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4년간 480억원의 매출 증가로 20배 넘는 성장을 기록한 아이웨어 브랜드 블루엘리펀트 대표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며 ‘가성비 신화’의 이면이 드러났다. 정부는 해외 플랫폼 대응과 K-브랜드 보호 정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조차 모방을 관행으로 인정하는 구조 속에서 산업 전반의 창의성과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글라스, 안경 등의 아이웨어 제품을 판매하는 블루엘리펀트는 4만9000원에서 6만9000원 사이의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가성비 아이웨어’로 급부상했다. 2021년 25억원에서 2025년 506억원으로 폭발적인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일본 법인을 세운 후 2024년 일본 도쿄 중심부에 하라주쿠 플래그십과 신주쿠 플래그십을 출점한 데 이어 미국 법인을 설립하며 시장을 개척 중이다.
모방은 관행?
하지만 지난 2월, 블루엘리펀트의 대표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면서 브랜드가 쌓아 올린 ‘가성비 신화’의 민낯이 드러났다. 디자인권이 등록되지 않은 상품의 형태 모방 혐의(부정경쟁방지법 위반)로 기업 대표가 구속된 것은 국내 첫 사례다.
대전지방법원은 지난 23일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블루엘리펀트 대표 등 3명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모기업인 아이아이컴바인드는 블루엘리펀드 제품 다수가 자사 제품과 95~99% 이상 유사하다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 기술 경찰 조사 결과 모방상품 51종 중 29종은 3D 스캐닝으로 변환하여 비교했을 때 오차 범위 1㎜ 이내로 95% 수준의 일치율을 보였다.
특히 블루엘리펀트의 18개 모델은 젠틀몬스터 제품과 99%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 단순히 참조한 수준이 아니라 완전 복제한 이른바 ‘디자인 데드 카피’라는 지적이 나왔다.
수사 결과 해당 기업은 별도의 디자인 개발 인력 없이 젠틀몬스터의 인기 제품을 촬영한 뒤 해외 제조업체에 발주하는 방식으로 아이웨어 모방 상품 50종과 파우치 1종을 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타사 제품의 사진을 사실상 설계서처럼 사용한 것이다. 해당 제품은 2023년 2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약 32만1000여개가 판매됐고, 이는 소비자 기준 판매가 약 123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또 공개된 젠틀몬스터의 파우치 디자인이 블루엘리펀트 대표 명의로 출원 및 등록된 것으로 드러나 아이아이컴바인드 측은 현재 해당 파우치 디자인에 대해 특허심판원에 무효 심판을 제기한 상태다. 복제 범위는 제품을 넘어 공간으로 확장됐다.
‘전시형 매장(VMD)’을 브랜드 정체성으로 삼는 젠틀몬스터의 상하이 매장의 설치물과 공간 구성이 블루엘리펀트 명동 매장에 그대로 구현됐다. 조형물과 공간 연출 방식의 유사성이 거론되면서 “브랜드 경험 자체가 복제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부채율 307% 위기에도…
투자용 외형 성장 지속
하지만 블루엘리펀트의 입장은 다르다. 구속 기소 이후 입장문을 통해 “통상적인 형태 제품까지 보호 대상으로 보는 것은 과도하다”며 “안경은 인체공학적 구조상 유사한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선행 제품을 참조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밝혔다.
블루엘리펀트는 이번 사태로 예정돼있던 대규모 투자 유치가 무산됐고, 부채비율은 307%까지 치솟았다. 영업 활동 현금흐름 또한 마이너스 25억원을 기록하며, 사업 운영 및 투자가 자체 수익이 아닌 외부 차입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500억 매출 돌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은 74%나 급감했다. 법적 대응 비용과 무리한 오프라인 확장이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한 결과다. 실제로 매장 확대 과정에서 임차료는 12억 원에서 88억원으로 급증했고, 감가상각비 역시 6억원에서 38억원으로 뛰었다.
그럼에도 지난달 20일과 30일 부산 서면과 광복점을 연이어 개점했으며 글로벌 패션의 중심지로 꼽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 올해 상반기 개점을 목표하고 있다. 미주 시장 확장과 함께 유럽 주요 도시 진출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블루엘리펀트의 공격적인 확장이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보다 ‘외형 성장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대규모 투자를 받기 위한 전략으로 봤다. 투자자들은 ‘당장의 이익보다 얼마나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는 만큼, 대규모 투자를 받기 위해 매출 성장세를 꺾지 않으려 무리하게 확장을 지속한 것으로 분석했다.
젠틀몬스터 역시 모든 제품을 디자인 등록하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지식재산처는 이번 피해 상품 51종이 모두 디자인 미등록 상태였다고 밝혔다. 다만 안경과 같이 유행 주기가 3~6개월로 매우 짧은 경우, 평균 6~10개월에 달하는 디자인 등록 심사 기간을 기다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패션·아이웨어 산업은 유행 주기가 짧고 제품 교체가 빨라 모든 디자인을 제때 등록하기 어렵다.
또 젠틀몬스터의 모기업인 아이아이컴바인드와 같은 연 매출 7723억원 규모의 기업이 아니라면 이번 소송전과 같은 장기적·법적 대응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결국 상당수 중소 브랜드는 권리 보호 자체를 포기하거나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지원·제도보다 빠른 모방
K패션 흔드는 내부적 한계
이번 소송을 통해 디자인 등록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도 악의적 복제에 대응할 길이 열렸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실제 분쟁에 들어가면 증거 확보와 소송 비용 부담은 여전히 클 수 있다.
테무, 쉬인, 알리익스프레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는 한국 브랜드들의 디자인을 모방한 제품이 이미 대량 유통되고 있다. 로고마저 그대로 사용한 채 판매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견되며, 원제품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역수입되는 구조까지 형성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K-브랜드 보호를 내세우며 대응에 나섰다.
특허청을 중심으로 해외 온라인 플랫폼 내 위조 상품 모니터링, 차단 요청, IP 보호 컨설팅, 해외 권리 확보 지원 등의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디자인·상표 출원 비용 지원과 분쟁 대응 프로그램도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해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화 제도를 도입해 상표권자가 위조 상품을 신고하면 판매가 차단되며, 해외 소재 온라인 플랫폼사에 대해서도 동일한 책임이 부과될 수 있도록 했다. 또 AI를 활용한 모니터링 및 차단을 2027년까지 500개 브랜드로 확대해 이미지, 텍스트 등을 동시에 분석한 후 변형된 상표 또는 이미지 합성 수법까지 탐지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올해 특허청은 지난해 대비 190억원 증가한 7248억원의 예산안을 편성했다. 해외에서 판매되는 유사 제품으로 인한 K-브랜드의 이미지 훼손을 막기 위해 현지 실태조사 및 단속을 강화하고 피해 맞춤형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한류 편승 행위 대응지원’에 94억원을 신규 편성했다.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위조 방지 기술 도입 지원’ 16억원을 신규 편성하는 등 국내 브랜드의 해외 진출과 지식재산권 보호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에 있다. 국내 기업인 블루엘리펀트조차 ‘업계 관행’을 이유로 디자인 모방을 정당화하는 상황에서 해외 시장에 대한 대응 및 책임 부과가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해외 대응만?
블루엘리펀트 사례와 같이 투자 유치를 위해 외형 확장에 집중하고 그 과정에서 독창성보다 모방이 전략으로 선택되는 흐름이 확산될 경우, 지금까지 독창적인 디자인과 브랜드 감각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온 K-패션은 매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한국 패션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시장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빠르게 재생산하는 시장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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