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내부 갈등이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훼손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며 총파업 카드까지 꺼낸 반면,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중국 TV·가전 사업 철수와 수익성 악화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내부 균열이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 국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사측과의 임금 협상이 결렬될 경우 오는 21일부터 총파업에 나설 방침이다. 공동투쟁의 핵심 의제는 DS부문 성과급이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메모리 업황 회복으로 DS 실적이 개선되자 노조는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제도화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DX부문 내 분위기는 무겁다.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내 TV·생활가전 판매 중단을 공식화했다.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와 현지 수요 부진을 감안한 결정이지만, DX 내부에서는 세트 사업의 후퇴로 받아들이는 기류가 역력하다.
스마트폰과 더불어 TV·가전이 오랜 기간 삼성전자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를 키워온 주력 분야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DX 구성원들의 위기감이 클 수밖에 없다. 회사 안팎의 관심이 DS부문의 놀라운 실적과 AI 반도체 시장 확대에 쏠리는 동안 미국 관세 부담 등 업황 리스크를 짊어지고 분투한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적 반응도 나온다.
최근 DX부문 조합원이 다수인 동행노조가 공동투쟁본부에서 이탈한 진짜 이유도 DS 성과급 의제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DX 현안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불만 때문이다. 안방에서는 잔치가 벌어지는데 건넛방은 냉골인 상황이다. 이날 동행노조는 DS부문 조합원 중심의 초기업노조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에 공문을 보내며 "교섭 정보 공유 및 차별 대우 금지 등 공정대표 의무 준수 촉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DX부문 한 관계자는 "회사 전체 구성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DX 임직원도 아우르고 가야 하기 때문에 DS 중심으로 이뤄진 노조가 요구하는 안을 사측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겠나"라며 "더 극단적인 갈등이 터지기 전에 (DS 직원들이) 양보할 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내부 갈등이 HBM 등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DS부문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HBM 경쟁에서 밀려나며 사업이 표류했다. 지난해 말부터 주도권 회복에 시동을 걸었는데 아직 본원적 경쟁력을 다졌다고 보기 어렵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이 품질과 수율, 납기 안정성을 공급사 선택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고 입을 모은다. 파업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단기 생산 차질보다 고객 신뢰 훼손이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파업 등으로 공장이 서다 멈추다를 반복하면 HBM 수율 하락이 불가피해 품질 훼손으로 귀결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HBM은 여러 장의 D램을 적층하고 첨단 패키징을 결합하는 고난도 제품이다. 일반 메모리보다 공정 안정성과 품질 관리가 훨씬 중요하다. 들쑥날쑥한 수율은 곧 고객사 이탈을 의미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삼성전자 임원은 "노조 측에서도 파업 시 수십조원 피해가 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외부에서도 반도체 공장 가동 중단 손실이 매일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며 "HBM은 결국 수율 싸움인데 라인이 섰다 돌기를 반복하면 엔비디아 같은 핵심 고객사로부터 안정적 공급사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심각한 리스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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