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후반기 때 일인데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의 사적인 만남에서 부동산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집권 여당의 위기감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을 때였다.
기자가 먼저 "사실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전세계적인 저금리 탓으로 부동산이 급등한 것인데 현 정부가 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하니 고위관계자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반색을 하더니 "그렇지요. 저금리 시국이 마무리되면 비정상적인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찾을텐데, 지금 상황은 마치 우리가 정책을 잘 못한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며칠 뒤 청와대발 기사로 "작금의 집값 급등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저금리 추세로 인한 전세계적인 현상이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라는 멘트가 나왔다. 그러자 당시 야당과 정권 반대세력 사이에서는 "공급부재 등 정책 실패를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뭉개고 있다"는 식의 맹공이 이어지고 여론도 악화되자 저금리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주장 모두 틀리지 않다. 문제는 어느 한 쪽만으로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저금리 추세가 주요 국가들의 부동산 값을 급등시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당시 미국 기준금리는 1.75%였던 것이 2020년에는 0~0.25% 수준까지 떨어졌고 유럽 역시 사실상 제로금리 정책에 따라 양적완화 추세가 확대되고 있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전반적으로 대규모 통화완화와 유동성 공급 확대로 단순 금리 인하를 넘어 "돈이 넘치는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2019년 말 1.25%였던 기준금리가 2020년 5월에는 0.5%까지 밀려나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게 된다.
코로나19 기간 전세계적으로 기준금리가 제로 수준까지 낮아지면서 유동성이 급증했고, 그 결과 OECD 기준 주택가격은 2021년 한 해에만 12.4% 상승했다. 한국 역시 2019년 대비 약 20% 상승하며 일본의 10배에 달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소득 증가율이 5%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자산가격 상승이 실물경제를 크게 앞질렀다는 점이 확인된다.
자산 구성 변화를 보면 부동산 쏠림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54.3%였던 부동산 비중이 2021년에는 59%까지 늘어난 것이다. 금융자산 비중이 감소하고 "돈이 부동산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금리만으로 부동산 시장을 설명할 수 있을까. 부동산 가격은 금리의 함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제성장률의 함수이기도 하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 시기 서울 아파트 가격이 두 배 이상 상승했던 배경에는 연평균 4~5%에 달하는 높은 경제성장과 소득 증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금리는 3~5% 수준으로 결코 낮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상승한 것은, 실수요 기반이 확대된 가운데 수도권 공급 부족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 시기의 초저금리 유동성 장세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승 메커니즘이었다. 즉 부동산 상승은 언제나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금리·성장·공급이 맞물린 결과물로 봐야 한다.
◇금리인상의 파고와 증시·부동산 '공동의 그릇'이 마주한 리스크
최근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가 금리인상 가능성에 못을 박았다.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고 성장률도 크게 나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결론적으로 경제가 살아나고 있으니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금리인상이 유동성을 조이는 칼날이 되어 증시와 부동산 모두에 강력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다. 일각에서는 증시 활성화를 통해 자금을 부동산에서 금융시장으로 유도하자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두 시장은 같은 유동성을 공유하는 '공동의 그릇'이었다. 2000년대 중반 대세 상승기와 코로나19 시기 모두 주식과 부동산은 동시에 폭등했다.
과거 데이터를 보면 증시와 부동산은 생각보다 강하게 함께 움직여 왔다. 최근 10~30년 데이터를 보면 증시 활황은 한국·미국·중국·일본 모두에서 부동산시장과 강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여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국 역시 코스피와 주택가격은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왔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반복됐다. 2000년대 중반, 그리고 코로나19 시기 모두 유동성이 확대되자 주식과 부동산이 동시에 상승했다. 이는 두 시장이 경쟁 관계라기보다, 같은 유동성을 공유하는 '공동의 그릇'에 가깝다는 점을 시사한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증시는 이른바 대세 상승기에 돌입했다. 중국 특수와 글로벌 경기 호황으로 2004년 말 약 895포인트였던 코스피가 2007년 10월에는 2064포인트를 돌파해 약 130%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약 40% 이상 폭등하면서 자산시장 동반 상승을 시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동성 파티 때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였다. 제로 금리에 가까운 통화 완화 정책으로 주식과 부동산이 동시 폭등한 것이다. 코스피는 2020년 3월 1400대 저점에서 급등하기 시작해 2021년 7월에는 3305포인트까지 내달려 약 130% 상승했는데 KB부동산 통계 기준으로 보면 2020~2021년 전국 주택가격은 연간 15~20%가량 상승하며 역대급 불장을 기록했었다.
