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의 5월 청구서
웃지 못하는 아이들 기념일
AI 생성 이미지.
[포인트경제] 어린이날 선물 비용이 10년 새 두 배로 치솟았다. 선물에 외식, 놀이공원까지 더하면 하루 지출이 수십만원에 달하는 구조 속에서 부모의 지갑 사정이 아이들 사이에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있다.
올해 어린이날 선물 예상 지출액은 평균 9만 5000원으로 집계됐다. 영어교육기업 윤선생이 지난달 16일부터 21일까지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학부모 6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다. 2016년 같은 조사의 평균 4만 9000원과 비교하면 10년 새 약 1.9배 오른 수준으로 일반 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돈다. 5년 전인 2021년 평균 5만 8000원과 비교해도 1.6배 이상 늘었다. 응답자의 67.2%는 부모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며 조부모나 친인척으로부터 선물 구입 비용을 지원받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 아이 하나에 온가족 지갑 열려
저출산 시대, 아이 한 명을 위해 부모·조부모·친인척 등 여러 가족이 동시에 지갑을 여는 이른바 ‘에잇 포켓(Eight Pocket, 8개의 주머니)’ 현상이 어린이날 선물 시장을 달구고 있다. 부모가 실용성을, 조부모가 상징성과 차별성을 담당하는 소비 분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선물 목록의 외연은 넓어졌지만 단가도 함께 치솟았다. 시장조사기관 아이마크(IMARC)와 스피리컬 인사이트(Spherical Insights)는 한국 장난감 시장 규모를 2024년 기준 약 20~22억 달러로 추정하며 2033~2035년까지 연평균 4% 안팎 성장을 전망했다. 아동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완구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는 구조다. 아이는 줄어도 1인당 지출은 늘어나는 ‘집중 소비’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는 것이다.
◆ 장난감 대신 주식, 설렘 실종
선물의 성격 자체도 바뀌었다. 같은 조사에서 한때 어린이날 선물의 대명사였던 완구류는 2위로 밀려났고, 현금·주식 등 금융자산(30.8%)이 게임기기(30.0%)를 앞질렀다. 표면적으로는 ‘조기 경제 교육’이라 포장되지만 그 이면엔 장난감조차 선뜻 사 주기 어려운 현실이 자리한다.
부산 동래구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학부모 김모(42)씨는 “요즘은 기본이 10만원이라 선물 하나로 끝내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 비교가 되다 보니 부담이 커서 차라리 주식 계좌를 만들어 주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은 장난감을 사주고 싶은데 현실은 ‘나중에 도움 되는 것’부터 따지게 된다”고 털어놨다.
어린이날 소비가 더 이상 기쁨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설계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는 방증이다. 기념일의 온도가 낮아진 것이다.
◆ 선물·외식에 하루 수십만원
선물값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한 데 비해 외식(음식 및 숙박) 물가는 3.2% 상승했다. 선물에 외식, 나들이까지 더하면 하루 지출이 수십만원에 달한다는 게 부모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같은 조사에서 학부모들의 어린이날 계획으로 놀이공원·테마파크 방문(31.3%)이 가장 많았고 국내외 여행 및 캠핑(21.5%)이 뒤를 이었다. ‘아직 계획이 없다’는 응답도 21.2%에 달했다. 선물 부담이 커질수록 기념일 자체를 계획하지 못하는 가정도 적지 않은 셈이다.
◆ 교실로 돌아온 날의 온도차
부산 사하구에 사는 또 다른 학부모 이모(38)씨는 “어린이날 다음 날이면 아이가 친구들 얘기를 듣고 와서 ‘나는 왜 못 갔냐’고 묻는다”며 “선물보다 그 이후가 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괜히 아이가 위축될까 봐 무리해서라도 맞춰주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고가 체험 프로그램과 인기 시설 이용은 비용과 정보 접근성에 따라 기회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선택지는 넓어졌지만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도 함께 커졌다. 고가 완구와 체험 여행을 선물받은 아이, 그냥 하루를 보낸 아이 사이의 거리는 5월 6일 아침 교실에서 드러난다.
선물 한 번에 조부모까지 지갑을 열어야 ‘평균’에 겨우 닿는 구조. 어린이날의 무게는 해마다 아이가 아닌 부모의 어깨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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