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사건이 잇따르며 노동단체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은 오래된 문제지만, 폭행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불이 붙은 모양새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이 바닥으로 내몰린 원인으로 고용허가제의 ‘단기순환’ 구조가 지목되고 있다.
불씨는 지난 2월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의 한 제조업체 작업장에서 시작됐다. 해당 제조업체 대표가 작업 중이던 태국 국적 노동자 A씨의 항문에 에어건을 밀착한 채 고압 공기를 분사해 장기를 손상시켰다. 사건 이후 경찰은 해당 업체 대표를 상해 혐의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뒤 수사에 착수했다. 가해자는 “장난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 학대…
잇따른 범죄
또 피해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본국 귀국을 종용받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피해자 A씨는 고용허가제 비자로 입국했으나 비자 만료 이후 미등록 체류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최근 인천에서 또 다른 외국인 노동자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 서구 가좌동의 한 섬유·침구 제조 공장에서 근무하던 방글라데시 국적 노동자가 관리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사건은 지난달 24일 작업장 내부에서 발생했다. 당시 관리인은 작업 중이던 노동자에게 다가가 “어제 뭐 했냐” “왜 연락이 안 됐냐”며 거칠게 추궁하기 시작했고, 이어 뺨을 여러 차례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등 폭행을 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장면은 현장에 있던 다른 직원에 의해 촬영돼 외부로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졌다. 영상에는 관리인이 노동자를 향해 고성을 지르며 “어디 있었냐” “기숙사에 없던데 뭐 했냐”고 반복적으로 묻고, 이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노동자를 향해 폭행을 이어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폭행의 발단은 단지 피해 노동자가 전날 밤 기숙사에 없었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주노동자가 폭행이나 임금체불, 열악한 숙소 문제를 겪어도 쉽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현행 외국 인력 제도의 구조 때문이다.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고용허가제 ‘단기순환’ 구조다.
고용허가제는 국내 사업장이 내국인 노동자를 구하지 못할 경우 정부의 허가를 받아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주로 제조업, 농축산업, 어업, 건설업 등 인력난이 심한 업종에서 활용된다.
항문 에어건·기숙사 이유로 폭행
반복되는 ‘노동자 통제’ 현실로
이 제도를 통해 들어오는 대표적인 체류 자격이 비전문취업 비자인 E-9이다. 쉽게 말해 E-9는 공장이나 농장, 건설 현장 등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취업 비자다.
문제는 이 제도가 외국인 노동자를 ‘장기적으로 함께 일할 노동자’라기보다 ‘일정 기간만 쓰고 돌려보낼 인력’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E-9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3년 동안 국내에서 일할 수 있고, 사업주가 재고용을 원할 경우 1년10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이를 합치면 1차 체류 기간은 최대 4년10개월이다. 이후 일정 요건을 갖추면 재입국 특례를 통해 다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지만, 이 경우까지 포함해도 체류 기간은 최장 9년8개월 수준으로 제한된다.
이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출국해야 하는 구조를 단기순환 구조라고 부른다.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장기 정착을 막고 내국인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이 방식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이 구조가 오히려 숙련 인력 공백과 인권 침해를 동시에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먼저 노동자 입장에서는 체류 자격이 고용 관계와 강하게 묶여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E-9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처음 배정된 사업장에서 일해야 하고, 사업장을 바꾸는 것도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임금체불이나 폭행, 괴롭힘 등 사업주의 귀책 사유가 있을 경우 이동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가 직접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언어 장벽과 정보 부족, 신고 이후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사업장을 옮기기는 쉽지 않다.
괴롭혀도
참고 버틴다
이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고 버티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을 그만두면 당장 소득이 끊기는 것은 물론이고, 정해진 기간 안에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경우 체류 자격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기에 숙소 문제까지 걸치면 노동자의 생활 전반이 사업주 영향권 안에 들어가게 된다.
