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주의 스토리텔링] 내 손목 위의 그것... 전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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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주의 스토리텔링] 내 손목 위의 그것... 전차였다

뉴스컬처 2026-05-06 18:46: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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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제를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만든 참고 이미지/ 디자인= 뉴스컬처 DB.
칼럼 주제를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만든 참고 이미지/ 디자인= 뉴스컬처 DB.

당신은 오늘, 시계를 몇 번이나 봤나요. 버스가 오는지 확인하려고. 회의가 언제 끝나는지 가늠하려고.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하루에도 수십 번 손목을 내려다보지만, 사실 우리는 시간을 보는 게 아닐 때가 많습니다. 쫓기고 있는지를 확인 할 뿐이죠. 저도 그랬습니다. 그날 TV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전차였다

화면 속에서 까르띠에 탱크의 탄생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1917년. 루이 까르띠에가 전쟁터를 누비는 탱크, 그 전차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시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위에서 내려다본 전차의 차체 실루엣이 케이스가 됐고, 무한궤도가 시계줄이 됐다는 것.

그 순간, 멈췄습니다. 저거, 나 있는데. 선물로 받아 서랍 속에 곱게 두었던 시계가 떠올랐습니다. 그 직선들. 그 직각들. 그 단단한 옆면들. 특별한 날, 그날의 옷차림에 어울린다 싶을 때 만 꺼내 차던 시계. 그 안에 전차가 있었습니다.

100년 전 전쟁터가 내 서랍 속에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그 순간부터 시계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에서 태어났기에, 가장 고요하다

1917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그 시절 루이 까르띠에가 전선에서 포효하는 전차를 보며 시계를 떠올렸다는 것. 파괴의 기계에서 시간을 재는 물건을 상상했다는 것. 이 역설이 탱크 워치의 본질입니다. 

가장 거친 것에서 가장 우아한 것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시계는 100년이 넘도록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직선, 직각, 절제. 유행이 수십 번 바뀌는 동안 탱크는 탱크였습니다. 화려해지지 않았고, 더 복잡해지지도 않았습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때로 가장 강한 선언입니다. 앤디 워홀은 평생 두 가지만 찼다고 했습니다. 까르띠에 탱크, 그리고 아무것도 안 차는 것. 반복과 복제를 예술로 만든 사람이 100년을 변하지 않은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진짜 오래가는 것은 시대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을 재는 것과, 시간을 대하는 것

우리는 매일 시계를 봅니다. 그런데 시계를 본다는 것이 정말 시간을 본다는 뜻일까요.

이미지= 뉴스컬처 DB.
이미지= 뉴스컬처 DB.

쫓기는 사람은 시계를 봐도 시간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음 일정, 남은 여유, 줄어드는 여백만 보입니다. 시간을 재는 도구가 오히려 시간을 빼앗는 도구가 됩니다.

탱크 워치를 찰 때는 달랐어요. 그 직선들이 주는 단단함 때문인지, 그 절제된 숫자판 때문인지. 시간이 쫓아오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 앞에서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주함이 잠깐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이 선명해지는 감각.

시계는 원래 시간을 재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어떤 시계는 시간을 재는 게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놓습니다.

특별한 날에만 찬다는 것

저는 그 시계를 매일 차지 않습니다. 중요한 자리에 나가는 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날. 이날의 옷차림에 어울린다 싶은 날. 내가 조금 더 반듯하게 있고 싶은 날. 그런 날 아침에만 서랍을 엽니다. 

손목에 채우는 짧은 순간, 뭔가가 달라져요. 더 천천히 걷게 되고, 더 또렷하게 말하게 되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조금 더 진지하게 대하게 됩니다. 

시계 하나가 태도를 만들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그렇다고 답할 것 같아요. 아껴두기 때문에 특별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일 쓰지 않기 때문에, 꺼내는 날이 의미 있어지는 것들. 그 물건이 있어서, 우리는 특별한 날을 만들게 됩니다.

전쟁터에서 태어나 100년을 살아남은 디자인이 내 서랍 속에 있다는 것. 그것은 명품을 소유한 일이 아닙니다. 시간을 다르게 살겠다는, 아주 조용한 다짐 같은 것입니다.

좋은 물건은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데려갑니다. 좋은 브랜드는 제품을 팔지 않습니다. 그 물건을 쓰는 동안의 내 태도를 팝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 시간을 쫓았나요. 아니면 시간과 함께 걸었나요. 그리고 서랍 어딘가에, 아직 꺼낼 때를 기다리는 물건이 있다면, 오늘이 그날일 수도 있습니다.

"시계는 원래 시간을 재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어떤 시계는 시간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놓습니다."

글= 송영주 한국AI휴먼연구소 대표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으며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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