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양구의 순백’에 홀리다…'양구 백토마을 공예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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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물 건너 ‘양구의 순백’에 홀리다…'양구 백토마을 공예창작스튜디오'

더리더 2026-05-06 09:25: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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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지역을 택하다]외국 작가까지 창작스튜디오 입주, ‘지역 문화 거점’으로 물레질


강원 양구군 시내에서 약 20㎞ 북쪽에 있는 방산면은 접경지역 특유의 고요함이 감도는 곳이다. 지난 17일에 찾은 양구 백토마을 공예창작스튜디오 역시 조용했지만, 그 속에서는 활력이 흐르고 있었다. 군부대가 떠난 부지에 새롭게 조성된 이곳에서는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온 작가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군 인구는 2만368명으로 도내 17개 시·군 가운데 가장 적다. 여기에 2018년 발표된 국방개혁 2.0의 영향으로 군에 주둔하던 제2보병사단이 해체되면서 지역이 체감한 인구 감소는 더 컸다. 인구와 생활기반이 함께 줄어드는 상황에서 군은 지역 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고 그 방안 중 하나가 ‘백자’였다.

양구는 조선백자의 시원지로 알려져 있다. 군은 이러한 역사·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양구백토를 기반으로 한 도예 창작 거점 운영에 나서고 있다. 양구백자박물관이 방산면 일대에 조성한 공예창작스튜디오는 국내외 작가에게 작업공간과 숙소를 제공하는 레지던시다. 지역 자원을 창작과 연결하고, 전시와 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마련됐다.

군은 2022년부터 시설 조성과 운영 기반을 단계적으로 구축했다. 이후 2025년 첫 입주작가를 선발하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현재는 국내외 작가 6명이 입주해 작업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경기·부산 등 여러 지역 출신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고, 해외 작가들도 함께 머물고 있다.

양구백자박물관은 사업 총괄부터 △입주작가 공모와 선정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 △전시와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최관순 양구백자박물관 학예사는 “청년 예술가에게는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제공하고, 지역에는 문화예술 확산과 관광 자원화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공간은 도자 작업 특성에 맞춰 구성됐다. 제주식·북한식·호주식 등 다양한 장작가마를 비롯해 여러 소성 시설과 작업 장비를 갖췄다. 성형과 건조, 소성 등 작업 공정에 맞춰 동선도 설계했다. 최 학예사는 “양구백토를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과 산업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었다”며 “작가들이 실제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공예창작스튜디오는 공간 제공에만 머물지 않는다. 입주작가들은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전시와 교육, 체험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주민과의 교류 역시 중요한 운영 방향 가운데 하나다. 최 학예사는 “외부 작가 유입을 통해 문화 다양성을 확보하고, 지역 문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며 “앞으로도 미니 갤러리 같은 공간을 조성해 작가와 관람객의 접점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시를 벗어나 양구에서 찾은 창작의 방향
입주작가 구다영 작가(27)는 이곳을 선택한 이유로 도자 작업에 필요한 환경을 꼽았다. 구 작가는 도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를 시도하는 미술작가다. 도자 오브제와 도자 도판 위에 직접 촬영한 사진 이미지를 입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인간과 비슷한 점이 많은 개미를 도자로 제작하며, 이를 통해 인간 사회를 은유하고 표현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구 작가는 공예창작스튜디오에 지원한 배경에 대해 “졸업 후 개인 작업실을 열기에는 도자에 필요한 설비를 혼자 준비하기가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웠다”며 “마침 학창 시절부터 종종 양구를 소개해주던 선생님이 작가 모집 공고를 알려줘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스튜디오를 선택한 배경에는 창작 환경뿐 아니라 작가 간 교류도 중요한 이유였다. 구 작가는 “지금까지 학교 안에서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며 작업해왔다”며 “혼자 작업하면서 다른 작가들과 소통이 끊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곳 스튜디오는 작업 공간이면서 다른 작가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수도권을 벗어날 생각이 없었던 구 작가는 “양구는 7년 전부터 장작가마 소성이나 교류전 때문에 꾸준히 방문했던 곳”이라며 “그때부터 언젠가 이곳에 입주해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도자에 필요한 설비가 이곳만큼 전문적으로 갖춰진 스튜디오가 국내에 많지 않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였다.
구 작가는 작업 환경에 대한 만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보관할 선반과 이동 수레, 수도시설, 가마시설 등 창작에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져 있다”며 “청년작가 개인이 이런 설비를 모두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설비뿐 아니라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도 중요하다”며 “이곳은 자연이 보이고 개인 공간도 넓어 작업에 집중하기 좋다”고 말했다.

