WTI는 배럴당 101.94달러, 브렌트유는 108.98달러로 전쟁 직전인 2월 27일 대비 각각 52.1%, 50.4% 상승했다. 두바이유도 3월 중순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선 뒤 4월 들어 100달러 안팎에서 등락을 반복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걸프 지역 생산·정제시설 훼손, 운항 보험료 상승 등이 겹친 결과다. 해외 투자은행들이 브렌트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정유업계의 경우 일단 단기 호재가 작용하고 있다. 정유 4사(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는 원유 가격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 석유제품 가격 상승, 정제마진 개선 효과 등을 동시에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쟁 이전 확보한 원유가 고가 제품으로 판매되는 래깅 효과도 1분기와 2분기 초반 실적 방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 석유제품 수급이 빠듯해지며 정제마진이 유지될 경우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정유사로서는 긍정적이다.
다만 이를 지속적 반등세로 보기는 어렵다. 정유사들은 4월 들어 가동률을 70% 안팎으로 낮추고 정기보수를 병행하며 원유 수급 불안을 관리하고 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북미, 중남미, 동남아 등으로 조달선을 넓히고 있지만 대체 원유 국내 도착까지는 40~50일가량이 걸린다. 정부가 비축유 스와프와 비축유 방출로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공급망 정상화 전까지는 가동률과 마진 모두 불확실성이 크다.
또한 유가가 하락 국면으로 돌아서면 현재 재고이익은 곧바로 손실로 바뀔 수 있다. 정유업계 입장에선 상반기 실적 개선이 하반기까지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석유화학업계 사정은 더 복잡하다. 전쟁 초기에는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며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여천NCC, 한화솔루션 등 NCC 업체들의 원가 부담이 커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프타 조달 차질과 제품 공급 축소 우려가 커졌고 에틸렌·프로필렌·벤젠·PX 등 주요 제품 가격이 빠르게 오르며 스프레드가 개선됐다. 한국기업평가는 1~2월 150달러 미만까지 떨어졌던 에틸렌 스팟 스프레드가 3월 셋째 주 이후 200달러대로 올라섰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회복이 정상적 수요 개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NCC 업체들은 나프타 재고를 아끼기 위해 가동률을 낮췄고 일부 업체는 정기보수를 앞당기거나 불가항력 선언까지 검토했다. 올해 3월 현재 70~80% 수준이던 주요 NCC 가동률은 4월 60~70% 수준까지 내려간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업황은 가격은 오르지만 물량은 줄고 스프레드는 개선되면서도 생산 기반은 위축되는 비정상적 회복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발 공급 과잉, 범용 제품 경쟁 심화, 높은 차입 부담 등 기존 문제점도 그대로 떠안고 있다.
▲ 정부 지원책에도 중·장기 전망 불확실…“체질 개선 압박 더 커질 듯”
정부가 나프타 수입 비용 지원에 나선 것도 업황 개선보다 공급망 방어 성격이 강하다. 정부 안은 4~6월 나프타와 LPG, 콘덴세이트, 기초유분 등 대체 원료 도입계약 물량에 대해 전쟁 이전 가격과 실제 수입가격 차액의 절반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기 원가 부담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나 석유화학산업 근본 문제인 과잉설비와 낮은 수익성을 해결하는 수단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 대응에 경영 자원이 투입되며 여수·대산·울산 등 산단 단위 구조개편 일정이 늦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업별로는 정유와 석화 간 온도 차가 뚜렷하다. 에쓰오일은 아람코 기반 원유 조달 경쟁력과 샤힌 프로젝트를 앞세워 중장긴 체질 전환을 노리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중동 리스크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는 정제마진 개선과 수출 물량을 통해 실적 방어가 가능하지만 유가 하락 반전 시 재고손실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경우 스프레드 개선 효과를 일부 누리더라도 석화 부문 구조조정과 고부가 제품 전환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한화솔루션 역시 태양광 부진과 재무 부담 속에서 석화·소재 부문 수익성 방어가 중요해졌다.
이번 전쟁이 촉발한 공급망 충격 여파에 정유업계는 단기적으로 웃을 수 있지만 유가 하락과 재고손실이라는 위험을 떠안았다. 석유화학업계는 스프레드 반등으로 한숨을 돌렸으나 이는 수요 회복이 아닌 공급 차질이 만든 일시적 가격 효과에 가깝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더라도 에너지 시설 복구와 해상 보험료 정상화에는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커 업계 체질 개선 압박은 더 거세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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