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두고 “전 세계적으로 이런 망신도 없다”고 강하게 질타하며 정부 차원의 대응 강화를 주문한 가운데, 현장 전문가들은 단순 상담 인력 확충을 넘어 지역사회 중심의 밀착 관리 체계와 민관 협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살 문제를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 안전망 붕괴와 공동체 단절의 결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분위기다.
8일 정치권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과 관련해 “대한민국의 현재 위상을 보건대 이렇게 자살자가 많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자살 예방 대책 강화를 주문했다. 특히 자살 예방 상담전화 인력 부족 문제를 언급하며 “국가 구성원이 죽겠다고 전화했는데 전화가 안 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국무조정실 산하에 범부처 자살대책추진본부를 설치하고 올해 자살자 수를 1000명 줄이겠다는 목표 아래 ‘천명 지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109 자살예방 상담전화 인력 확충과 자살 시도자 대상 초기 개입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올해 들어 자살자 수는 감소 흐름을 보이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2월 자살 사망자 수는 91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8% 감소했다. 2022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 연속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는 단순 수치 감소만으로 안심하기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봄철에는 일조량 증가와 활동량 확대에도 불구하고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른바 ‘스프링 피크’ 현상이 반복되는 만큼 보다 촘촘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자살 문제를 개인 정신건강 차원이 아닌 사회 구조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간한 ‘2026 자살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자살 사망자 1만4872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1.3%(7623명)가 학생·가사·무직자 등 비경제활동 계층이었다. 경제적 기반과 사회적 관계망이 모두 취약한 계층이 극단적 선택에 더 크게 노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성 자살 사망자 가운데 비경제활동 계층 비중은 64.4%로 남성보다 높았다. 돌봄과 경력 단절, 사회적 고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남성은 경제적 문제를 주요 자살 동기로 꼽는 비율이 높아 성별에 따라 위험 요인도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현장 전문가들은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상훈 생명의전화 원장은 “고위험군 관리에는 민관 협력이 절실하다”며 “지자체 차원의 자살예방정책관 설치와 사례 관리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살예방센터 인력만으로는 지역 내 고위험군을 모두 관리하기 어려운 만큼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 지역사회 조직까지 연계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장도 “대통령과 정부의 강한 의지가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며 “전화상담 응대율을 높일 수 있는 인력 충원과 함께 지자체 역량 강화, 고위험군 지원 서비스 확대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대통령 역시 국무회의에서 정신건강 정책과 관련해 “현재 시스템은 사실상 개인에게 맡겨져 있다”며 정부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신질환자 강제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법적 책임 부담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현실도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결국 자살 예방 정책이 단순 상담 확대를 넘어 지역사회 돌봄과 정신건강 관리, 경제·고립 문제 대응까지 포함하는 ‘사회 안전망 재설계’ 수준으로 확장돼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단기 캠페인보다 지속 가능한 현장 중심 대응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 예방 SNS 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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