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남은 음식이라는 게 사실 딱 봤을 때 먹음직스럽거나 아름답게 느껴지진 않잖아요. 그런데 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랑은 수많은 작가와 연구자들이 오래도록 정의하고자 한 감정이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의 말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여러 상태의 조합이라는 말처럼,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이름 붙일 수 있는 마음이 되기도 한다.
이상은 작가 역시 ‘사랑’을 오랫동안 들여다봐 왔다. 그의 작업을 관통해 온 사랑은 낭만이나 설렘보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 마음에 가깝다. 상처와 연민이 뒤섞인 관계,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잔여가 그의 문장 안에서 다시 모습을 얻는다.
최근 이상은 작가는 소설 『남은 음식』을 통해 그가 탐구해온 사랑과 관계의 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며 꾸준히 글을 써온 그는 독립출판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해 전시와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감정과 연결되기 위해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사랑에 대한 고찰을 글 너머의 감각과 경험으로 확장해가고 있는 이 작가를 만나 글쓰기의 시작과 소설 『남은 음식』, 그리고 사랑을 둘러싼 여러 감정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아래는 이 작가와의 일문일답.
Q. 독립출판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점이 인상적이다. 원래부터 작가를 꿈꿨는지, 흔히 말하는 ‘등단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꿨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편에 가까웠다. 그래서 대학은 사진 전공으로 들어갔고 이후 현대예술 이론과 실기 쪽에 더 끌려 전공을 바꾸게 됐다. 당시에는 전시 기획이나 예술 관련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다 마음속에 쌓이는 감정을 당장 털어놓고 싶고 연결되고 싶다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글을 쓰게 됐다. 글을 읽은 주변 사람들이 책을 내보라고 계속 권했고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독립출판이라는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출간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그렇게 첫 책을 만들게 됐고 예상보다 많은 분이 읽어주면서 자연스럽게 작가 활동으로 이어졌다.
작가 활동을 하다 보니 등단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독립출판을 거쳐 기성 출판까지 오게 된 경우이다 보니 스스로도 ‘등단 과정을 거쳐야 하나’ 갈등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독립출판으로 시작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것도 하나의 작가상일 수 있겠다고 느꼈다.
Q. 첫 번째 소설 『반복의 존재』 이후 『남은 음식』으로 벌써 두 번째 소설을 출간했다.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 사이에서 작가로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이라고 느끼나.
『반복의 존재』 출간 이후 『남은 음식』을 준비할 때에는 소설의 완성도를 훨씬 더 많이 고민하게 됐다. 작업을 이어가면서 특히 인물과 사건의 중요성을 많이 깨달았던 것 같다. 『반복의 존재』를 쓴 이후 다른 작가들의 소설을 공부하듯 읽으면서 인물의 특징, 캐릭터 설정, 이야기의 구조 같은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그래서 『남은 음식』에서는 인물의 결이나 사건의 흐름을 훨씬 더 치밀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전 작품을 읽어주셨던 독자분들이라면 아마 이상은 작가가 조금 더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Q. 그렇다면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글쓰기 루틴도 궁금하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인물의 감정과 태도가 충분히 살아 있어야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물의 성격이나 관계, 사건이 흘러가는 방식을 더 오래 고민하게 됐다. 동시에 ‘질문’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뿐만 아니라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독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소설 속 인물의 사랑이었는지, 연민이었는지 혹은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었는지 등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을 쓰고 싶다.
글쓰기 루틴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 출근 전 40~50분 정도 잠깐 글을 쓰거나 이동 중, 약속 전에 카페에서 짧게 쓰기도 한다. 아주 긴 시간을 확보해서 쓰기보다 틈이 날 때마다 계속 붙잡고 있는 방식에 가깝다. 매일 조금이라도 계속 쓰는 일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본다.
Q. ‘삶을 파헤치고 사랑을 발견하는 작가’라고 불리는데. 이러한 소개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 듣고 싶다.
늘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많은 작가들이 사랑에 대해 다루지만 그 사랑을 발견하고 풀어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어떤 순간을 지나고 있을 때 “이건 사랑이다”라고 바로 알아차리기보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들여다보면서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소설 『남은 음식』도 그런 감정에서 출발한 작품이었다. 남은 음식은 처음 봤을 때 아름답거나 먹음직스럽게 느껴지기보다 초라하고 구질구질해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안에 엄마의 마음, 그러니까 사랑이 담겨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걸 깨닫고 난 이후 ‘삶을 파헤치고 사랑을 발견하는 작가’라는 소개가 만들어진 것 같다. 사랑이 꼭 아름답고 선명한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때로는 남은 음식처럼, 연민처럼, 지나고 나서야 이해되는 마음의 형태로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소개를 떠올렸다.
Q. 소설 『남은 음식』을 처음 집필할 때의 생각과 감정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려줄 수 있나.
작품은 제목 그대로 냉장고 안에 늘 남아 있던 음식들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였다. 냉장고에는 늘 먹어야 하는 음식들이 있었고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는 게 아니라 상하기 전에 먹어 치워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거운 음식을 들고도 오히려 웃는 얼굴로 “먹을 거 가져왔다”고 말하던 엄마의 표정이 가슴에 오래 남았다.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남은 음식이 단순히 처리해야 할 음식이 아니라 엄마가 건네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은 음식을 묵묵히 먹는 가족의 장면이 머릿속에 자연히 그려졌다. 이때 언젠가 음식과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이것이 『남은 음식』의 출발점이 됐다.
