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어린이날 어린 친구들도 많이 올 텐데 험한 꼴 보이면 안 되는데……”
올해 1월 태국 치앙마이 전지훈련에서 만난 이영민 감독은 5월 5일에 부천FC1995와 제주SK 경기가 배정된 것에 대해 농담 어린 걱정을 보였다. 부천 팬들이 제주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올해 K리그1 일정이 발표됐을 때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어린이날인 5월 5일 경기 배정이었다. 오후 2시에는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부천과 제주의 경기가, 오후 7시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C서울과 FC안양의 경기가 있었다. 연고지와 관련해 얽힌 팀들의 맞대결, 이른바 ‘연고지 더비’ 2경기가 어린이날에 열리는 것이었다.
흥행을 고려한다면 지당한 선택이다. 어린이날은 가족 단위 관중을 모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다. 5월 황금 연휴의 마지막 날이어서 팬들도 경기장을 찾는 데 부담이 덜하다.
실제로 이 선택은 흥행에 있어 좋은 판단이었다. 이날 부천과 제주 경기에는 총 8,183명이 찾아왔고, 이 중 제주 원정팬은 478명이었다. 올 시즌 가장 많은 제주 원정팬 숫자였다. 부천 홈팬은 7,705명이었던 셈인데, 부천 홈 개막전이었던 대전하나시티즌전 8,476명 이후 두 번째로 많은 홈팬이 부천종합운동장을 찾았다.
서울과 안양 경기는 더욱 흥행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35,729명이 찾아와 올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안양 원정팬들도 3,848명이 상암벌을 찾아와 흥행에 일조했다.
그럼에도 어린이날에 연고지 더비가 열리는 것에 우려의 시선이 많았던 이유는 어린이날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어린이날은 구단 입장에서 장기적인 고객이 될 어린이팬을 모집할 최적의 기회다. 그래서 어린이날에는 가족 단위 관중을 겨냥한 이벤트가 많다. 일례로 이날 서울은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포켓몬’과 협업을 통해 북측광장에 포켓몬 월드를 조성하고, 하프타임에 피카츄 퍼레이드를 하는 등 어린이팬 모객에 열성을 다했다.
연고지 더비를 어린이날에 개최한 건 양날의 검이 됐다. 모든 더비가 그렇지만, 연고지 더비는 특히나 적어도 한 구단의 무조건적인 악감정을 전제한 라이벌리다. 그래서 다른 경기보다 격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두 경기에서도 눈살 찌푸려지는 상황이 연출됐다. 연고 이전을 당한 입장인 부천과 안양은 상대 팀인 제주와 서울을 멸칭으로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부천의 경우 후반 시작 전 김동준이 후반 시작 전 부천 응원석을 향해 인사하자 오히려 야유를 보내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김동준이 왜 그러냐는 제스처를 취하자 부천 팬들의 욕설이 돌아왔다. 후반전 내내 부천 팬들은 김동준이 공을 만질 때마다, 심지어 부상으로 쓰러졌을 때도 야유를 보냈다. 관련해 김동준은 “어린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라며 부천의 응원 문화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과 안양 경기에서는 팬들보다 선수의 행동이 문제가 됐다. 2007년생 김강은 후반 35분 안데르손을 넘어뜨리는 반칙을 범한 뒤 빠르게 프리킥을 처리하려는 최준을 막아세우며 충돌했다. 양 팀이 두 선수를 말리기 위해 뒤엉킨 가운데 김강은 자신을 말리는 부심을 뿌리치고 서울 팬들을 향해 양 엄지를 내리는 도발 행위를 했다. 이 행동을 본 박성훈이 크게 분노하며 김강에게 달려들려 했고, 다시 양 팀 선수들이 뒤엉키는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김강은 다이렉트 퇴장을 당했다. 어린 선수의 과한 열정이 경기 중 집단 충돌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어린이날에 연고지 더비를 배정한 걸 흥행만 고려한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린이 팬들이 축구에 혹은 특정 팀에 입문하는 이유는 팀의 경기력이나 어떻게든 승리하는 모습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기장 자체가 주는 분위기도 중요한 몫을 한다. 수원삼성 특유의 응원 문화가 새로운 팬을 유입시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안양 또한 좋은 응원 문화를 바탕으로 팬층을 확대하는 데 성공한 케이스다.
연고지 더비에서는 양 팀 팬들이 평소보다 더욱 열띤 응원을 한다. 부천과 제주 경기에서 부천 팬들은 응원가와 구호를 통해 경기장 분위기를 달궜고, 제주 팬들도 일당백 응원전을 펼쳤다. 더 많은 관중이 보인 서울과 안양 경기는 일견 웅장하기까지 했다. 서울 팬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안양 팬들도 서울에 뒤지지 않는 화력을 발휘했다.
어린이날에 연고지 더비를 배정한 건 잘못이 아니다. 어린이날에 아무리 격렬한 더비가 열리더라도 그것이 성숙한 응원 문화와 경기로 이어진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많은 관중이 모인 경기장의 분위기가 어린이 팬을 유입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날 연고지 더비에서 좋지 않은 장면이 나온 건 사실이지만, 그걸 연고지 더비만의 특징으로 보기는 어렵다. 핵심은 어린이날에 연고지 더비를 배정하더라도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는 건강한 문화를 K리그에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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