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개헌을 통해 북측 지역만 자국의 영토로 규정하는 영토 조항을 신설하고 통일 조항을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창한 '두 국가' 노선을 헌법에 반영한 것이다.
아울러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정의하고, 김 위원장이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핵무기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헌법에 포함됐다. 즉, 유사시 김 위원장에게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다만, 이번 개헌으로 대한민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전투적인 표현도 대거 삭제된 것으로 알려져 북한이 '정상국가'로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토 조항 신설하고 통일 개념 삭제…'적대국' 규정은 없어
북한이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한 헌법의 주요 내용이 6일 통일부 기자단 대상 간담회에서 공개됐다.
먼저 북한 새 헌법 전문에 따르면 이전 헌법의 서문과 본문에 있던 '북반부', '조국통일',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 등 통일 개념이 모두 사라졌다.
예를 들어 기존 헌법에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내용이 삭제됐고, 서문에 있던 김일성과 김정일의 통일 위업 기술도 모두 없어졌다.
그러면서 영토 조항은 신설됐다.
북한 헌법 2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러시아 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해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영역에 대한 그 어떤 침해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여러 차례 주창한 '두 국가' 정책을 헌법에 담은 것이다.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한다는 것을 해당 조문에 명기하는 것이 옳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는 내용은 없었다. 또, 기존 헌법에 있던 '제국주의 침략자들', '제1적대국 교양' 등과 같은 과격한 표현들도 사라졌다.
이에 대해 이정철 서울대 교수는 "개정된 헌법을 파악한 바에 따르면 가장 큰 첫인상은 북한이 정상국가화 이미지를 갖기 위해 전체적인 헌법을 디자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헌법이라는 최고 수준의 문서에 어울리지 않는 전투적 표현도 많이 삭제했다"며 "영토 조항을 신설하고 국가성을 강조하는 표현들과 규정들은 생겼지만 그럼에도 적대적 관계, 교전국 관계 등 성격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북평화공존으로 가는 하나의 인프라가 마련될 수 있겠다는 희망적 판단을 해볼 수 있는 헌법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국무위원장 핵사용 권한 첫 명시…사용 권한 위임 근거도 마련
이번 개정 헌법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권한과 위상이 대폭 강화됐다.
국가기관 배열 순서에서 국무위원장이 가장 먼저 등장하며, 이를 '국가수반'으로 정의했다.
그간 북한 헌법에서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가 먼저 배치됐으나 이번에 순서가 바뀐 것이다. 이와 함께 국무위원장의 '중요 간부 임면' 권한에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내각총리'가 명시됐을 뿐만 아니라 최고인민회의의 국무위원장 소환권이 사라져 명목상 견제 권한도 폐지됐다.
이 교수는 "국무위원장이 가장 앞서 권한이 명기되고 책임과 소환권이 삭제됐다"라며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권한은 국무위원장에만 유일하게 줬다고 돼있는 등 종합해보면 국무위원장 권한이 상당히 강화됐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의 통치 이념인 '인민대중제일주의'가 서문에 명기됐다. '무상치료', '세금 없는 나라', '실업을 모르는' 등 사회주의 무상 복지 조항도 모두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미 탈북민들에 따르면 사실상 세금을 내고 있다고 한다"라며 시장 원리가 깊숙이 수용된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핵 문제와 관련해선 국무위원장의 핵사용 권한이 최초로 명시됐으며 모든 무력에 대한 통솔권이 명문화됐다. 특히 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핵 사용 권한 위임 근거도 마련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교수는 "핵무력지휘권을 국무위원장이 독점한다고 넣었으며 지휘기구에 핵무력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고 추가로 들어가 있다"라며 "만약 (김 위원장이) 해외를 나가게 되면 위임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놨다고 해석된다"라고 분석했다.
靑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 일관 추진"
국정원 "北 새 헌법, 대남 적대성 줄여"
청와대는 이번 북한 개헌에 대해 종합적 검토를 토대로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정보원도 이번 개헌과 관련해 대남 적대성을 상당히 줄였다고 평가했다.
정보위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한민국과 접한 영역에 대한 '불가침성 침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지만 대남 적대 문구는 일절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전시에 대한민국을 평정해야 할 대상이라든지, 주적이라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며 "이번 헌법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과 단절은 분명히 하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에 대한 공세적 의미보다는 현상 유지 및 상황관리에 방점을 뒀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이번 북한 개헌의 특징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국무위원장 1인 체제를 공고히 한 점을 꼽았다고 야당 간사인 이성권 의원이 밝혔다.
내고향축구단, 북한 선수단으로는 8년 만에 한국 방문
청와대와 국정원의 평가처럼 북한의 대남 적대성이 줄어든 것은 북한 여자축구단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4일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한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AFC가 지난 1일 축구협회에 내고향의 경기 참가가 확정됐다고 알려왔다. 정부에 내고향 선수단의 방문 신청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북한 스포츠 선수들이 한국을 찾아 경리를 치르는 것은 지난 2018년 이후 8년 만이다.
그해 9월 창원에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 북한 대표단이 참석한 바 있으며, 북한 여자 축구팀의 한국 방문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공동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을 시작으로 그해 활발하게 이뤄진 남북 체육교류는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더는 진척되지 못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번에 방문하는 내고향 선수단은 선수 27명, 스태프 12명 등 총 39명이다. 내고향은 중국 베이징을 거쳐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이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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