◇부동산 거품을 제거한다고 증시에 과도한 거품을 일으키는 것도 경계해야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금리인상은 유동성을 조이는 요인이지만, 동시에 경기가 버틸 경우 자산가격의 하방을 지지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자산시장이 무조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는 있다.
이 지점에서 최근의 정책 논쟁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금리변수를 뛰어넘는 증시 활성화를 통해 부동산시장은 무너지더라도 증시는 지킬 수 있다는 낙관론도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앞서 언급한 역사적 추이를 따져보면 물가가 상승압력을 받는 상황에서도 경기가 좋아지면 금리 수준이 높아도 증시와 부동산시장 모두 상승 사이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권 시절 우리는 이미 그같은 상황을 경험했다.
정부는 증시를 살리면서 부동산은 잡겠다고 하지만 역사적 경험을 보면 그같은 정책조합이 난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 데이터는 증시와 부동산의 강한 동조화를 보여준다. 때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두 시장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안정'을 어떻게 도모하느냐에 있다.
부동산 시장이 지나친 침체기에 접어드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자산 가치가 급락하면 집을 사려는 심리가 위축되고, 이는 전세 수요 급증과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진다.
최근 가속화되는 '월세화 추세'가 대표적이다. 매매시장이 얼어붙을수록 집 구매를 포기한 서민들은 높은 월세 부담이라는 실질적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KB부동산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까지만 해도 수도권 월세가구 비중은 54%에 불과했지만 올해 1~2월 누적으로 수도권의 월세 비중은 67.3%, 비수도권은 70.2%까지 높아졌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GDP(국내총생산)의 5~6%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건설업이 망가지면 경제성장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는 '무조건적인 가격 하락'이 아니라, 급격한 변동성을 제어하는 연착륙(soft-landing)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향후 자산시장의 이상적인 모습은 증시와 부동산의 '맹목적 동조'가 아닌 '선택적 분리'다. 경기가 회복될 때 증시는 기업의 이익 성장을 반영하며 활발하게 오르되, 부동산은 가계의 소득 수준과 공급 물량에 맞춰 완만하게 움직이는 구조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성장의 내용'이 중요하다. 반도체 등 특정 업종에만 성장의 과실이 집중되는 불균형 성장이 지속된다면, 자산시장은 다시금 소수의 핵심 지역 부동산과 우량주로만 자금이 쏠리는 양극화를 반복할 것이다.
결국 정책의 본질은 부동산을 적대시하여 억누르는 것에 있지 않다. 부동산은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노후 대책이자,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인 실물 자산이다. 진정한 자산시장의 안정화는 부동산 시장의 기초 체력을 유지하면서도, 그곳에만 쏠려 있던 과잉 유동성이 기업의 성장과 혁신이 일어나는 증시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끔 하는 '자본의 물길 전환'에 있다.
증시가 활성화되어 기업 가치가 제값을 받고 그 결실이 주주들에게 공정하게 분배될 때, 우리 국민은 더 이상 '내 집'에만 노후를 걸지 않아도 되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갖게 될 것이다.
문제는 증시에 임하는 최근의 투자 행태를 보았을 때 증시가 무한궤도처럼 상승장만 연출할 수 있을지 의심이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상위 10개 증권사의 연령대별 신용융자 잔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용융자 잔액은 약 27조2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50대 이상의 신용융자 잔액이 절반 이상(62.3%)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은퇴 자금이 자산에 저당 잡힌 상황에서 과도한 물가상승으로 금리인상이 본격화되거나 어디선가 거품이 터져 증시는 물론 부동산시장까지 도미노식 투매와 가계부채 부실화라는 치명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 있을까? 부동산시장에 낀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증시에 거품을 얹는 정책 조합은 누가 보아도 위험천만하다.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과제는 자산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실물과 금융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국민 전체의 부를 건강하게 키워낼 선순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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