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관 앞 "노 러시아" 구호·연막탄 시위…이스라엘관은 입구 봉쇄하며 긴장 고조
EU 자금 중단 압박·심사위원단 사퇴 이어져…비엔날레 시상식 폐막일로 연기
(베네치아=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에 있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러시아관 앞으로 핑크색 복면을 한 무리가 나타났다.
이들은 색색의 연막탄을 터뜨리며 "노 러시아"(No Russia)라는 구호를 외쳤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가 비엔날레에 복귀한 데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러시아관은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러시아관은 '더 트리 이즈 루티드 인 더 스카이'(the tree is rooted in the sky·나무는 하늘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는 주제로 전시를 선보였다.
러시아관 내부에는 1층과 2층을 관통하는 꽃나무가 놓였고, 한편에는 붉은 조명 아래 디제이(DJ)가 클럽 음악을 틀었다. 전시관 2층에서는 와인을 나눠주며 관람객들의 흥을 돋우기도 했다.
러시아관은 올해 비엔날레에서 프리뷰(5월 6∼8일) 기간에만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개막식이 열리는 9일부터는 문을 닫는다.
대신 프리뷰 기간 러시아관의 퍼포먼스를 녹화해 비엔날레 기간 야외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할 계획이다. 이 퍼포먼스에는 약 30명의 젊은 음악가, 철학자, 시인이 참여하며, 대부분은 러시아인이지만 멕시코, 말리, 브라질 출신도 포함됐다.
러시아관에서 만난 프랑스 관람객 카트린 뒤부아씨는 "비엔날레 측이 러시아관을 허용한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이지만 전시 자체는 흥미롭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참가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6일 공식 프리뷰를 시작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그해 비엔날레에서는 러시아관 예술가들과 큐레이터들이 항의의 표시로 철수했다. 2년 뒤 열린 2024년에는 러시아가 초청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엔날레 측은 지난 3월 러시아가 이번 비엔날레에 참가한다고 발표했고 이는 즉각 반발을 일으켰다.
유럽 22개국의 문화 및 외교 장관들은 비엔날레 회장 피에트란젤로 부타푸오코에게 서한을 보내 러시아의 참가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앞으로 3년간 비엔날레 지원금 200만 유로(약 34억1천만원)를 중단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유럽연합은 "유럽 납세자의 자금으로 지원되는 문화 행사는 민주적 가치, 개방적 대화, 다양성,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며 "이러한 가치는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는 존중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 역시 러시아의 참여를 반대하며 알레산드로 줄리 문화부 장관이 베네치아를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비엔날레 측은 러시아가 1914년부터 베네치아의 해당 전시관을 소유해 왔기 때문에 사용을 막을 수 없다고 이탈리아 정부 측에 해명했다.
러시아 외에 이스라엘의 참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수백 명의 친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은 이스라엘관 앞에 모여 입구를 봉쇄하고 "'집단학살'관은 비엔날레에서 물러나라"며 즉각 폐쇄를 요구했다.
시위대는 "비엔날레는 집단학살에 공모하고 있다"며 "포용과 관용이라는 것은 공허한 환상"이라고 비판했다.
시위 이후 다시 열린 이스라엘관은 '로즈 오브 너싱니스'(Rose of nothingness·무의 장미)라는 주제 아래 차분하게 전시를 이어갔다.
하지만 비엔날레 행사장 곳곳에서는 반러시아, 반이스라엘, 반제국주의를 외치는 시위들이 계속됐다.
올해 비엔날레를 앞두고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이들은 비엔날레 측에 이스라엘 참가를 거부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서 비엔날레 심사위원단은 러시아와 이스라엘을 겨냥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인물이 이끄는 국가에는 상을 수여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사임했다.
심사위원단이 사임하면서 오는 9일 개막식과 함께 열려야 하는 시상식은 폐막일인 11월 22일로 연기했다. 수상자 선정 방식도 심사위원 심사에서 관람객 투표 방식으로 바뀌었다. 국가관에 시상하는 이 상에는 러시아관과 이스라엘관 역시 후보에 포함된다.
비엔날레 측은 성명을 통해 "포용성과 동등 대우의 원칙"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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