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이 권력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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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권력이 될 때

노블레스 2026-05-06 10:00:00 신고

전시장 전경. Photo by Marc Domage. © JBE Books, Paris, 2026 and Les Abattoirs, Musée – Frac Occitanie Toulouse.

프랑스 남서부 도시 툴루즈, 가론 강변에 자리한 19세기 산업 건축을 현대미술관으로 리뉴얼한 레 자바투아(Les Abattoirs)에서 2026년 8월 23일까지 패션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 장-샤를 드 카스텔바작(Jean-Charles de Castelbajac)의 60여 년에 걸친 창작 세계를 집약적으로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상상력이 권력이 될 때(L’Imagination au Pouvoir)〉가 열린다. 패션을 매개로 미술, 디자인, 음악, 종교, 대중문화를 가로질러온 한 인물의 ‘아트 토털(art total)’적 실천을 현재진행형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전시는 약 900㎡ 규모의 공간에서 30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선보인다. 의상과 액세서리, 드로잉과 콜라주, 디자인 오브제와 설치까지 매체는 다양하지만, 그 모든 작품의 중심에는 언제나 ‘상상력’이라는 단어가 놓여 있다. 카스텔바작은 스스로를 ‘패션을 매개로 작업해온 예술가’라고 정의해왔고, 이번 전시는 그 말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자리다. 전시의 출발점은 1968년, 그가 자신의 기숙사 담요를 잘라 만든 첫 번째 코트다. 가난한 시절의 재료, 버려진 물성, 일상의 사물을 전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이후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상상력이 권력이 될 때〉 전시 디자인을 위한 습작. © Jean-Charles de Castelbajac.
전시장 전경. Photo by Marc Domage. © JBE Books, Paris, 2026 and Les Abattoirs, Musée – Frac Occitanie Toulouse.

걸레, 샤워 커튼, 거즈, 종이 상자, 프랑스 철도청 SNCF 자루에 이르기까지, ‘재료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선택은 동시대의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나 누보레알리슴(nouveau realisme)과 자연스럽게 공명했다. 옷은 장식이 아니라 보호막이자 집, 때로는 갑옷이 되며, 기능과 개념, 조형이 동시에 작동하는 조형물로 거듭났다. 전시는 이러한 초기 실험을 출발점으로, 카스텔바작의 작업을 8개의 주요 장으로 나누어 전개한다. 레 자바투아의 높은 천장에 설치한 대형 배너 구조물은 관람객을 맞이하는 서사적 프롤로그처럼 기능한다. 색면과 기호, 잘린 이미지들이 깃발처럼 매달린 이 설치 작품은 중세적 헤럴드리(heraldry)와 팝 컬처의 상징 체계를 동시에 호출하며, 카스텔바작 특유의 시각언어를 공간 전체로 확장시켜 관람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말과 감정(Mots Émoi)’ 섹션에서는 문학과 패션의 결합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1980년대 초부터 그는 옷에 직접 시와 문장을 쓰거나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기 시작했다. 장 콕토, 마르셀 프루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의 문장이 드레스의 주름과 함께 읽히며, 의상은 움직이는 페이지이자 낭독의 장이 된다.

전시장의 ‘말과 감정’ 섹션 전경. Photo by Marc Domage. © JBE Books, Paris, 2026 and Les Abattoirs, Musée – Frac Occitanie Toulouse.
콜라주와 드로잉 방식으로 완성한 설치 공간. Photo by Marc Domage. © JBE Books, Paris, 2026 and Les Abattoirs, Musée – Frac Occitanie Toulouse.

글자는 장식이 아니라 기억과 사유의 매개로 작동하고, 흑백의 절제된 화면은 관람객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또 다른 핵심 축은 ‘축적(accumulation)’이다. 장갑, 선글라스, 양말, 털 인형 같은 일상의 오브제를 반복적으로 덧붙인 코트와 재킷은 프랑스 조각가 아르망(Arman)의 조각 작품을 연상시키며, 소비사회에 대한 은유적 비평을 담아낸다. 1988년 처음 등장한 ‘테디 베어 코트’는 모피 산업에 대한 반응으로 출발했지만, 이후 팝 아이콘과 협업하며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이 섹션에서 의상은 입는 오브제가 아니라, 걸어 다니는 조각이자 사회적 발언으로 발전한다. 카스텔바작의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색이 아닐까. 빨강, 파랑, 노랑이라는 단순한 삼원색은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시각적 서명과도 같다. 이 색채는 팝아트와 스트리트 문화, 중세 문장학과 종교 의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1997년 파리 세계청년대회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위해 디자인한 전례복, 그리고 2024년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을 위해 제작한 의상은 신성성과 대중성, 전통과 동시대성을 동시에 포용하는 그의 예술적 태도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카스텔바작이 디자인한 아이스버그 의상을 입고 있는 앤디 워홀. 1982년 작품.

전시는 또한 수많은 협업의 기록을 통해 카스텔바작이 구축해온 네트워크를 조명한다. 키스 해링, 로베르 말라발, 신디 셔먼,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패션, 음악과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만남은 그의 작업을 끊임없이 모든 예술 분야에서 갱신해왔다. 그리고 후반부를 장식하는 콜라주와 드로잉 작품은 최근 수년간 더욱 두드러진 조형 실험을 보여준다. 자르고 붙이는 행위는 그에게 가장 직접적인 저항의 제스처이자 자유의 방식이었는데, 평면과 입체, 종이와 직물, 벽과 오브제를 넘나드는 이 작업은 패션과 미술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레 자바투아를 위해 새롭게 구성한 설치 공간은 관람객을 하나의 색채적 · 감각적 환경으로 끌어들이며 카스텔바작의 세계를 ‘보는 것’을 넘어 ‘경험하는 것’으로 전환시킨다. ‘상상력이 권력이 될 때’라는 전시 제목은 제도와 규범, 장르의 경계를 유쾌하게 교란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온 카스텔바작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는 그 궤적을 정리하는 동시에,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상상력은 실천이며,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것. 툴루즈에서 펼치는 그의 회고전은 오늘날 패션이 더 이상 산업의 언어에 머물지 않고, 동시대 예술의 한 방법론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발랄하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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