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 (19)'인종 차별 맞선 투쟁, 화해와 용서' 투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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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물열전] (19)'인종 차별 맞선 투쟁, 화해와 용서' 투투 대주교

연합뉴스 2026-05-09 08:00: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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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서 반아파르트헤이트 상징…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만약 당신이 부당한 상황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당신은 압제자의 편을 들고 있는 겁니다. 코끼리가 생쥐 꼬리 위에 발을 올리고 있는데 당신은 중립이라고 말한다면, 생쥐는 당신의 중립성에 감사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 신학자인 로버트 맥아피 브라운 목사의 1984년 저서 '예상치 못한 소식 - 제3세계의 눈으로 성경 읽기'에 인용된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의 이 발언은 성직자로서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 분리·차별 정책)에 맞서 싸운 투투 대주교의 생각을 오롯이 보여준다.

투투 대주교는 20세기 최악의 정치적 폭압 가운데 하나로 역사에 남은 남아공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에 결연히 맞선 용기와 신념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백인정권이 종식된 이후에는 복수보다는 진실 규명을 전제로 한 용서와 화합을 주창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둔 채 부정부패, 소수자 혐오 등 남은 악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투투 대주교는 1931년 10월7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서쪽 작은 마을 클레르크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교사의 길을 걷던 그는 흑인 아이들에게 열악했던 당시 교육 환경에 분노해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0세에 성공회 성직자가 됐다. 이후 1986년 대주교로 임명됐다.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교회협의회를 이끌며 정부의 위협에도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인종차별을 이유로 한 국제사회의 남아공 제재를 지지했으며 인권 신장을 위한 국제활동에도 전념했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투옥돼 있던 시기 투투 대주교는 국제 사회에서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의 상징적 인물이 됐고,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남아공에서는 1960년 앨버트 루툴리 아프리카국민회의(ANC) 전 의장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었다.

당시 노르웨이 노벨상 위원회는 "남아공 국민들이 흑백 간 대립과 갈등을 청산하고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비폭력 투쟁을 주도해 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평소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유머와 함께 표출해 공감을 자아낸 그는 당시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도 "잠비아인과 남아공인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잠비아인이 자국 해양부 장관에 대해 허풍을 떨었다. 남아공인이 '잠비아엔 해군이 없고 바다와 접해있지도 않은데 무슨 해양부 장관이 있냐'고 묻자 잠비아인은 '이런, 남아공에는 법무부 장관이 있잖아, 그렇지 않아?'라고 응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고 흑인으로선 처음으로 만델라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1996∼1998년 설치·운영된 진실과화해위원회(TRC)의 위원장을 맡아 국가적 치유와 화해, 용서를 위한 과정을 이끌었다.

TRC는 소수 백인정권에서 있었던 흑인에 대한 극단적 차별과 인권 유린, 고문과 의문사에 대해 조사했지만, 처벌보다는 진실과 용서를 추구했다.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하수인들은 위원회에 출석해 자신들의 행위를 고백하는 대가로 사면받았다.

투투 대주교는 교계의 동성애 혐오와도 맞섰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성차별과 폭력과 관련해 "나는 성소수자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로 불이익을 받을 때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했던 것과 같은 열정으로 그러한 부당함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 영국 BBC방송과 인터뷰에서는 "만약 신이 동성애를 혐오한다면 그 신을 숭배하지 않겠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천국에 가는 것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투투 대주교는 부패가 심했던 흑인 대통령 제이콥 주마 정부(2009∼2018)와도 각을 세웠고,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한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정실인사와 순혈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2021년 12월 26일 투투 대주교가 90세를 일기로 선종했을 때는 세계 각국에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신분이었던 이재명 대통령도 페이스북에 "고인께서 보여주신 억강부약의 정신과 실천은 지역과 시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에게 귀감이 됐다"며 "투투 대주교님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지구촌 모든 이들과 함께 슬픔을 나눈다. 대주교님의 삶과 정신을 잊지 않겠다"고 애도를 표했다.

투투 대주교에 대한 추모는 지금까지도 여러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는 투투 대주교를 주제로 한 미국 샘 폴라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투투'가 공개됐다.

베를린영화제는 영화 소개 글에서 "남아공 성직자 데즈먼드 투투는 단지 대주교일 뿐 아니라 도덕적 나침반이자 두려움 없는 정의의 수호자였으며 더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희망의 신호였다"고 적었다.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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