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를 둘러싸고 조세 형평성과 과세 실효성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예정대로 과세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학계와 업계,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과세 체계와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될 경우 거래 위축과 해외 거래소 이탈, 납세 혼란 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폐지된 상황에서 가상자산 투자자에게만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상자산 과세 긴급 점검 토론회'에서는 현행 가상자산 과세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둘러싼 비판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토론회를 주최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국세청의 과세 준비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초기 과세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할 경우 정부 신뢰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거래소 거래만 포착 가능한 상황에서 해외 거래소로의 자금 이동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했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되며 연간 손익을 합산한 뒤 기본공제 250만원을 제외한 금액에 20% 세율이 적용된다. 지방소득세까지 포함하면 실효세율은 22% 수준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가상자산 시장 역시 제도권 과세 체계 안으로 편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과세 구조가 기존 금융투자 자산과 비교해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금투세 폐지 이후 국내 주식 투자자 상당수는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 부담이 사라졌지만 가상자산 투자자들에게는 별도의 과세가 예정돼 있다. 동일한 투자 소득임에도 자산 종류에 따라 세 부담이 달라지는 것은 조세 중립성과 조세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세 체계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도 문제로 지목된다. 해외주식의 경우 양도소득 체계 안에서 오랜 기간 판례와 유권해석이 축적돼 왔고 증권사가 거래 내역과 세금 신고를 상당 부분 지원한다. 반면 가상자산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있는 데다 스테이킹, 에어드롭, NFT,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등 새로운 거래 유형에 대한 과세 기준조차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월결손금 공제가 허용되지 않는 구조에 대한 불만이 크다. 현재 제도상 가상자산 투자 손실은 다음 해로 넘길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해에 1000만원 손실을 보고 다음 해 800만원 이익을 얻더라도 이전 손실을 공제할 수 없어 세금을 내야 하는 구조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실제 누적 손익은 마이너스인데도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해외 주요국들은 대부분 가상자산을 자본이득세 체계 안에서 과세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은 손실 이월 공제를 허용하고 있으며 장기보유 여부에 따라 세율을 차등 적용하기도 한다. 반면 국내는 기타소득 분류와 제한적인 손익통산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불리한 과세 체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세 인프라 미비 문제도 핵심 쟁점이다. 현재 과세당국이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거래는 국내 원화 거래소 거래에 한정된다. 반면 해외 거래소나 탈중앙화거래소(DEX), 개인 지갑 간 거래는 추적이 쉽지 않다. 국내 거래소를 이용하는 투자자들만 우선 과세 대상이 되고 해외 거래소 이용자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국내 가상자산 거래량은 이미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국내 가상자산 일평균 거래 규모는 상반기 대비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과세 시행이 본격화될 경우 단기 매매 비중이 높은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해외 거래소 이동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정부는 예정대로 과세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OECD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 등을 통해 해외 거래 정보 공유가 확대되면 과세 공백 역시 상당 부분 보완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과세 자체보다도 '준비되지 않은 과세'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투자 상품으로서 이미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고 있는 만큼 과세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과세 기준과 신고 체계, 거래 데이터 연계 시스템 등이 충분히 정비된 이후 시행해야 한다"며 "과세의 명분보다 중요한 것은 납세자가 예측 가능하고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제도 설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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