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촉발된 ‘칩플레이션(Chip+Inflation)’이 전자산업의 수익 구조를 흔들고 있다. 출하량 확대가 곧 이익 증가로 이어지던 기존 공식이 약화되면서, 판매가 늘어도 수익성이 악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범용 D램 평균판매가격(ASP)은 전 분기 대비 90% 이상 급등한 것으로 집계됐다. 모바일 D램 가격도 1년 새 25달러대에서 70달러 수준으로 3배 가까이 치솟는 등 핵심 부품 가격 상승폭이 이례적 수준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같은 부품 가격 급등은 실제 실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전자 올해 1분기 스마트폰 사업은 매출이 증가했음에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넘게 감소했다. 갤럭시 S26 시리즈 판매 호조에도 불구하고 D램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가격이 급등하며 수익성을 압박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반도체 부문이 전체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과 대비되면서, ‘칩을 쓰는 사업’과 ‘칩을 파는 사업’ 간 수익 구조 차이가 더욱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부품 가격 상승이 수익으로 직결되는 구조와 비용으로 전가되는 구조 간 격차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세트 산업의 구조적 한계와 맞닿아 있다. 세트 산업은 부품 가격 상승을 즉각 판매가에 반영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은 출시 시점에 가격이 사실상 고정되기 때문에, 이후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판매량이 늘어도 이익률이 떨어지는 이유다.
프리미엄 전략 역시 근본적인 해법으로 보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울트라 모델 비중을 70% 이상으로 확대하며 평균판매단가(ASP)를 끌어올렸지만, 고성능 AP와 고용량 메모리 등 고가 부품 비중이 함께 증가하면서 수익성 방어에는 제약이 나타나고 있다. 고가 제품 중심의 판매 확대가 곧바로 이익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가 확인되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콘솔 시장에서도 가격 인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5 가격을 최대 40% 이상 인상했고, 닌텐도 역시 차기 제품 가격을 두 배 가까이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가격 인상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가격을 올리더라도 수요 부담이 커지고, 가격을 유지할 경우 수익성 압박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 부담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제조사들은 출하량 확대보다 수익성 방어에 초점을 맞추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전략을 보이고 있다. 저가 제품은 축소하고, OLED·폴더블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재편하는 양상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주요 IT 기기에서 OLED 비중이 2029년 5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칩플레이션이 프리미엄 제품 비중 확대를 유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기업 간 ‘체력 차’가 부각되는 모양새다. 애플과 삼성전자처럼 대규모 출하량과 수직계열화된 공급망을 갖춘 기업은 상대적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반면, 중소 브랜드는 메모리 조달 부담이 커지며 출하량 조정에 나서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애플은 차별화된 대응 전략을 취하고 있다. 가격 인상 대신 메모리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며 공급망 안정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모바일 D램 가격이 1년 새 3배 가까이 상승했음에도 이를 감수하고 물량 확보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동시에 아이폰 가격을 동결하고 저가형 맥북을 출시하는 등 점유율 확대를 병행하는 모습이다. 비용을 일부 흡수하며 시장 점유율을 넓히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 보급형 모델 판매 확대와 서비스 매출 성장 등이 맞물리며 수익성 부담을 일부 상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애플 역시 칩플레이션 영향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상황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약 10% 수준인 메모리 원가 비중이 향후 40%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재고 확보를 통해 비용 상승을 흡수해 온 구조가 점차 한계에 근접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칩플레이션은 단순한 비용 상승을 넘어 산업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격을 인상할 경우 수요 위축이 불가피하고, 가격을 유지하면 수익성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출하량 확대보다 수익성 방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완제품 업체들이 가격과 수익성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공급망 다변화와 부품 조달 전략 고도화, 프리미엄 제품 중심 포트폴리오 재편 등을 통해 원가 부담을 흡수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가격 정책과 제품 믹스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면서 비용 상승분을 분산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핵심 부품 확보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응이 불가피하다”며 “재고 전략과 장기 공급 계약 확대 등을 통해 원가 변동성을 낮추는 노력도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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