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물류 산업이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2026년 현재 국내 일부 고속도로에서는 자율주행 트럭이 화물을 싣고 달리는 ‘유상 운송’ 서비스가 본격화됐다. 기술 진보가 가져올 효율성에 대한 기대는 높지만 이면에는 수십년간 도로 위를 지켜온 약 400만대 화물차 운송 종사자의 깊은 불안이 깔려 있다. 인공지능(AI)과 무인 기술이 약속하는 장밋빛 전망 뒤에 가려진 노동의 현실과 구조적 과제를 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현재 화물차 운전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생존’ 그 자체다. 지난 정부에서 안전운임제 일몰 이후 복잡한 지입제와 다단계 운송 구조 속에서 실질 운임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최근 3년간 운임이 20~30% 하락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여기에 고유가, 부품비 및 수리비 상승은 차주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른다.
특히 대형 화물차주의 상황은 더욱 엄혹하다. 2억~3억원을 호가하는 차량 가격은 차주를 장기 할부의 늪에 빠뜨린다. 수년간 매달 수백만원의 할부금을 갚고 나면 남는 것은 낡은 차량과 다시 시작되는 막대한 유지비뿐이다.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겠다던 플랫폼 앱 역시 15~20%에 달하는 높은 수수료를 징수하며 영세 차주의 실질 소득을 갉아먹는 구조적 모순을 낳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무인 자율주행 화물차는 물류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2027년 완전 무인화를 목표로 실증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고령화된 화물업계의 인력난을 해소할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기술 중심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작 대체될 ‘사람’에 대한 논의는 소외돼 있다.
자율주행은 주로 물류센터 간 간선 운송인 ‘미들마일’ 구간부터 도입될 예정이다. 이는 해당 노선을 주력으로 삼던 대형 트럭 운전자들의 직접적인 일자리 위협으로 이어진다. 기술이 노동 강도를 낮출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운전자가 단순 보조 인력으로 전락하며 임금 하락 압박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술의 혜택이 물류 기업과 제조사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분배의 지혜가 절실하다.
무인 화물차가 도로를 안전하게 주행하기 위해서는 법적·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가리는 기준이 대표적이다. 현재의 법체계는 여전히 차량 결함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게 지우는 경향이 강하다. 악천후나 비정형 장애물에 대한 인공지능(AI)의 판단 능력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사회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
자율주행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나 혁신은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포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정부는 무인 화물차 도입 속도를 조절하는 ‘연착륙’ 전략과 함께 기존 화물차주들이 자율주행 관제사나 정비 전문가로 전환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또 고용보험 강화와 운임 하락 방지책 등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만능주의에 매몰된 일방적 추진이 아닌 정부와 업계, 노동계가 머리를 맞대고 만드는 ‘공존의 생태계’다.
도로 위의 노동자가 로봇에게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도움을 받아 더 안전하고 품격 있게 일할 수 있는 미래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국가와 우리 사회가 져야 할 마땅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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