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은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구운 벽돌을 층층이 쌓은 전축분이다. 내부에서 나온 묘지석이 무덤 주인과 조성 시기를 알려준다.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주인과 축조 연대를 함께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사례로 꼽힌다.
무령왕릉에서는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허리띠, 신발, 청동거울, 다리미 등 금속공예품이 다수 출토됐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발견된 탓에 매장 당시 모습이 온전히 남지는 않았다. 다만 출토 위치와 용도 분석을 통해 왕과 왕비의 관 안팎 배치가 어느 정도 추정된다.
출토품은 왕과 왕비의 목관 안에 있던 물품과 관 밖에 놓였던 물품으로 나뉜다. 관 안 유물은 다시 몸에 지녔던 착장품과 장례를 위해 넣은 부장품으로 구분된다. 왕비의 관에서는 받침과 뚜껑을 갖춘 은잔이 나왔다.
왕비는 526년 11월 숨졌고, 529년 2월 무령왕 곁에 안치됐다. 은잔은 왕비 머리 근처에서 발견됐다. 평소 사용품인지, 장례를 위해 제작한 물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액체를 담는 용기로 추정되지만 내용물 성격도 알 수 없다.
국립공주박물관의 과학 조사 결과, 잔과 뚜껑, 꼭지는 은 함량 99wt% 이상으로 확인됐다. 뚜껑의 노란색 연꽃무늬 장식은 금 88.79wt%, 은 10.95wt% 성분의 21.3K 금이었다. 잔받침은 구리 77.53wt%, 주석 21.55wt%로 구성된 청동이다.
미술사학자 주경미 박사는 잔받침 금속 성분이 한국 전통 유기 성분과 같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존 한국 전통 유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제시했다. 은잔 한 벌 안에 금, 은, 청동이 함께 쓰인 셈이다.
장식 구성도 치밀하다. 뚜껑 꼭지 아랫부분과 잔의 굽 주위에는 꽃잎 8장의 연꽃무늬가 새겨졌다. 연꽃무늬는 위아래에서 장식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잔 몸체에는 뿔 모양이 조금씩 다른 용 세 마리가 같은 방향으로 도는 모습이 표현됐다.
뚜껑에는 삼산형 산이 네 곳에 배치됐다. 산 사이에는 서로 다른 새 두 마리, 뿔 달린 사슴, 나무, 꽃봉오리 등이 새겨졌다. 중국 위나라 태화 연간 장읍이 편찬한 '광아'에는 용의 머리 위에 박산이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박산은 바다 가운데 신선이 산다고 여겨진 산이다.
잔에는 용, 뚜껑에는 산이 장식됐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나온 백제금동대향로도 산 모양 뚜껑과 용 받침을 갖췄다. 무령왕릉 은잔과 백제금동대향로는 신선 세계를 상징하는 도상 구성을 공유한다.
잔받침 윗면에는 가는 선으로 무늬를 새겼다. 가운데에는 연꽃무늬가 놓였고, 테두리에는 톱니무늬가 둘러졌다. 사이 공간에는 사람 얼굴과 새 몸을 지닌 인면조, 용, 새, 사슴, 연꽃, 나무 등이 빽빽하게 채워졌다. 은잔과 뚜껑보다 새김선이 가늘어 육안 관찰은 쉽지 않다.
형식상 받침이 있고 뚜껑에 꼭지가 달린 잔은 중국 남조 계통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무령왕릉 은잔은 제작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중국 사례는 잔의 형태, 뚜껑과 꼭지를 함께 주조하는 방식 등에서 무령왕릉 출토품과 다르다.
무령왕릉 은잔은 잔을 주조한 뒤 굽을 따로 만들어 땜으로 붙였다. 뚜껑, 꼭지, 연꽃무늬 금판도 각각 제작한 뒤 붙였다. 뚜껑 구멍에 꼭지를 끼운 뒤 끝부분을 못 머리처럼 만들어 빠지지 않도록 고정했다. 꼭지가 리벳 역할을 한 구조다.
초기 연구에서는 무령왕릉의 일부 특색 있는 유물이 중국 남조 양나라에서 제작됐다는 견해가 있었다. 이후 백제 지역 출토 자료가 늘면서 연구도 확대됐다. 현재는 받침 있는 은잔을 백제에서 제작한 유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무령왕릉 은잔은 왕비의 관 안에서 나온 장례품이다. 금·은·청동을 함께 쓴 재료 구성, 용과 산을 배치한 문양, 남조 양식과 다른 제작법이 한 벌 안에 담겼다. 백제 왕실 장례와 금속공예 기술을 함께 보여주는 핵심 자료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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