Q. 소설 속 문장 ‘진짜 사랑 같았거든’이 티셔츠나 각종 굿즈에 사용되며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외에도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남은 음식』 속 문장이 있다면.
이 문장은 굿즈 작업을 위해 직접 고른 문장이다. ‘진짜 사랑 같았거든’은 소설 속 맥락에서 사랑인지 몰랐던 감정을 뒤늦게 깨닫는 장면이다. 그런데 티셔츠로 문장을 먼저 접한 분들은 다르게 해석하시는 것이 흥미로웠다. ‘진짜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라던가 반대로 ‘사랑이 아닌 줄 알았는데 진짜 사랑이었다’고 읽는 분도 있었다. 이 문장이 가진 모호함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 작가로서도 기뻤다.
이외에도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에 나오는 자매 대화를 좋아한다. 한 사람이 ‘너 아무나 사랑하잖아’라고 말하면 다른 한 사람이 ‘너는 아무도 사랑 못 하잖아’라고 받아치는 장면이다. 이 문장은 사랑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사랑을 원하지만, 한쪽은 쉽게 마음을 주는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쉽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문장은 주변의 연애 상담을 들으며 ‘왜 저렇게 아무나 사랑할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동시에 ‘그렇다면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는 쪽은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타인을 향한 말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말이었던 것 같다. 한 번쯤은 이 간극을 ‘자매’라는 관계를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내 보고 싶었는데 잘 표현된 것 같아 마음에 든다.
Q. 소설 『남은 음식』에는 「여름의 명암」의 상원, 「남은 음식」의 선, 「장미 빌라」의 수인,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의 수현 등 20~30대의 여러 주인공이 등장한다. 작품 속 인물을 만들 때 실제 경험이나 주변 사람들을 참고하나.
인물들 대부분은 실제 경험에서 출발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스스로 느꼈던 감정이나 지나온 시간에서 인물의 골격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친구들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 주변에서 본 태도나 표정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덧붙게 됐다. 처음 설정한 인물의 골격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의 연애 방식, 사랑을 대하는 태도, 돈이나 관계를 바라보는 감각 같은 것들이 조금씩 섞였다. 그래서 작품 속 인물들은 한 사람이라기보다 여러 감정과 경험이 겹쳐 만들어진 인물에 가깝다. 실제 삶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바탕으로 하지만 소설 안에서 조금씩 다듬고 확장하면서 새로운 인물로 완성해 나가는 편인 것 같다.
Q. 그렇다면 이 중 작가 개인이 가장 공감하거나 연민을 느끼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
가장 공감이 갔던 인물은 「남은 음식」의 ‘선’이다. 선이 느끼는 감정이나 상황에는 비교적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 가장 연민이 갔던 인물은 엄마였다. 『남은 음식』은 실제 엄마에 대한 기억과 감정에서 출발한 작품이라 쓰는 동안 엄마라는 인물을 오래 들여다봤다. 이 과정이 마치 오래된 숙제를 끝내는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에 대해 품고 있던 여러 감정이 「남은 음식」 안에 많이 담겼기 때문에 소설 속 인물들 가운데서는 아무래도 엄마에게 가장 마음이 간다.
Q. 집필 외에도 지난해
원래도 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현대예술을 전공했기에 언젠가는 전시처럼 물성을 가진 형태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작은 규모로 단순히 책을 놓고 보여주는 정도의 전시를 구상했다. 그런데 막상 준비를 시작하니 단순히 책을 전시하고 끝나는 게 아닌 관람객이 질문을 마주하며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수 있는 형태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또 한편으로는 ‘작가’라는 역할을 조금 더 확장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꼭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전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 같다. 그래서
Q. 이렇게 글이 아닌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소설을 확장하면서 새롭게 느낀 점이 있다면.
전시는 글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사람과 연결되는 작업이라는 걸 많이 느꼈다. 소설은 독자가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서 혼자 읽는 매체라면 전시는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감정을 동시에 경험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됐다. 글은 문장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면 전시는 공간이나 사물, 사람들의 동선 같은 것들로 감정을 만들 수 있기에 어떤 장면이나 감정을 꼭 언어로만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될 수 있다는 걸 새롭게 느꼈다.
또 관객들을 만나면서 작품이 더 이상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실감했다. 각자의 사랑이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남겨주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질문이 사람마다 전혀 다른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Q. 작품 전반에서 여러 형태의 ‘사랑’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작가에게 사랑은 어떤 감정 혹은 개념에 가까운가.
사랑은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에 가까운 것 같다. 흔히 사랑이라고 하면 아름답고 선명한 감정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연민이나 결핍, 죄책감, 미안함 같은 감정들과 가까이 붙어 있다고 느낀다. 특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많은 것 같다. 그 순간에는 답답하고 불편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면 그 안에 누군가의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다.
그래서 사랑은 하나의 정답이라기보다 계속 흔들리고 질문하게 만드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게 사실은 아니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사실 가장 사랑에 가까웠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Q. 앞으로 어떤 사랑을 발견하고 싶나. 집필 계획도 듣고 싶다.
앞으로는 조금 더 ‘주는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받지 않아도 줄 수 있는 마음 혹은 조건 없이 계속 남아 있는 마음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다음 작품 역시 소설집 형태가 될 것 같다. 단편들이 중심이 될 예정인데 이전 작품들과 연결되는 결은 남아 있으면서도 조금 더 희망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많아질 것 같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잘 살아내고 싶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를 현재 쓰고 있다. 다음 작품에서는 지금과는 또 다른 방향의 감정들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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