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스톡데일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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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스톡데일 패러독스

연합뉴스 2026-05-07 07:01: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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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적 현실주의자의 '역설적 긍정'…불확실성의 세계를 사는 지혜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요즘 주변에서 힘들다고 말하는 분들을 자주 본다. 경제가 수치상으론 완만한 회복세지만, 서민과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성장률이 다소 나아졌으나 반도체를 비롯한 특정 수출 산업의 선전에 힘입은 측면이 크고 내수 경기는 여전히 가라앉아 있다. 몇 년간 누적된 물가 상승 폭 탓에 중산층과 서민의 실질 구매력은 여전히 낮고,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의 부채 규모와 폐업률도 상승 중이다. 여기에 이란 전쟁과 에너지 가격 상승, 미국 관세 인상 등 대외 악재까지 잇따르면서 서민들의 한숨이 더 짙어졌다.

옛 교도소 독방 옛 교도소 독방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너무 힘들면 주위에서 건네는 위로조차 별 도움이 안 될 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떠올리며 함께 힘을 내고 싶다. 스톡데일 역설이란 막연한 낙관론을 경계하며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결국엔 승리할 거라는 강한 믿음도 함께 유지하는 삶의 태도를 일컫는다. 미국 전쟁 영웅 제임스 스톡데일(1923~2005)의 놀라운 생존 일화에서 착안한 경영심리학 용어로, 경영전략가 짐 콜린스의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예비역 해군 제독인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 가을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격추돼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이로부터 그는 무려 8년 가까이 열악하기로 악명 높은 이 수용소의 좁은 독방에서 포로로 지내며 수많은 고문과 구타, 심리적 모욕을 당했다. 하지만 끝도 안 보이는 생지옥을 견뎌낸 그는 살아서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스톡데일의 생존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훗날 각종 매체 인터뷰와 자서전을 통해 밝힌 그의 증언은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을 줬다.

사람들은 스톡데일이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맹목적 낙관주의자라 여겼다. 그런데 그의 사고는 의외로 남달랐다. 오히려 무조건 낙관만 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당시 미군 포로들은 대체로 두 부류였다고 한다. 성탄절, 추수감사절, 부활절 특별석방 등을 바라며 막연한 희망에 차 있던 낙관론자들과 석방 가능성이 없다며 죽음만 기다리던 비관론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과는 비관론자뿐 아니라 낙관론자들마저 다수가 수용소 안에서 죽음을 맞았다. "올해 크리스마스만큼은 풀어주겠지"라고 기대했던 낙관론자들은 몇 차례 기대가 번번이 절망으로 바뀌자 병약해져 숨지거나 자살로 생을 마쳤다.

결국 버티고 살아남은 자들은 스톡데일과 같은 낙관적 현실주의자들이었다. 그는 포로 생활이 길어질 것을 대비했고, 쉽게 풀려날 수 없다는 진실을 직시했다. '희망 고문'에 휘둘리지 않는 대신, 반드시 살아 돌아가겠다는 의지만은 절대 꺾지 않으며 하루하루 현실에 충실했던 게 그의 생존 비결이었다. 쓰러지고 무너지지 않으려면 언제든 모든 게 무너질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역설적 태도다. '패러독스'란 용어가 쓰인 이유이기도 하다. 스톡데일은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 철학을 공부하며 이런 사고 기반을 다졌다고 한다.

경기침체·대출규제 그늘…1분기 경매 신청 13년 만에 최대 경기침체·대출규제 그늘…1분기 경매 신청 13년 만에 최대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올해 1분기 법원 부동산 신규 경매 신청 건수가 13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사진은 27일 서울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2026.4.27
hama@yna.co.kr

맹목적 낙관론은 벽에 부딪혔을 때 절망과 포기를 부른다. 하지만 '현실적 낙관론'은 다르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한계 안에서 가능한 대처법을 찾는 한편,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지금 고난에 처했거나 마음이 괴로운 사람이라면, 세상에 혼자뿐이라는 극심한 고독감을 느끼거나 삶의 의지가 약해졌다면, 스톡데일의 '역설적 낙관주의'에서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지금 앞에 놓인 문제들을 자기 의지와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로 구분한 뒤에 할 수 있는 일만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보자. 그렇게 견뎌내다 보면 기우는 듯했던 사업, 힘들어진 직장 일, 꼬여버린 인간관계 등이 언제 그랬냐는 듯 풀리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한없이 어두워 보이는 터널이라도 반드시 끝은 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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