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봄 산이 건네는 한 젓가락, 취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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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봄 산이 건네는 한 젓가락, 취나물

연합뉴스 2026-05-07 10:16:39 신고

3줄요약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봄철 입맛 사로잡는다 봄철 입맛 사로잡는다

(태안=연합뉴스) 충남 태안에서 봄철 대표 나물인 참취나물이 본격 출하되면서 건강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태안군 남면 원청리에서 참취나물을 수확하는 모습. 2026.3.20 [태안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sykims@yna.co.kr

봄바람이 산을 깨우면 가장 먼저 올라오는 생명이 있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땅을 뚫고 나오는 연한 잎, 바로 취나물이다. 옛사람들은 이 나물을 '동풍채'(東風菜)라 불렀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의 기운을 품은 나물이라는 뜻이다. 자연의 기운을 몸 안으로 들이는 봄철 양생 음식이었다.

양생에서 봄은 간(肝)의 계절로 여긴다. 간은 기혈의 흐름을 조절하고 몸속 막힌 기운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취나물은 성질이 차고 맛은 달고 매워 간경으로 들어가 열을 식히고 흐름을 풀어준다고 기록돼 있다. 예부터 두통과 관절통, 인후통 같은 봄철 증상에 취나물을 즐겨 먹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풍채라는 이름에는 '풍'(風)을 다스린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양생에서 풍은 병의 시작으로 여겨졌다. 외부의 찬바람뿐 아니라 몸 안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흐름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취나물은 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기혈 순환을 돕는 나물로 쓰였다. 풍습성 관절염이나 타박상, 해독 음식으로 이용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 동풍을 머금은 산나물, 몸의 흐름을 깨우다

현대 영양학에서도 취나물의 가치는 높게 평가된다. 베타카로틴과 비타민A가 풍부해 눈의 피로를 덜고 시력 보호에 도움을 준다. 비타민C와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활성산소를 줄여 면역력 유지에 도움을 준다. 칼륨 함량이 높아 나트륨 배출과 혈압 조절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나물은 해독 작용과 관련해서도 주목받는다.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부 유해 물질의 활성을 낮추고 배출을 돕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육류와 채소를 함께 먹는 전통 식문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제주는 취나물 수확철 제주는 취나물 수확철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2일 오전 제주시 애월읍의 한 밭에서 농민들이 취나물을 수확하고 있다. 2025.11.12
jihopark@yna.co.kr

우리 식생활에서 취나물은 오래전부터 계절 음식으로 자리해왔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월대보름에 묵은 취나물로 오곡밥을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겨우내 부족했던 영양을 보충하고 새봄을 준비하는 생활의 지혜였다. 봄에 채취한 나물을 말려 두었다가 다시 먹는 '묵나물 문화'는 계절의 시간을 저장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는 경험으로 축적된 생활의 지혜도 담겨 있다. 취나물에는 수산 성분이 있어 생으로 먹으면 칼슘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데치거나 말려 먹었는데, 현대 과학은 이 과정이 수산 성분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취나물 특유의 쌉싸름한 맛에도 의미가 있다. 양생에서는 쓴맛이 심장의 열을 내리고 몸을 깨운다고 본다. 겨울 동안 움츠러든 몸을 일으켜 세우는 봄의 맛인 셈이다.

조리 방식에도 균형의 원리가 담겨 있다. 취나물은 짧게 데쳐 찬물에 헹군 뒤 들기름이나 된장으로 무쳐 먹는다. 들깨는 부족한 지방과 단백질을 보완하고, 된장은 차가운 성질을 덜어준다. 서로 다른 재료가 어우러지며 맛과 성질의 균형을 맞춘다.

봄 산에서 캔 취나물을 이웃과 나누던 풍경도 오래 이어졌다. 함께 무쳐 먹으며 계절의 변화를 나누고 안부를 확인했다. 취나물 한 접시는 공동체를 이어주는 음식이었다.

요즘 식탁은 자극적인 맛과 가공식품에 익숙해져 있다. 과도한 염분과 스트레스는 몸의 흐름을 무겁게 만든다. 이런 때일수록 제철 음식이 가진 힘이 다시 주목받는다. 취나물은 몸의 열을 식히고 흐름을 풀어주며 균형을 되찾게 돕는 봄나물이다.

