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Cover Story] 제도와 사람 사이를 건너는 일, 조세학자 박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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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_Cover Story] 제도와 사람 사이를 건너는 일, 조세학자 박훈을 만나다

이슈메이커 2026-05-06 09:35:5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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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오미경 기자]

제도와 사람 사이를 건너는 일, 조세학자 박훈을 만나다 

세금은 숫자로 기록되지만, 그 숫자는 일정한 기준과 판단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박훈 교수는 오래도록 그 과정을 들여다봐 온 국내의 권위 있는 조세 학자다. 그는 세금이란, 얼마를 걷느냐의 문제이기 전에, 그 판단이 얼마나 설명력을 갖느냐의 문제라고 말한다. 조세에 대한 결정은 그 이유가 납세자에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하고, 같은 상황에서는 결과 또한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세금은 단순한 재정 수단이 아니라, 제도와 사람 사이에서 신뢰가 형성되는 방식에 가깝다. 그리고 그 신뢰가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는지를 한국 사회 맥락에서 집요하게 탐구해온 시간은 그의 연구를 관통하는 질문으로 남아 있다. 

ⓒ박훈 교수
ⓒ박훈 교수

 

세법을 향한 이유, 그리고 시작된 질문
박훈 교수와 세법이라는 분야의 만남은 우연에 가까운 계기에서 출발했다. 그는 1994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법학을 전공하되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의미 있는 분야를 찾고 있었고, 마침 국세청에 재직 중이던 외삼촌의 권유로 세법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세법은 법학적 해석이 필요한 영역임에도 상대적으로 연구 기반이 두텁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 그는, 당시 노동법 중심이던 법학계의 연구 흐름에서 벗어나 오히려 가지 않아 낯설고 어려운 세법 연구에 끌렸다고 말한다. 

ⓒ박훈 교수
ⓒ박훈 교수

  서울대에서 학부와 석사, 박사 과정을 이어가며 조세법 연구 분야로 자신의 길을 굳힌 그는 이후 우리나라 법과대학에서 처음으로 세법 강의를 연 이태로 교수의 연구실에서 조교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세법을 익혔다. 이 시기를 거치며 세법을 계산의 기술이 아닌 해석과 판단이 요구되는 법학의 영역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또 다른 스승 이창희 교수에게서 해외 세법 연구 흐름을 접하며 시야를 넓혔다. 서로 다른 두 스승의 학문적 접근 방식을 경험하며 세법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더욱 입체적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그의 연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됐다. ‘동일한 규정이 상황에 따라 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그 차이를 만드는 해석의 지점은 어디인가?’라는 문제였다. 이 질문은 이후 그의 연구 전반을 이끄는 큰 축이 됐다. 

 

현장에서 확인한 제도의 얼굴
박 교수의 연구 방향이 전환점을 맞이한 건 국세청에서 납세자보호관으로 근무하던 시기였다. 그는 개방직 국장으로서 세무 행정의 최전선에 참여하며 이론으로 다뤄온 세법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마주했다. 

 

  그중 당시 세무조사 기간 연장을 둘러싼 판단을 했던 경험은 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납세자 보호의 취지에서 납세자가 신청하면 기간 연장을 허용하고, 과세관청이 신청하면 제한하는 원칙을 유지했지만, 뜻밖에도 현장에서 그 기준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무조사 부서가 원칙을 역이용해 납세자 스스로 연장을 신청하도록 유도하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결과적으로 납세자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무엇이 납세자를 보호하는가였다”고 회상한다. “법 해석뿐 아니라, 그 해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함을 현장에서 배웠다”며 그렇게 실질적인 필요를 세법 판단의 기준으로 앞세우게 됐다고 말한다.

박훈 교수는 국세청 납세자보호관을 비롯한 다양한 정책 현장에서 활동하며, 조세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경험했다. 그 위에서 제도의 공공성과 신뢰 가치를 함께 고민했다. 첫 번째 사진은 납세자보호관 임명식, 두 번째 사진은 김부겸 前 행안부 장관과 함께 한 모습. ⓒ박훈 교수
박훈 교수는 국세청 납세자보호관을 비롯한 다양한 정책 현장에서 활동하며, 조세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경험했다. 그 위에서 제도의 공공성과 신뢰 가치를 함께 고민했다. 첫 번째 사진은 납세자보호관 임명식, 두 번째 사진은 김부겸 前 행안부 장관과 함께 한 모습. ⓒ박훈 교수

 

