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국내 보험사들이 ‘기회의 땅’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린 지 20여년이 지났다. 그사이 해외점포와 자산 규모는 늘며 외형상 글로벌 사업 기반을 넓혔다. 그러나 실제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현지 규제와 판매채널, 자연재해 등 이른바 ‘로컬 리스크’에 따라 수익성이 흔들리는 구조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의 해외진출은 2000년대 초부터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거론돼 왔다. 당시 중국·인도·베트남 등은 낮은 보험 보급률과 성장성을 앞세운 유망 시장으로 주목받았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해외 거점은 주재사무소 중심에서 실제 영업점포로 확장됐지만, 시장 확대가 곧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실제 금융감독원의 ‘2025년 보험회사 해외점포 영업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보험사 해외점포 당기순이익은 1억9700만달러로 전년보다 3790만달러 증가했다. 증가율은 23.8%다. 같은 기간 해외점포 총자산은 162억4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89억달러 늘었다. 증가율은 121.2%다.
외형상 해외사업은 성장세를 보였지만, 세부 실적에서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흐름이 엇갈렸다. 생명보험사 해외점포 순이익은 1억930만달러로 전년보다 70.8% 증가했다. 한화생명의 인도네시아 노부은행과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클리어링 인수에 따른 신규 점포 편입 효과가 반영된 영향이다. 다만 신규 편입 2곳과 매각 1곳을 제외한 기존 해외점포 기준으로는 순이익이 전년보다 1350만달러 감소했다.
손해보험사 해외점포 순이익은 8770만달러로 전년보다 7.8% 줄었다. 지난해 미얀마 지진과 태국 홍수 등 동남아 지역 자연재해가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해외진출이 지점 개설이나 현지 법인 설립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현지 금융사 인수나 지분투자 등으로 사업 기반을 넓히는 방식도 병행되고 있다”며 “다만 인수·편입 효과가 기존 보험영업의 안정적인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는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회의 땅, 현지화 벽은 높았다
2000년대 초 중국과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신흥 보험시장은 국내 보험사들에게 매력적인 공략지였다. 낮은 보험 보급률과 빠른 경제성장률, 커지는 내수시장은 새로운 성장 가능성으로 읽혔다. 실제로 이들 시장은 이후 규모를 키웠고, 국내 보험사들의 해외 진출도 확대됐다.
문제는 시장 성장과 수익화의 속도가 달랐다는 점이다. 보험은 단순히 상품을 들고 들어간다고 팔리는 산업이 아니다. 각국의 법규와 의료·사회보장 체계, 소비자 문화, 판매채널 구조가 모두 다르다. 국내에서 통했던 보장 구조나 영업 방식도 해외에서는 그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시장 규모가 큰 곳일수록 경쟁과 규제의 벽도 높았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현지 대형 보험사들이 이미 고객 기반을 확보하고 있었고, 글로벌 보험사들도 일찍부터 시장에 들어와 있었다. 외국계 보험사에 대한 인허가 요건, 지분 제한, 합작 조건 등도 국내 보험사들이 독자적인 영업 전략을 펼치는 데 부담으로 작용했다.
동남아 시장도 마찬가지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은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진출지로 떠올랐지만, 보험 인식이 낮은 지역에서는 상품 설명과 신뢰 형성부터 필요하다. 설계사 조직, 방카슈랑스, 온라인 채널, 현지 제휴망 등 판매 기반을 만드는 데에도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업권별 특성 또한 수익화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다. 손해보험은 자연재해와 대형 사고에 따라 손해율이 크게 움직이고, 생명보험은 장기계약 중심인 만큼 고객 기반과 유지율 관리가 중요하다. 시장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현지에서 계약을 오래 유지시키고 손익을 안정화하는 일이다.
보험업계에서는 2000년대 초의 해외시장 전망이 방향성에서는 맞았지만, 시장 성장과 수익성 확보는 다른 문제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지 제도와 소비자 신뢰, 판매채널, 손해율 관리가 맞물려야 하는 보험업 특성상 수익 기반을 다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외형 성장 이면에는 오래된 과제
흥미로운 점은 2000년대 초 제기됐던 과제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도 국내 보험사들이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현지 규제 대응과 정부 차원의 지원, 현지 네트워크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해외사업의 성패는 현지 시장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해외점포 실적도 이 같은 과제를 보여준다. 전체 순이익은 증가했지만 신규 점포 편입 효과가 컸고, 이를 제외한 기존 점포 수익성은 둔화됐다. 손해보험사 해외점포는 동남아시아 자연재해 영향으로 순이익이 줄었다. 해외점포가 늘고 전체 이익이 증가했다는 결과만으로 해외사업의 안정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보험업계 안팎에서는 해외점포 실적을 볼 때 일회성 요인과 지속 가능한 영업성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규 인수·편입에 따른 실적 개선인지, 기존 점포의 영업 기반이 실제로 강화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해외사업은 현지 규제, 판매채널, 소비자 문화, 환율, 자연재해 등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에 노출돼 있어 리스크 관리 역량이 수익성의 핵심으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 제기됐던 해외시장 성장 가능성은 상당 부분 현실화됐지만, 그 시장이 국내 보험사에 곧바로 수익을 보장해준 것은 아니다”며 “기존 점포의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 능력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사업은 현지 규제와 판매채널, 자연재해 등 변수가 많아 단기 실적만으로 성과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신규 편입 효과와 기존 영업성과를 구분해 봐야 하고, 현지 고객 기반과 손해율 관리 체계가 뒷받침돼야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보험시장의 성장 여력이 제한되면서 해외사업 확대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다만 현지 인허가와 외국자본 규제, 합작 요건 등은 개별 보험사만으로 풀기 어려운 영역이어서,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험사들이 보험료 수익만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국내에서 성장 여력이 제한된 만큼 해외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사업이 실질적인 성장동력으로 이어지려면 보험사 개별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정부도 보험사들이 해외에 진출하고 국내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규제 환경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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