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경계한 중용의 신사…진영 초월 족적 남긴 이홍구 前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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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경계한 중용의 신사…진영 초월 족적 남긴 이홍구 前총리

연합뉴스 2026-05-05 15:18:4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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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정책 기틀 마련부터 외환위기 수습까지 3개 정부 걸쳐 역할

이홍구 전 국무총리 별세 이홍구 전 국무총리 별세

(서울=연합뉴스) 학계와 정치계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했던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5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1934년 태어나 경기고ㆍ서울대ㆍ미국 에모리대ㆍ예일대 등을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봉직하며 학술지와 신문에 당대 정치를 조명한 논문과 논설로 주목받았다. 학계에 몸담았던 고인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주영대사를 지냈다. 고인은 김영삼 정부 시절 통일원 장관 겸 부총리, 국무총리로 기용됐으며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대표의원으로도 활약했다. 사진은 2010년 9월 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마드리드 클럽 서울 원로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 하는 당시 이홍구 총리. 2026.5.5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중용의 사람. 그는 언제나 극단을 불신해왔다."

5일 별세한 이홍구 전 국무총리에 대해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는 2023년 발간된 '이홍구 평전'에서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이 책에서 고인에 대해 "끊임없는 사색과 토론의 생활 속에서, 스스로 게을리하지 않는 엄격한 자기 훈련 속에서 중용의 길은 찾아진다"며 "그의 또 하나의 특징인 균형 감각은 그러한 생활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이는 합리적 성향을 기반으로 '영국 신사'로 불리며 진영을 넘어 두루 중용됐던 고인을 잘 나타내주는 구절이다.

고인은 이런 균형 감각을 토대로 박정희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 학계와 정치계를 넘나들며 곳곳에 족적을 남겼다.

1934년 경기도 개성군(현 개성시)에서 태어난 이 전 총리는 성장기를 서울의 전형적 유가(儒家)에서 보냈다.

경기고·서울대·미국 에모리대·예일대 등을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봉직했던 고인은 학술지와 신문에 당대 정치를 조명한 논설을 써 '한국 정치학계의 간판스타'로 주목받았다.

유신체제가 붕괴한 후에는 토론회 진행자로 나서 대중의 관심을 받았는데, 당대 유력 정치인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쟁 구도 속에서 의원내각제를 주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중성을 겸비한 학자로 활동하던 고인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국토통일원 장관에 임명되면서 공직에 입문했다.

고인은 이때 노태우 정부의 통일 방안인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전향적으로 성안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주·평화·민주를 원칙으로 남북을 '민족공동체'로 점진적 통합해나가는 방안으로, 야당 지도자들과도 협의를 거쳐 만든 덕분에 오랜 세월 우리 통일·대북 정책의 근간이 됐다.

고인은 김영삼 정부 때에도 부총리급인 통일원 장관으로 다시 임명됐다.

이후 국무총리로 발탁, 세계화를 진두지휘했으며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대표로도 활약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주영 대사로 활동했었던 고인은 김대중 정부 출범 뒤에는 다시 주미대사로 중용됐다.

한미관계 안정과 국제 신뢰 회복이 절박했던 시기에 대미 인맥과 총리 경험이 진영을 넘어 큰 자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고인은 2002년 월드컵 유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

고인은 공직 생활을 마친 후에도 서울국제포럼, 언론 고문, 유민문화재단, 아산재단 등 여러 사회 분야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분야의 식견을 지닌 원로로서 우리 사회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1994년 총리 취임사는 공직자 등 사회 지도층의 역할에 대한 고인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는 당시 "우리의 시야를 더 높이, 더 멀리 돌려 민족사의 미래를 앞장서 개척해 나감으로써 역사와 국민 앞에 떳떳한 공직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날 애도의 메시지를 내고 고인을 추모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해철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학자이자 정치인, 외교관이었던 고인은 한국 정치가 지향해야 할 합리와 중용, 그리고 통합의 가치를 몸소 실천해 온 원로였다"며 "학계와 정계를 아우르며 한평생을 국가 발전과 통일·외교 정책에 헌신하신 이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합리적 보수의 상징이자 학자와 행정가, 정치인으로서 현대사의 고비마다 이정표를 세우셨던 이 전 총리께서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궤적을 남기신 거목이자, 시대의 큰 어른이셨다"라며 "온화한 성품과 흔들림 없는 애국심은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선명하게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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