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붉은광장에 북한 군인들의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1주년을 기념하는 9일 열병식에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리니치 표준시 오전 7시를 약간 넘긴 시각, 러시아 국기를 앞세운 군인들이 광장에 들어서며 행사의 막이 올랐다.
올해 퍼레이드는 2007년 이래 가장 간소한 규모로 진행됐다. 탱크와 미사일 같은 중화기가 자취를 감췄고, 군사학교 생도나 장비 부대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대 규모였던 작년 행사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발 테러 위협을 차단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북한군의 등장이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과 교전한 병력이다. 2024년 8월 우크라이나에 일부 점령당한 이 국경 지역을 러시아가 되찾는 과정에서 북한 파병 부대가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레오니트 슬루츠키 러시아 하원 국제문제위원장은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행진이 갖는 의미를 부각했다.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이자 동맹으로서의 관계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군인들이 쿠르스크 해방 작전에서 러시아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용맹하게 싸웠다고 치켜세우며 "진정한 전우애의 표본"이라고 평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방국 귀빈들과 함께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 공습이 빈번해지면서 공개 석상 출연을 자제해온 그였다. 푸틴 대통령은 나토의 지원을 받는 적대 세력에 맞서고 있다고 주장하며 전선과 후방 모두에서 러시아의 영웅들이 승리를 향해 전진 중이라고 역설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도 거듭 피력했다.
이어진 리셉션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다극 체제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유엔 헌장을 근간으로 삼아야 하며, 평등하고 분리할 수 없는 안보 원칙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각 민족이 지닌 문화적·문명적 다양성과 자결권 존중도 강조했다.
이번 행사에는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말레이시아, 라오스 등 우방국 정상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반면 작년 참석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U 회원국인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토 피초 총리는 열병식에는 불참했으나 무명용사 묘소에 헌화한 뒤 푸틴 대통령과 별도 회담을 진행했다. 이 방문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등 EU 지도자들로부터 날선 비판을 받았다.
보안 강화 조치로 현장 통신 서비스가 차단됐고, 취재 허가는 크렘린궁 출입기자단 등 제한된 언론에만 부여됐다.
이번 퍼레이드는 미국의 중재로 성사된 9일부터 11일까지의 휴전 기간과 맞물려 치러졌다. 앞서 러시아는 4일에 8~9일 이틀간 휴전을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우크라이나와 사전 협의 없이 발표한 탓에 전승절 안전 확보를 위한 술수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6일 0시부로 단독 휴전에 돌입했으나, 양측은 상대의 휴전을 인정하지 않으며 공방을 이어갔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보좌관은 휴전이 3일에 한정되며 연장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도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의 복잡성을 언급하며 평화 합의까지는 수많은 난제가 산적해 있고 갈 길이 요원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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