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본고장을 지운 당구인들의 고유명사]
여러분, 길 가다가 대한민국 남성 아무나 붙잡고 이렇게 한번 물어본다고 해볼게요. "혹시 '허리우드(HOLLYWOOD)'하면 뭐가 제일 먼저 생각나세요?" 그럼 아마 이런 대답이 나오겠죠? "할리우드? 그거 미국 영화 중심지 아니야? LA에 있는 거?" 물론 그것도 맞는데 대한민국에서 당구 좀 쳐본 분들이라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허리우드? 당구대지.
당구장.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 가는 아지트였고 군 복무 시절 땐 외출 때 찾던 놀이터, 그리고 직장인이 된 뒤에는 퇴근 후에 승부욕을 불태우는 그런 장소죠. 그런데 늘 그 중심에 있었던 이름이 바로 이 허리우드 당구대입니다. 자 오늘 4인용 책상에서는요. 한국 당구장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메이드 인 코리아' 허리우드 이야기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저품질 당구대에 지친 3000점 고수의 결심 "내가 직접 만든다"]
허리우드의 시작을 알기 위해서는 1970년대 서울 종로 낙원상가로 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당시 서울의 명소였던 허리우드 극장이라고 하나 있었어요. 그리고 그 바로 옆에 큰 당구장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 당구장의 사장님이 훗날 이 허리우드를 만든 고 홍영선 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냥 평범한 당구장 사장님이 아니었어요. 당구 실력이 무려 3천 점 수준이었다는 국가대표 당구 선수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당구장 운영하면서 보니까 분명 공을 똑바로 친 것 같은데 공이 좀 이상하게 흐르고 이게 뭐 운으로 친 건지 실력으로 친 건지 좀 애매해요. 근데 이 최고 실력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이런 상황이. 결국 홍영선 회장은 생각합니다. "아 이럴 거면 내가 직접 만들고 말지". 그렇게 1982년 진짜로 당구대 개발에 나서는데요. 그리고 브랜드 이름은 자신이 운영하던 당구장 이름이자 당시 사람들에게 친숙했던 그 허리우드 극장 이름을 따가지고 '허리우드'라고 짓게 됩니다.
[한 달 걸린 당구대보다 하루 만에 만든 당구대가 더 좋다?]
근데 이게 타이밍이 진짜 좋았던 게 1980년대에서 90년대 대한민국에 당구 열풍이 불게 됩니다. 학생, 군인, 직장인까지 진짜 다 당구 치러 가는 그런 국민 놀이터였죠. 이때쯤부터 "야 이번 판 짜장면 내기?", "아 게임비는 꼴찌가 내야지" 하면서 이런 내기 문화도 본격적으로 자리 잡아요. 이 시기를 타고 허리우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데요. 그런데 허리우드가 잘 나간 이유가 단순히 당구 열풍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한국인의 DNA에 박혀있는 '빨리빨리 문화'랑 엄청 잘 맞았던 겁니다. 뭔 얘기냐면 사실 허리우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당구장 한번 차리기가 진짜 쉽지 않았어요. 원래 당구대 하나 놓으려면 목수가 직접 현장에 와서 살펴보고 나무 자르고 깎고 이거 다 사포질하고 이렇게 만들었거든요 당구대를. 그러니까 당구대 몇 대 넣으려면 보름은 기본이고 길게는 몇 달까지 걸리는 거예요. 당구장을 차리고 싶어도 이렇게 몇 달씩 그냥 까먹는 거죠.
근데 허리우드가 여기서 완전 다른 방식을 갖고 나옵니다. 바로 조립식 당구대입니다. 원래는 목수들이 다 수작업으로 만들었으니까 품질도 크기도 좀 들쭉날쭉했겠죠?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근데 허리우드는 공장에서 규격대로 만들어진 부품을 갖고 와서 현장에서 그냥 조립만 하면 돼요. 이러면 품질도 좋아지고 설치도 빠르니까 당구장 사장님 입장에서는 허리우드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거죠. 이때 1980년대에서 90년대 진짜 골목마다 당구장이 생겨나던 시절, 그 안에 허리우드가 빠르게 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최첨단 과학 기술과 장인 정신이 만나면 생기는 일]
아니 근데 당구대라는 게요. 겉으로 보면 그냥 좀 커다란 나무 탁자처럼 보이잖아요? 근데 절대 아닙니다. 당구대는 사실상 정밀 장비에 가까워요. 바닥 수평이 좀만 틀어져도 공이 막 이상하게 굴러가고 석판 두께, 쿠션 탄성 이런 거에 따라서 공의 (쿠션)각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특히 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치는 3쿠션, 이게 진짜 예민한 종목입니다. 아니 분명 제대로 친 것 같은데 공이 좀 이상하게 빠진다? 그럼 우리 다 뭐라 그래요? "아 여기 당구대 좀 이상한데?" 이러잖아요. 한국 당구인들 눈높이가 이만큼 까다롭다는 건데 허리우드는 이 까다로운 한국 시장에서 수십 년간 검증받아오면서 발전해갑니다. 결국 허리우드 당구대는 세계 캐롬연맹 국제대회의 공식 당구대로 채택되며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게 되고요. 현재 미국, 유럽, 남미 콜롬비아까지 전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까지 되고 있습니다.
특히 '판테온'이라고 허리우드 프리미엄 모델이 있는데 꽤 유명한 당구대예요. 국내 주요 당구대회에서 공식 테이블로도 많이 쓰이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뭐 그냥 국내 거라서? 이런 게 아니에요. 프로 선수들이 실제로 선호해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그 '뱅크샷(빈쿠션)' 있잖아요. 공 대신 쿠션 먼저 맞춰가지고 한 번에 2점 낼 수 있는 거. 이 뱅크샷이 쿠션의 반발력과 각도가 진짜 생명이에요. 그래서 판테온은 고급 고무 쿠션을 당구대에 붙여가지고 선수들이 계산한 각, 이거를 정확히 구현할 수 있도록 합니다. 게다가 열선 시스템도 깔려있는데, 열선이 왜 깔려있냐면 당구대가 습기에 되게 민감해요. 당구대가 습기를 먹으면 같은 힘으로 쳐도 공의 속도가 좀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허리우드 당구대는 화강암 석판 아래 열선을 깔아가지고 진짜 어느 날씨든 어떤 습도든 상관없이 사계절 내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통계로 증명된 국민 스포츠의 부활과 허리우드 장수의 비결]
아시다시피 한때 당구는 PC방, 스크린골프에 밀려서 조금 주춤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엄청난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죠. PBA(프로당구협회)가 등장하면서 당구는 다시 TV와 유튜브를 타는 그런 스포츠가 됐고 요즘은 디지털 점수판에 무인 당구장까지 나오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담배연기 자욱했던 그 아저씨들의 놀이터에서 이제는 훨씬 더 밝고 쾌적한 젊은 세대들의 실내 스포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당구장이 아무리 달라져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죠. 바로 당구장을 가득 메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 허리우드 당구대라는 겁니다. 과거 3천점 고수의 이 까다로운 눈, 당구대를 규격화된 조립식 제품으로 만든 혁신, 그리고 당구대를 단순한 탁자가 아니라 정밀 제품으로 본 장인정신. 이 세 가지가 모여서 지금의 허리우드를 만들어냈습니다. 아마 이 영상을 보신 분들이라면 앞으로 "아 당구대 때문에 점수가 안 난다" 이런 이야기는 하기 어렵겠습니다. 자 오늘 4인용 책상에서 준비한 내용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도 굿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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