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환의 콘서트를 공연 이틀 전 일방적으로 취소한 구미시가 법원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았다.
가수 이승환. / 뉴스1
8일 서울중앙지법은 이승환과 소속사, 예매자 100명이 구미시와 김장호 구미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2억5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에서 총 1억2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인정한 배상 금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913단독 박남준 부장판사는 이날 "구미시는 이승환에게 3500만원, 소속사 드림팩토리클럽에 7500만원, 예매자 100명에게 각 15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측이 청구한 금액 전액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법원은 대관 취소의 위법성과 서약서 강요의 불법성,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구미시의 책임을 모두 인정했다.
이승환은 위자료 1억원을 청구했고, 소속사 드림팩토리클럽은 콘서트 취소에 따른 손해배상 1억원을 요구했다. 예매자들은 티켓값을 환불받긴 했지만 공연 관람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며 1인당 50만원씩 총 50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다. 법원은 이 가운데 이승환 3500만원, 드림팩토리클럽 7500만원, 예매자 1인당 15만원을 각각 인정하는 선에서 선을 그었다.
안전을 이유로 가수 이승환의 콘서트 대관을 구미시가 취소하자 '윤석열 퇴진' 구미 시국회의 단체 회원들이 2024년 12월 27일 오후 구미시청앞에서 '극우의 낭만도시 거부한다, 구미시민 촛불 콘서트를 열고 김장호 구미시장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스1
사건 발단, 탄핵 발언과 서약서 요구
이 사건은 2024년 12월 25일 구미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승환 콘서트가 공연 이틀 전 갑작스럽게 취소되면서 시작됐다. 이승환 측은 같은 해 7월 31일 대관 신청을 해 사용허가를 이미 받아 둔 상태였다.
취소의 직접적인 계기는 이승환이 다른 지역 공연에서 한 발언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직후 이승환은 공연 무대에서 "탄핵되니 좋다. 앞으로는 편한 세상이 될 것 같다"고 말했고, 이를 문제 삼은 지역 보수·우익 시민단체들이 구미 공연 반대 집회를 예고했다.
이에 김 시장은 공연 5일 전 이승환과 기획사 대표에게 직접 '정치적 선동 및 오해 등의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 서명을 요구했다. 이승환 측이 이를 거부하자 구미시는 공연 이틀 전 "보수 우익단체와 관객 간 충돌이 우려된다"는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대관 허가를 취소했다.
법원은 왜 구미시 손을 들지 않았나
법원이 구미시의 손을 들지 않은 핵심은 대관 취소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였다. 구미시가 내세운 '안전 우려'는 표면적 이유였지만, 법원은 실질적으로 이승환의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아 서약서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자 사용허가를 취소한 일련의 과정 자체가 위법하다고 봤다.
이승환 측 법률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판결 후 "공연장 사용 허가를 직접 취소당한 당사자는 지역 공연 기획사였지만, 법원은 이승환 측과 예매자들 역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연 계약 관계에 있는 제3자의 피해까지 인정한 의미 있는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직접적인 계약 당사자가 아닌 예매자들에게도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는 점은 이번 판결의 주요 쟁점 중 하나다.
경북 구미시가 이승환 콘서트 대관을 취소하자 2024년 12월 24일 대관 취소를 지지하는 100여개의 격려 화환이 구미시청에 배달돼 정문앞에 늘어서 있다. / 뉴스1
김장호 시장 개인 책임은 불인정…이승환 "항소하겠다"
이승환 측이 아쉬움을 표한 부분은 김 시장 개인에 대한 책임 인정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법원은 구미시의 기관 책임은 인정했지만, 시장 개인의 불법행위 책임까지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환은 판결 선고 후 입장문을 내고 "재판부는 일방적 공연 취소의 위법성, 서약서 강요의 불법성, 안전 조치를 하지 않은 구미시의 무책임을 모두 인정했다"며 "하지만 김 시장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못내 아쉬운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기서 멈추지 않겠다. 항소해 끝까지 정의를 묻겠다"며 "행정권력이 결코 침범해선 안 되는 음악인의 양심과 예술의 자유를 지키겠다"고 했다.
임재성 변호사도 "항소해서 김장호 시장의 개인 책임도 물을 것"이라고 밝혀, 2심에서는 시장 개인에 대한 책임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헌법소원은 각하…법원과 헌재 판단은 달랐나
이승환은 구미시의 서약서 강요가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정재판부 사전심사 단계에서 이를 각하했다. 헌재는 "서약 요구가 이미 종료된 사안인 데다, 헌법적 판단이 반드시 필요한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며 권리 보호 이익이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민사 법원이 구미시의 대관 취소를 위법으로 인정한 것과 달리, 헌재는 헌법소원 자체를 본안 심리 없이 걸러낸 것이다. 이는 같은 사안을 두고 민사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심사 경로와 판단 기준이 다른 데서 비롯된 결과다. 헌법소원은 공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직접 다투는 절차인 반면, 민사 손해배상 소송은 위법 행위로 인한 재산적·정신적 피해 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승환. / 뉴스1
예매자 15만원 배상, 실질적 의미는
이번 판결에서 예매자 100명이 각 15만원을 배상받게 됐다. 청구액 50만원에 비하면 30%에 그치는 금액이지만, 법적으로 의미 있는 지점이 있다. 티켓값을 환불받은 예매자들에게 추가 위자료를 인정한 것은, 공연 관람이라는 문화적 경험 기회 자체의 박탈을 손해로 본 판단이기 때문이다.
재판에 참여한 예매자는 102명이었고, 그 가운데 100명의 청구가 인용됐다. 예매자 전체로 보면 소액이지만, 지방자치단체가 공공 공연장 대관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관람객들에게 배상 책임을 지게 된 사례가 사법적으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선례로서의 무게가 있다.
구미시 공연 취소, 이후 이승환 행보
콘서트 취소 이후 이승환은 다른 지역에서 공연을 이어가며 활동을 계속했다. 법적 대응과 별개로 그는 예술인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강조해 왔다. 이번 1심 판결로 행정기관이 공연 콘텐츠에 개입하거나 예술인에게 특정 발언을 금지하는 서약서를 강요하는 행위가 사법적으로 제동이 걸린 형국이 됐다.
2심에서 이승환 측은 김 시장의 개인 책임을 추가로 다툴 계획이어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직접 예술 행사 취소에 개입했을 때 어디까지 개인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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