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권수빈 기자]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은 수도권을 대표하는 해양 종합 전시 공간으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해운 및 항만 물류의 변천사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있다. 대중에게 잊혀가는 해양 문화의 가치를 일깨우고 선조들의 지혜를 전승하고자 매월 역사적 무게가 담긴 소장품을 '이달의 해양유물'로 엄선해 내놓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어촌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민속품이나 근현대 해운 역사를 증명하는 각종 사료들을 잇달아 조명했다.
박물관 측이 제31회 바다의 날(5월 31일)을 맞아 공개한 이달의 해양유물은 거대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도선사의 땀방울이 서린 육필 원고다. 도선사란 암초나 좁은 수로 등 위험 요소가 도사리는 항만에 배가 들어올 때 직접 승선해 안전한 뱃길로 이끄는 최고 등급의 해양 전문가다. 이번에 전시의 주인공이 된 고(故) 배순태 도선사의 수첩은 1974년 인천항 갑문이 완공된 이후 약 15년 동안 현장에서 겪은 항해 유도 과정과 제도적 고민을 빼곡히 기록하고 있다.
바닷길을 안내하는 도선사의 뿌리는 깊고도 험난하다. 9세기 일본 승려 엔닌의 구법순례행기에 물길에 밝은 신라인을 고용했다는 내용이 등장하고, 조선시대 경국대전에도 조운선을 이끄는 전문 인력의 존재가 명시돼 있을 만큼 유구한 전통을 지녔다. 그러나 근대적 제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1883년 개항 이후, 특히 1915년 일제가 관련 법령을 제정한 뒤로는 철저히 일본인이 관련 업무를 독점했다. 일제 치하에서 정식 면허를 따낸 한국인은 1937년 자격을 얻은 유항렬 도선사가 유일했을 정도로 우리의 바다 주권은 억눌려 있었다.
광복 이후 쏟아지는 외항선 수요 앞에서도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길러낼 토대는 여전히 부실했다. 법률상 시험 제도는 존재했으나 현장에서는 행정 관청의 자의적인 임명 위주로 굴러가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러한 기형적인 관행에 제동을 걸고 공정한 국가고시 시행을 집요하게 요구한 인물이 바로 수첩의 주인인 배순태 도선사다. 그의 끈질긴 설득 끝에 1958년 비로소 정식 시험 제도가 확립됐고, 본인도 시험을 통과해 자격을 취득하면서 한국 도선 제도를 반석 위에 올리는 데 공헌했다.
수첩에는 인천항을 드나들던 다양한 배들의 진입 순서와 방법이 정교한 스케치와 함께 묘사돼 있다. 이는 개인의 일상적인 업무 일지에 그치지 않는다. 예선 인프라의 부족함, 도선 구역 설정의 시급함 등 열악했던 1970년대 항만 환경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개선책이 곳곳에 남아 있다. 훗날 한국도선사협회 초대 회장에 오르며 후진 양성에 매진했던 그의 혜안이 고스란히 담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글로벌 교역량이 팽창하고 해상을 오가는 선박의 덩치가 거대해지면서 항만 진출입 과정의 복잡도 역시 극도로 높아졌다. 이 같은 험난한 해상 환경에서 도선사들의 순간적인 판단력과 정교한 조타 기술은 초대형 사고를 차단하고 물류를 원활하게 유지한다. 이 수첩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해양 강국으로 도약하기까지 묵묵히 바다의 최전선을 지켜낸 한 전문가의 투혼을 보여주는 물증이자 거대 선박의 안전을 책임지는 오늘날 항만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준다.
뉴스컬처 권수빈 ppbn0101@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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