양구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구 작가는 “생각했던 것보다 평화롭고 더 한적하고 조용하다”며 “장을 보려면 30분 정도 운전해서 나가야 하고, 자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백토마을의 조경과 산책로가 잘돼 있어 산책이 취미인 자신에게는 좋은 환경”이라며 “입주한 뒤에는 근처 주민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가끔 식재료를 건네주셔서 입주작가들과 함께 요리해 먹는 경험도 했다”고 덧붙였다.

양구에서의 체류 경험은 구 작가의 작업 방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의 주제가 전보다 더 명료해졌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며 “예상했던 것보다 양구라는 지역에 애틋함이 생겨 오히려 나중에 이곳을 떠날 때가 걱정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접경지에서의 경험이 작업으로…양구에서 확장된 작품 세계
대만 출신 조유주(趙宥筑) 작가(30)는 현재 양구백자박물관이 제공하는 양구 백토와 밝은색 조형토를 사용해 도자 조각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 중심에 ‘거주’라는 주제가 있다고 소개했다. 집과 귀속감,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감정을 도자의 질감과 조형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그가 양구에 오게 된 배경에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조 작가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당장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땅치 않아 창작을 잠시 멈춰야 했다”며 “집안일을 도우며 개인 작업실을 준비했지만 몇 달간 흙을 만지지 못하는 시간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입주작가 기회를 계속 찾던 중 양구에 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양구를 선택한 이유로는 한국 도자 문화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는 “대학원 시절 한국 도예가들이 스튜디오를 방문하거나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 도자 작업에 관심이 생겼다”며 “오랜 도자 역사를 가진 양구에서 해외 작가를 모집한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또 “대만 출신으로서 지정학적 긴장이 삶의 큰 화두였던 만큼, 북한과 가까운 양구에 머무는 경험이 자신의 생애 감각을 돌아보게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 작가가 양구에서 보낸 지난 몇 달 동안 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과 양구의 군사적 환경은 그의 작업 주제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기존 작업에 꽃봉오리와 치아, 가시의 이미지를 더하게 됐다”며 “평화와 희망, 방어의 감각이 공존하는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양구의 재료에 대해서도 인상 깊게 말했다. 그는 “양구 백토는 연보랏빛이나 차가운 톤의 흰색이 돌아 우아한 느낌이 있다”며 “소성 뒤 샌딩 과정을 거치면 부드럽고 순수한 질감이 살아나는데, 이런 특성이 자신의 작업 주제와도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작업 환경에 대해서는 이전 대학원 스튜디오와의 차이도 짚었다. 그는 “대만 대학원 작업실은 반개방형 공간이라 작가들끼리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해야 했지만 개인 공간은 좁았다”며 “반면 양구 공예창작스튜디오는 신축 건물이라 쾌적하고 넓고, 개인 공간과 프라이버시가 충분히 보장된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어 “박물관의 지원과 야외 공간이 있어 작업에 집중하기 편하다”고도 덧붙였다.

양구 생활에도 익숙해졌다. 조 작가는 “대도시보다 조용한 환경을 선호하는 편이라 양구 생활이 오히려 사유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박물관 관계자들, 김치와 간식을 챙겨주는 마을 주민들 덕분에 낯선 지역에서도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와 관람객 잇는 공간으로…양구백자박물관의 구상
양구백자박물관은 앞으로도 공예창작스튜디오를 지역 문화 거점으로 키워간다는 계획이다. 국내외 작가 유입을 넓히고 전시와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과의 접점을 계속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국내외 역량 있는 작가들을 초청해 창작 공간과 박물관 자체의 경쟁력을 함께 키워나갈 방침이다. 이를 통해 양구백자박물관이 전시와 관광, 지역 홍보로 이어지는 구조를 장기적으로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두섭 양구백자박물관 관장은 스튜디오 운영 방향과 관련해 “도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먼저 찾아오고, 그 관심이 작품과 작가, 공간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오픈스튜디오와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더해 스튜디오를 단기 체류 공간에 그치지 않고 작가와 관람객이 교류할 수 있는 거점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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