많은 이주노동자는 사업주가 제공한 기숙사나 컨테이너, 사업장 부속시설 등에 거주한다. 이 경우 일터와 주거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퇴근 이후의 생활까지 관리·통제의 대상이 되기 쉽다.
단기순환 구조는 사업장에도 문제를 남긴다. 노동자가 수년간 일하며 숙련을 쌓아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결국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제조업이나 건설업처럼 숙련과 현장 경험이 중요한 업종에서는 새로 들어온 인력을 다시 교육해야 하고, 작업 효율과 안전관리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 현장에서는 노동자가 “기껏 일을 가르쳐놓으면 비자 만료로 돌아간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고용허가제의 단기순환 구조는 한쪽에서는 노동자를 사업장에 묶어두고, 다른 한쪽에서는 숙련된 노동자를 오래 붙잡지 못하게 만든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쉽게 떠나지 못하게 만들면서, 정작 숙련이 쌓일 시점에는 떠나게 하는 셈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외국인 고용 취약사업장 점검에서는 수백개 사업장에서 임금체불과 근로기준법 위반이 적발됐고, 체불 규모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행과 괴롭힘, 장시간 노동, 안전조치 미이행 등 기본적인 노동권 침해 역시 광범위하게 확인됐다.
노예 키우는
노동 시스템
문제는 이 같은 위법 행위가 특정 사업장에 국한된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전체 취업자 대비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임금 체불이나 산업재해와 같은 위험에는 훨씬 더 높은 비율로 노출돼있다.
실제로 임금체불 경험 비율은 내국인의 2~3배 수준으로 나타났고, 산업재해 사망률 역시 내국인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위험한 일은 이주노동자가 맡는다’는 이른바 ‘위험의 이주화’ 현상이 고착화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도 피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들에게는 신고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일자리를 잃고, 곧바로 불법 체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미등록 상태로 밀려난 노동자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단속과 강제 출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폭행이나 임금체불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제도 안에서 합법적으로 입국한 노동자조차 일정 기간 내 사업장을 옮기지 못하거나 구직 기간을 넘기면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사업장 변경 신청 기간이나 구직 기간을 하루라도 넘기면 체류 자격이 상실되는 경직된 구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노동자가 ‘불법’ 상태가 되고, 그 취약한 지위를 약점 삼아 사업주가 이용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또 다른 문제는 송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부채다. 일부 비자의 경우 민간 브로커가 개입하면서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수료가 발생한다.
“외국인 없으면 안 돌아가는데”
일할 만하면 귀국…숙련자 단절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서 대출을 받거나 재산을 처분해 비용을 마련하고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이미 빚을 지고 입국한 상태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사업장을 옮기는 선택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는 사업주에게 더욱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문제를 둘러싸고 정책 전환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 이후의 관리와 권익 보호, 숙련 형성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핵심 방향 중 하나는 단기순환 구조를 완화하고 숙련 인력의 장기 체류를 유도하는 것이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에는 체류 기간을 3년 단위로 재편하고, 일정 수준의 언어 능력과 기술 숙련도를 갖춘 노동자에게 추가 체류를 허용하는 방식이 포함된다.
특히 비전문취업(E-9) 인력을 숙련기능인력(E-7-4)으로 전환할 경우 최대 10년 이상 체류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이 같은 ‘숙련 중심 개편’이 만능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일부는 숙련 인력의 장기 체류가 내국인과의 일자리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또 숙련 인력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동할 경우, 지방이나 뿌리 산업의 인력 공백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단기순환 구조로는 산업 경쟁력 유지와 노동권 보호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이미 제조업과 농어업, 건설업 등 상당수 산업이 이주노동자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한 ‘인력 보충’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함께 일하는
이주 노동자
권익 보호를 둘러싼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특히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는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수년째 제기해 온 핵심 쟁점이다. 결국 중요한 건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다. 지금까지의 제도가 ‘필요할 때 들여와 쓰고 돌려보내는 노동력’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함께 일하는 노동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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