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행동주의의 변신은 무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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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행동주의의 변신은 무죄인가

한국금융신문 2026-05-11 00: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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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김희일 기자] 한때 행동주의 펀드는 자본시장의 ‘불편한 손님’이었다. 저평가 기업의 지분을 확보한 뒤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전형적 투자자였다. 논리는 단순했다. 싸게 사서 바꾸고 비싸게 판다. 경영진과 충돌하더라도 본질은 ‘자본을 건 투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행동주의는 이 범주를 벗어나고 있다. 더 이상 주식을 사서 기다리지 않는다.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직접 겨냥하고 개입을 통해 결과를 만든다. 무게 중심은 ‘투자’에서 ‘개입’으로 이동했다. 지분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자본을 많이 투입하지 않아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행동주의는 사실상 시장의 새로운 권력으로 변모하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방식의 전환이다. 과거 행동주의가 ‘지분 확보→주총→표 대결’이라는 구조에 의존했다면 지금은 ‘정보→법리→여론→기관 압박’이라는 다층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내부 제보와 공개 자료를 통해 정보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법적 쟁점을 만들며, 여론을 형성해 기관투자가를 움직인다. 이 과정은 더 빠르고 공격적이며 무엇보다 자본 규모에 덜 의존한다. 지분이 부족해도 기업을 흔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제도 변화 역시 이런 흐름에 힘을 싣고 있다. 상법 개정 논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3% 룰을 활용한 감사위원 선임 시도 등은 행동주의의 개입 여지를 넓히고 있다. 법은 더 이상 기업을 보호하는 울타리만이 아니라 행동주의가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사법부도 주주제안 범위를 넓게 인정하는 흐름을 보이며 이사회 권한의 경계를 흔들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변화도 중요하다.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압박이 커지면서 과거 ‘거수기’로 불리던 기관들은 이제 행동주의 확산의 통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침묵하던 자본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향력 확대와 산업 성장 사이의 괴리다. 행동주의는 기업과 시장을 움직이지만 그 성과가 곧바로 운용자산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행동주의는 수익을 만들지만 동시에 갈등도 만든다. 연기금과 보험사 같은 기관은 수익률뿐 아니라 변동성, 지속 가능성, 평판 리스크를 함께 고려한다. 행동주의는 이 요소들과 구조적으로 충돌한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다. 싸워서 이길수록 수익은 커질 수 있지만 ‘적대적 투자자’라는 낙인도 강해진다. 이는 자금 유입 제약으로 이어진다.

반면 일부 고액자산가들은 기업을 바꾸는 투자라는 서사를 높게 평가한다. 같은 전략이 투자자군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이다.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 역시 이런 양면성을 증폭시킨다. 대주주 중심 지배구조와 우호 지분 관행, 느린 가격 반영 체계는 행동주의에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행동주의는 본질적으로 장기전을 요구하지만 시장은 결과보다 ‘해석’을 먼저 반영한다. 기대와 현실 사이 시간차, 즉 ‘해석의 속도’와 ‘변화의 속도’ 간 괴리가 수익의 원천이자 리스크의 근원이 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행동주의는 점점 ‘자본의 기술’보다 ‘영향력의 기술’에 가까워지고 있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지분율보다 여론 형성 능력, 법률 대응력, 기관투자가 설득력이 더 큰 변수로 작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행동주의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시장 전체를 상시 압박 구조로 바꿔놓는다. 과거에는 대규모 자본이 있어야 가능했던 경영 개입이 이제는 정보와 네트워크만으로도 가능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보 기반 행동주의가 낳는 부작용이다. 감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책임 없는 개입이 문제다. 검증되지 않은 의혹이 먼저 확산되고 여론이 사실보다 앞서면 기업은 장기 전략보다 단기 방어에 몰린다.

행동주의가 감시자를 넘어 압박자로 기능하는 순간 시장은 효율보다 소음에 반응하게 된다. 정보가 무기가 되는 순간 정확성보다 파급력이 우선되는 왜곡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개입의 확장은 투자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일부 대기업 노조 역시 임금과 복지를 넘어 지배구조와 경영 의사결정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행동주의적 방식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확산되는 셈이다.

결국 행동주의의 미래를 가르는 핵심은 ‘정당성’이다. 얼마나 강하게 개입하느냐보다 그 개입이 기업의 장기 가치와 얼마나 정합적인지가 중요하다. 행동주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지배구조 개선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비효율적 자본 배분을 바로잡고 견제받지 않던 이사회를 흔드는 기능은 분명 시장에 필요하다. 실제 일부 행동주의는 단기 차익보다 지배구조 개선 자체를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경계선도 분명하다. 장기 가치보다 단기 수익에 집중하는 순간 행동주의는 그린메일과 같은 왜곡된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제도와 법을 활용하는 능력이 ‘이벤트를 만드는 능력’으로 변하는 순간 피해는 일반 주주와 시장 전체로 돌아간다.

행동주의는 이미 단순한 투자자의 자리를 넘어섰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그 힘은 과연 ‘가치’를 향하는가, 아니면 ‘이벤트’를 향하는가.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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