  또한, 사업자 등록 제도를 정착시키는 단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사업자들을 위해 전국 어디서나 사업자 등록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설계했지만, 세무사 사무소가 밀집된 특정 지역으로 신청이 몰리면서 납세자와 세무대리인들에게 예상치 못한 불편이 발생했다. 제도는 이론이나 관념에 기반한 의도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 순간이었다. 깨달음을 동력 삼아 이후 그는 조세심판원 심판관, 기획재정부 및 행정안전부의 세제 관련 위원회 참여 등 다양한 정책적 역할로 한국 세법의 설계와 운용에 실질적인 힘을 보탰고, 한국세법학회 회장 역임에 이어 현재 한국국제조세협회 이사장을 맡아 학문과 정책의 가교 역할도 잇고 있다. 내부 공무원들이 구조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제도의 실제 작동 지점에 대해 외부 전문가로서 계속 소신을 밝힘으로써 그는 더 넓은 연구자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학문으로 돌아와 이어진 질문과 실천 
현장에서의 경험을 안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이후에도 박훈 교수의 문제의식은 이어졌다. 박 교수는 제도를 단순한 법체계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조정되고 해석되는 하나의 구조로 바라본다. 같은 법 조항이라도 적용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설계와 운용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러한 시선은 대학 행정에서도 이어진다. 서울시립대학교 입학처장과 학생처장, 교무처장 등을 거쳐 현재 대외협력부총장을 맡은 박 교수는 제도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과정을 다시금 경험하고 있다. 특히 2022년 12월 서울시립대에 유례없는 서울시 지원금 100억 원 삭감 위기가 발생했는데, 그는 새로 선출된 총장을 비롯한 여러 보직자와 함께 수개월에 걸쳐 관계자들을 설득하며 2023년 7월 삭감액을 훨씬 넘어서는 161억 원 이상의 지원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대학 행정이 곧 학교 존립과 직결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절감하게 해주었고, 정책은 결국 사람을 통해 움직인다는 점을 되새겨준 큰 자산이 됐다. ‘설계된 의도와 다르게 움직일 수도 있는 제도, 그렇다면 그 간극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그의 고민은 이때 더욱 확실해졌다. 

그는 서울시립대학교 입학처장, 교무처장 등 여러 보직을 거치고, 해외봉사단 등 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향한 시선과 실천의 의미를 확장해 왔다. ⓒ박훈 교수
그는 서울시립대학교 입학처장, 교무처장 등 여러 보직을 거치고, 해외봉사단 등 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향한 시선과 실천의 의미를 확장해 왔다. ⓒ박훈 교수

 

  그래서일까. 상속세를 오랜 시간 연구해 온 조세 전문가로서 박 교수는 현재의 과세 구조 역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유산 전체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현행 방식은 변화한 자산 구조와 시장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교수는 “상속세의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전환, 나아가 소득세 체계 안에서의 재구성 가능성까지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며 단순 세율 조정이 아닌, 근본적인 상속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동시에 그는 상속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속을 무조건 가족에게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상속 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생각해 보게 할 필요가 있어요. 소득 격차, 자산 격차가 커지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상속을 사회에 나눔의 계기로 삼게 하는 훈훈한 세상을 만드는 측면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법 제도가 이러한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박훈 교수
ⓒ박훈 교수

 

  현재 유산의 일부를 공익법인에 기부할 경우 추가적인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박 교수는 법안 통과를 발판으로 사회 전체의 나눔 문화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길 기대했다.  

 

  한편, 박훈 교수의 이런 문제의식은 최근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는 뜻깊은 실천으로 이어지며 학계와 현장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그는 지난 4월 초, (재)서울시립대학교 발전기금에 최초로 유산 기부 약정을 체결했다. 

 

  “제가 지금껏 이론과 실무의 조화를 말해왔다면, 그 생각을 스스로 실천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자의 주장은 삶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진정성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에게 이번 유산 기부 선택은 어떤 결론이라기보다 하나의 기준을 만든 일에 가깝다. ’세금이란 제도가 실제의 삶에서 납득되기 위해 어떤 설명력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그가 오래도록 붙들어온 질문을 자신의 삶 속에서 다시 묻고, 스스로 그 답을 감당해 보려는 의미 있는 시도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신앙을 기반으로 나눔과 실천의 가치를 실천하며, 학자로서의 진정성을 삶 속에서도 잇고 있다. 사진은 CTS기독교TV 출연 당시. ⓒ박훈 교수
박 교수는 신앙을 기반으로 나눔과 실천의 가치를 실천하며, 학자로서의 진정성을 삶 속에서도 잇고 있다. 사진은 CTS기독교TV 출연 당시. ⓒ박훈 교수

 

설명 가능한 제도, 그 너머의 사람을 본다
박훈 교수가 조세를 바라보는 기준은 분명하다. 설명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그는 조세 제도의 정당성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의 설득력에서 나온다고 본다. 

 

  “납세자는 결과를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닌, 그 이유를 이해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도는 결과는 물론 과정까지 설명될 수 있어야 하고, 같은 조건에서는 일관된 결과 예측이 가능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은 교육자로서의 목소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지식의 전달을 넘어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강조한다. “공공성과 전문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조세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고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고, 정확성과 책임 역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훈 교수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조세를 연구해 온 시간의 무게가 결국 어디에 놓여 있는지 또렷해진다. 법과 제도를 다루지만, 그가 반복해서 짚는 지점은 언제나 사람이다.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보다,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작동하는가에 그는 더 오래 머문다. 세법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설명이 결국 사람에게 어떻게 닿는지를 끝까지 확인하려 한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그 사이에 서 있다. 제도와 사람을 잇는 기준의 자리에서.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할 당시 ⓒ박훈 교수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할 당시 ⓒ박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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