양생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다. 봄에는 봄의 기운을 먹는다는 말처럼 취나물은 동풍을 머금고 밥상에 오른다. 향과 맛 속에는 산의 기운과 계절의 흐름이 함께 담겨 있다.

◇ 손자병법으로 바라본 취나물 요리

군대가 길을 나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빠름도 아니고, 강함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흐름을 읽는 힘이다. 손자병법 '행군(行軍)의 장'은 "형세를 살피고, 기운을 읽으며,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전쟁의 원칙이면서 동시에 삶의 원칙이다.

이 지혜를 가장 소박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취나물이다. 봄 산에 들어서면 취나물은 먼저 길을 만든다. 거친 바위틈, 마른 흙 사이에서도 조용히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무리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행군의 첫 번째 원칙, 지형을 따르라는 가르침이다.

취나물 취나물

영양 산골짜기에서 채취되는 산나물 [촬영 성연재]

취나물을 처음 만나는 방식은 생취쌈이다. 갓 뜯은 어린잎을 그대로 쌈으로 싸 먹는다. 이는 군이 처음 진군할 때 가볍게 움직이는 것과 같다. 불필요한 것을 더하지 않고, 본래의 힘으로 나아가는 단계다. 쌉싸름한 맛이 입안을 깨우는 순간, 몸은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양생으로 보면 이는 간의 기운을 열어 막힌 것을 풀어주는 시작이다.

행군이 계속되면 상황은 변한다. 바람과 비, 시간의 흐름이 더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묵은 취나물이다. 말려 뒀다가 다시 불려 먹는 묵은 쌈과 나물은 시간을 견딘 음식이다. 손자병법의 군은 오래 머물면 피로해진다는 경계와 함께, 오래 버티기 위한 지혜를 보여준다.

묵나물은 자연의 시간을 품은 음식이다. 수산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데치고 말리는 과정은 독을 제거하고 순수한 기운만 남기는 과정이다. 이는 노자가 말한 "덜어냄으로써 완성된다"는 도(道)의 원리와 같다. 비워야 채워지고, 줄여야 오래 간다.

묵은 취나물 묵은 취나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취나물 밥과 비빔밥은 또 다른 행군의 단계다. 여러 재료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이는 군이 다양한 병력과 자원을 조화롭게 운용하는 것과 같다. 각자의 맛이 따로 존재하지만, 비벼지는 순간 하나의 힘으로 변한다. 양생에서 말하는 음양의 조화, 그리고 기(氣)의 순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취나물의 쌉싸름함은 몸속 열을 내리고 흐름을 정리하는 약성이다. 현대 영양학적으로 보아도 취나물은 칼륨이 풍부하여 나트륨을 배출하고, 베타카로틴과 비타민이 면역력을 높인다. 즉, 행군 중 지친 병사에게 필요한 회복의 음식이다.

나물무침은 균형의 기술이다. 너무 오래 데치면 향이 사라지고, 덜 데치면 거칠다. 손자병법이 강조하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라는 중용의 원칙이 그대로 담겨 있다. 들기름을 더하면 부족한 기운을 보충하고, 된장과 마늘을 더하면 차가운 성질을 조화롭게 만든다. 이는 약선학에서 말하는 상생의 배합이다.

취나물볶음은 불의 단계다. 열을 통해 부드러워지고 깊은 맛이 생긴다. 이는 군이 전투를 통해 단련되는 과정과 같다. 그러나 불이 지나치면 타버린다. 손자는 "분노로 싸우지 말라"고 했다. 불은 필요하지만 절제돼야 한다. 음식도, 삶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취떡. 수리취로 만든 떡은 단오의 음식이다. 계절의 기운을 응축한 이 음식은 행군의 끝, 즉 안정을 상징한다. 긴 여정을 마친 뒤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단계다. 자연의 기운을 모아 다시 시작할 힘을 만드는 것이다.

수리취떡 수리취떡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취나물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밥상에 오른다. 생으로, 말려서, 볶아서, 찌어서. 그 변화 속에는 하나의 공통된 흐름이 있다. 바로 '자연을 따르고, 무리하지 않으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는 곧 손자병법의 핵심이며, 노자의 도와도 같다. 억지로 이기려 하지 않고, 흐름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 것. 취나물은 그 길을 가장 소박하게 보여준다.

오늘 밥상 위 취나물 한 젓가락에는 봄바람과 산의 기운, 그리고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삶의 방식이 함께 들어 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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