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석주원 기자 | 크래프톤이 올해 1분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체급이 달라졌음을 증명했다. 대표 IP인 ‘PUBG: 배틀그라운드(이하 펍지)’가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이어가며 단일 IP로만 분기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가운데 일본 ADK 그룹 인수와 쏘카와의 인공지능(AI) 합작법인 설립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크래프톤은 4일 실적발표를 통해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3714억원, 영업이익 561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56.9%, 영업이익은 22.8% 급증한 수치다.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연간 총 영업이익(1조544억원)의 53%에 달하는 규모로 시장 전망치인 4000억원 초중반대를 크게 상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시현했다.
실적의 일등 공신은 이번에도 펍지 IP였다. 펍지 프랜차이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 성장하며 처음으로 분기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플랫폼별로는 PC 3639억원, 모바일 7027억원, 콘솔 138억원, 기타 29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PC 부문은 9주년 기념 애스턴마틴 협업 콘텐츠 재출시와 신규 맵·모드 업데이트, 밸런스 조정, 스킨·총기 등 라이브 서비스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 모바일 부문 역시 중국 ‘화평정영(펍지 모바일)’이 프로모션 이후 일평균 매출이 회복됐고 ‘펍지 모바일 인도(BGMI)’의 결제 이용자 수가 17% 증가하는 등 글로벌 전역에서 견조한 트래픽과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 ADK 편입 효과…외연 확장 본격화
ADK 그룹 편입에 따른 효과도 이번 실적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기타 매출 2910억원 가운데 2769억 원이 ADK의 광고·콘텐츠 매출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게임 외 매출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연결 실적에서 차지하는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크래프톤의 ADK 인수를 단기 수익성보다는 ‘콘텐츠 플랫폼’ 전략을 뒷받침할 교두보로 보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 광고, 디지털 영상·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춘 ADK와 펍지·신작 IP의 시너지를 통해 게임과 광고·콘텐츠를 아우르는 팬덤·플랫폼 비즈니스로 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AI 퍼스트’ 전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자체 AI 모델 ‘Raon’을 게임별로 파인튜닝해 플레이 패턴을 학습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이용자와 함께 전장에 뛰어드는 동반자 캐릭터 CPC(Co-Playable Character) ‘펍지 Ally’를 개발 중이다. 연내 펍지 아케이드에서 베타 서비스가 이뤄질 예정으로 이용자 플레이 경험의 질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펍지와 같은 정교한 물리 엔진 기반 가상환경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피지컬 AI·로보틱스 영역에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관련 상표권 출원과 조직 정비를 진행하며 장기적으로는 게임·로보틱스·모빌리티를 잇는 새로운 성장 축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쏘카와 함께 1500억원 규모 자율주행 합작법인 ‘에이팩스모빌리티’에 참여하고 쏘카 유상증자에 650억원을 투자하는 등 발걸음을 넓히고 있다. 게임에서 비롯된 시뮬레이션·AI·데이터 역량을 모빌리티와 로보틱스에 접목하려는 시도로 단기 실적 기여보다는 중장기 성장 옵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다.
▲ “펍지를 플랫폼으로”…중장기 로드맵 제시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크래프톤은 “펍지를 단일 장르 게임이 아닌 UGC(이용자 제작 콘텐츠)와 여러 모드가 공존하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진화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배틀로얄, 아케이드, 소셜형 콘텐츠를 아우르는 ‘샌드박스 공간’으로 펍지를 확장하며 이용자 체류시간과 커뮤니티 결속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크래프톤은 5월 ‘페이데이’ IP 기반 신규 모드를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외부 IP와의 협업을 확대해 펍지 내 콘텐츠 볼륨과 다양성을 키워갈 계획이다. 개발자 도구와 에디터를 고도화해 이용자 제작 콘텐츠를 장려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펍지 안에 여러 게임과 경험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크래프톤은 현재 총 26개 신작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이 가운데 ‘서브노티카2’, ‘팰월드 모바일’, ‘NO LAW’ 등 12개는 향후 2년 내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성과를 내기 시작한 타이틀도 있다. 오픈월드 라이프 시뮬레이션 ‘인조이(inZOI)’와 스토리텔링 중심 IP ‘미메시스’는 지난해 앞서 해보기(얼리 액세스) 단계에서 각각 100만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하며 초기 유저풀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두 타이틀은 올해 정식 출시를 통해 장기 흥행을 위한 기반 다지기에 집중할 방침이다.
다만 증권가는 다수 신작의 상용화 시점과 흥행 규모가 여전히 불확실한 만큼 신작 라인업은 현재로서는 상승 여력을 열어두는 옵션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신작 성과가 가시화될 경우 펍지 의존도를 낮추며 밸류에이션 프리미엄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 자사주 소각과 배당…주주환원으로 신뢰 쌓기
크래프톤은 실적 성장과 함께 주주환원 정책도 강화하고 있다. 1분기에 2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취득하고 996억원을 배당한 데 이어 기존 보유분을 포함해 총 3362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완료했다. 2분기에도 1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추가 취득한 뒤 전량 소각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크래프톤은 지난해까지 주주환원에 가장 보수적인 기업이었지만 올해부터 호실적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시행하며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며 “게임 업종 내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주가 부양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1분기 실적 발표 직후 다음 거래일 크래프톤 주가는 8.87% 오른 28만8500원에 장을 마쳤고 장중 30만3500원까지 치솟으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연초부터 이어진 펍지 성장성 둔화 우려로 크래프톤 주가는 실적 대비 저평가 구간에 머물러 있었으나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로 밸류에이션 디레이팅이 빠르게 풀리고 있다는 것이 증권가의 공통된 진단이다.
다만 리스크 요인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매출 구조상 펍지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데다 26개에 이르는 신작 파이프라인 가운데 어느 정도가 실제 흥행과 프랜차이즈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모빌리티·로보틱스·피지컬 AI 등 신사업 역시 투자 단계에 머물러 있어 단기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1분기는 펍지 피크아웃 우려의 실질적 해소와 동시에 비게임 사업 편입, AI·모빌리티 확장을 통한 체질 개선의 출발점”이라며 “크래프톤이 2분기 이후에도 펍지 프랜차이즈 성장세를 이어가고 신작·신사업의 가시성을 높여나갈 수 있을지가 향후 주가 방향성을 가를 핵심 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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