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과 정전체제 사이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비무장지대(DMZ)는 총길이 248㎞, 폭 4㎞의 띠 모양이다. 비무장지대로 불리지만, 중무장(重武裝) 공간이다. 1953년 정전협정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 각 2㎞씩 설정됐다. 경기도 파주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철책과 감시초소(GP), 지뢰밭이 맞물려있다. 인적이 끊긴 70여년간 DMZ엔 숲과 습지가 들어섰다. 국립생태원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생물종의 약 20%, 4천873종이 이곳에 서식한다. 두루미와 산양, 삵 같은 희귀종도 산다. 전쟁으로 황폐해졌던 땅 위에 역설적으로 조성된 '강제된 자연'이다.
DMZ는 한국만의 풍경은 아니다. 핀란드령 올란드 제도는 크림전쟁 이후 1856년 파리조약과 1921년 국제연맹 결정으로 비무장·중립 지위를 확립한 대표적 사례다. 지중해의 키프로스는 1974년 튀르키예 침공 이후 유엔 평화유지군이 관리하는 완충지대, '그린라인'이 섬을 남북으로 가르고 있다. 시리아 이들리브는 2018년 러시아와 튀르키예가 비무장 완충지대 조성에 합의했지만, 포화 속에 무너졌다. 하지만 한국의 비무장지대처럼 냉전·분단·군사적 긴장이 동시에 응축된 공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낙인처럼 분단의 상처가 남아있다.
DMZ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발단은 관할권 논란이다. 지난해 교황청 장관 유흥식 추기경의 DMZ 방문이 유엔군사령부 승인 문제로 무산됐다. 유해 발굴 현장 방문도 제동이 걸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대한민국 영토를 유엔사 허락을 받아 비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후 이른바 'DMZ법'이 추진됐다. 국방부도 다음 주 열리는 '한미 통합국방협의체' 회의에서 DMZ 관할권 협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엔사는 정전협정 위반을 경고하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주권과 정전체제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정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북한 우라늄 농축 시설의 소재지로 '평안북도 구성'을 언급했다. 미국 측은 이를 사실상 '정보 누설'로 받아들여 대북 위성정보 공유를 일부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DMZ 관할권 문제까지 겹치면서 한미 간 안보 현안을 둘러싸고 난기류가 형성되는 양상이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하는 상황과 맞물려 DMZ 문제 역시 한미 간 안보 조율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DMZ는 모순의 공간이다. 총구와 지뢰가 숲을 지키고, 휴전선이 생태계를 보전했다. 동시에 이곳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평화적 활용 확대와 군사적 안정성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다. 문제는 속도와 방식이다. 한미 간 충분한 협의 없이 밀어붙이면 동맹 균열로 번질 수 있고, 지나친 경직성은 DMZ를 영원한 분단의 박제로 남길 뿐이다. DMZ는 과연 전쟁의 유산이 될 것인가, 평화의 예고편이 될 것인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